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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크엔드 스토리]권창훈 父의 눈물, 아들의 비밀이야기

김진회 기자

기사입력 2015-09-11 07:38


10일 서울 강남구 일원동 프렌차이즈 제과점에서 국가대표 미드필더 권창훈의 아버지 권상영씨와 어머니 이복현씨가 인터뷰에 응했다. 아들이 어릴적 일기장을 자랑스럽게 보여주고 있다.
송정헌 기자 songs@sportschosun.com/2015.09.10

'원석'이 '보석'이 되기까지는 인고의 세월을 보내야 한다.

권창훈(수원)은 일찍 봄을 맞았다. 21세의 어린 나이에 한국 축구의 보석같은 존재로 우뚝섰다. 하지만 권창훈은 이제 막 꽃망울을 터트렸을 뿐이다.

어제보다 내일이 더 기대되는 한국 축구의 미래 권창훈, 하지만 그의 아버지 권상영씨(56)는 마냥 미소를 띄울 순 없었다. 아들을 바라보면 아픔이 먼저 떠오른다. 3년 전이었다. 권씨는 수원 매탄고 3학년이던 아들에게 제안을 했다. "창훈아, 나중에 네가 아들 낳으면 아빠가 유명한 축구선수로 만들어줄 자신있어."

축구 선수의 길은 모아니면 도다. 권씨는 아들에게 끊임없는 채찍만 가했다. 아팠지만 선택할 카드는 없었다. 그러나 아들도 이미 아버지를 이해하고 있었다. "나는 아들 낳으면 축구선수 안 시킬거야." 아버지는 말을 잇지 못했다. 자신이 좋아하는 축구를 하면서 항상 밝은 모습을 보이던 아들에게도 말못할 고민이 있었다는 것을 헤아리지 못했던 자신을 탓했다.

그날 아버지는 속으로 펑펑 울었다. 그리고 몇일이 지난 뒤 아들에게 농담을 던졌다. "창훈아, 축구하기 싫으면 아빠가 빵만드는 기술 가르쳐줄게." 아들은 씨익 웃기만 했다. 서울 강남구 일원동의 프랜차이즈 제과점을 운영하는 '사커대디' 권씨는 10일 그 때의 기억을 떠올리면서 다시 눈시울을 붉혔다.

엄한 아버지, 권창훈의 눈물

권씨는 권창훈에게 엄한 아버지였다. 고교 시절까지 전국 상위랭크인 아들의 단점만 지적했다. "잘했다"라며 아들의 엉덩이를 한 번 두드려줄만도 했을텐데 그러지 않았다. "창훈이와 대화를 하면 항상 잘못된 부분, 안되는 부분만 꼬집으니깐 본인도 솔직히 듣기 싫었을 것 같다." 그래도 권창훈은 아버지의 조언에 단 한 번도 불평하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날 아버지의 주입식 조언이 시작되자 아들이 한 마디를 던졌다. "아빠, 나도 내가 축구 잘 못하는거 알아." 아버지와 아들은 감정이 폭발하자 껴안고 한참을 울었다.


10일 서울 강남구 일원동 프렌차이즈 제과점에서 국가대표 미드필더 권창훈의 아버지 권상영씨와 어머니 이복현씨가 포즈를 취하고 있다.
송정헌 기자 songs@sportschosun.com/2015.09.10
축구부 가입 퇴짜, 권창훈의 천국


일원초 2학년이던 권창훈은 2002년 한-일월드컵의 분위기에 취해 축구선수가 되기로 결심했다. "아빠, 나 축구선수 할래." 권씨는 평소 오후 11~12시까지 축구를 하다 피곤에 지쳐 잠드는 아들의 결단을 흔쾌히 수락했다. "내가 시키는게 아니고 네가 좋아하면 해봐." 그래서 아들의 손을 잡고 일원초 축구부를 찾았다. 당시 가입 상담을 받았는데 왜소한 체격조건을 본 감독이 퇴짜를 놓았다. '조금 더 신체조건이 좋아지면 오라'는 것이 이유였다. 권씨는 "창훈이가 많이 실망하더라. 그런데 3~4일 뒤 감독님한테서 연락이 왔다. 창훈이가 기뻐하는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며 웃었다.

