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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레이저 테러'…레바논전 승리 더 값진 이유

최만식 기자

기사입력 2015-09-09 10:16



8일 치러진 한국-레바논전에서 한국 GK 김승규가 전반 31분 레바논의 프리킥에 대비하는 사이 레이저빔이 등장해 얼굴을 겨냥하더니<위 사진> 눈을 직접 겨냥<아래 사진>했다. MBC TV 중계 화면 캡처



'레이저빔 테러도 이겨냈다.'

한국축구가 레바논 징크스를 훌훌 털어냈다.

슈틸리케호는 8일 레바논 원정으로 치른 2018년 러시아월드컵 아시아지역 2차예선 3차전에서 3대0 완승을 거뒀다.

값진 승리다. 지난 1993년 5월 11일 미국월드컵(1994년) 아시아지역 1차예선에서 1대0 신승을 거둔 이후 레바논 원정만 가면 2무1패로 쩔쩔매다가 22년 만에 징크스를 격파했다.

여기에 쿠웨이트에 골득실차(한국 +13, 쿠웨이트 +12)서 앞서며 최종예선 직행이 걸린 조1위를 사수했다.

이번 레바논전 승리가 더욱 값진 이유는 따로 있다. '극한상황'을 훌륭히 이겨낸 것이다. 2차예선에서 쿠웨이트와의 중동 원정을 한 차례 더 남겨두고 중동 특유의 극한상황을 미리 경험하면서 예방주사를 맞은 셈이다.


한국-레바논전 전반 30분 레바논의 프리킥이 선언되자마자 한국 골키퍼 김승규가 수비벽을 점검하는 사이 처음엔 레이저빔이 비치는 줄 몰랐다.<왼쪽> 하지만 곧이어 이를 알아차린 김승규가 왼손으로 가리려고 안간힘을 썼다. 김승규의 왼쪽 골그물에 'Y' 모양으로 초록색 레이저빔이 선명하다.<오른쪽> MBC TV 중계 화면 캡처



일부러 최악의 조건에서 훈련하는 것같은 상황은 레바논이 제공했다. 쥐 파먹은 듯 울퉁불퉁한 잔디상태나 푹푹 찌는 사우나 더위의 악조건은 어느 정도 예상했다고 치자.

여기에 극한상황의 절정을 이뤄준 것은 레바논 관중과 선수의 '막장 매너'였다. 이른바 '레이저빔 테러'가 또 출몰했다. 2-0으로 앞서던 전반 29분 레바논이 한국 진영 페널티에어리어 앞에서 첫 프리킥 찬스를 얻었을 때다. 골키퍼 김승규가 프리킥 수비를 준비하기 시작하자 선명한 초록색 레이저 불빛이 김승규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이를 알아챈 김승규는 왼