축구부는 권창훈에게 '천국'이나 다름없었다. 권씨는 "운동도 할 수 있고, 시간되면 저녁과 간식을 챙겨준다. 또 야간 운동도 하고, 기술도 가르쳐준다. 이보다 더 좋을 수 없었다"라고 했다. 그런데 권창훈이 쉽게 적응하지 못했다. 축구부는 공원에서 동네 형들과 공을 찰 때와는 차원이 다른 곳이었다. 권씨는 "좋아하는 것을 하니 발전 속도도 빠르더라. 선생님들도 예뻐했다. 그런데 처음에는 적응하기 힘들었다. 공원에선 자기 마음대로 돌파도 하고 골을 넣었는데 축구부에선 패스를 하라고 하니 답답하고 지루하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당시 아버지의 한 마디는 권창훈의 축구 흥미를 되찾게 만들었다. "기본기가 착실해야 훗날 골도 많이 넣고 좋은 축구선수가 될 것 같다. 초등학교에 들어가면 덧셈뺄셈을 배우지 않느냐. 기초를 쌓는 과정이라고 생각해라."

공개된 권창훈의 비밀 '축구일기'

권창훈은 초등학교 때부터 고교 때까지 하루도 빠지지 않고 축구일기를 썼다. 이날 권씨가 가지고 나온 축구일기는 종이가방 두 개 분량이었다. 축구일기를 들여다봤다. 시간별로 나눠 자신이 한 운동을 적어놓았다. 그리고 맨 밑에는 그날 훈련에 대한 느낀점을 반드시 적었다. 글 대신 그림도 보였다. 6살 위의 친형과 축구를 하는 그림이었다. 초등학생이었지만, 탄탄한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그림을 그려넣었다. 중학교 시절 쓴 축구일기에는 전술 등 구체적인 것도 포함돼 있었다. 패스와 움직임의 방향이 그림으로 그려져 있었다. 머리속에 그린 이미지를 그라운드에서 펼쳐내는 습관을 어렸을 때부터 해왔던 것이다. 이 축구일기를 보면서 권창훈의 축구인생이 보였다. 성실함이었다. 권씨는 "아무리 졸려도 축구일기는 반드시 쓰고 자더라"고 회상했다.

아들은 될 성 부른 떡잎이었지만, 아버지는 아들이 정식 축구선수가 되기 전까지 축구에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러나 여느 부모가 그렇듯 아들의 관심분야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축구 용어 자체를 아예 몰랐다. 그런데 창훈와 대화를 나누기 위해 조금씩 준비를 했다. 매일 학교에 가서 감독님이 창훈이에게 지적하는 것을 지근거리에서 듣고 메모하고 생각했다가 창훈이가 집에 오면 그 주제로 대화를 나눴다. 모르는 척하고 감독님의 주문을 복습시키는 셈이었다. 그러자 창훈이가 '우리 아빠 축구 실력 좋네. 감독님이랑 똑같은 얘기를 하네'라며 놀라더라."


22년 만에 레바논 원정 경기에서 승리를 거둔 축구대표팀이 10일 오후 인천공항을 통해 귀국했다. 입국장을 나온 권창훈 이재성과 함께 많은 취재진 앞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슈틸리케 감독이 이끄는 축구대표팀은 지난 8일(한국시각) 레바논에서 열린 2018 러시아월드컵 아시아지역 2차 예선 레바논과의 경기에서 3-0의 승리를 거두며 3승으로 G조 단독 선두에 나섰다. 인천공항=정재근 기자 cjg@sportschosun.com/2015.09.10/
매탄고 떠나려 했던 아들, 아버지의 만류

매탄고 1학년 시절 외박을 나온 권창훈은 아버지에게 "아빠 전학 좀 시켜주세요"라고 말했다. 아버지는 깜짝 놀랐다. "당시 자기가 생각했던 그림과 안맞았다고 하더라. 매탄고 시절 중학교 때 배운 것만 반복한다고 하더라. 자기는 더 많이 배우려고 갔는데 갈증이 생겼던 모양이다." 그러자 아버지는 중동중 감독을 찾아가 아들의 발언에 대해 자문을 구했다. 의문이 곧바로 풀렸다. 중동중 감독은 "우리 중학교에선 고등학교급 기술들을 가르친다. 창훈이가 그런 얘기를 하는 게 맞을 수도 있다"고 전했다. 집으로 돌아온 아버지는 아들을 설득했다. "창훈아, 운동이라는 것은 한 가지 기술을 반복을 해서 너의 기술을 만드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중학교 때 배운 기술이 평생의 기술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알고 있는 것을 반복해서 자신의 기술을 만드는게 고등학교 과정인 것 같다. 좋은 시설을 이용하면서 부족하다고 생가하는 것은 개인 훈련으로 극복하라."

이후 권창훈은 프로가 된 뒤에도 빠짐없이 개인훈련을 하고 있다.

김진회기자 manu35@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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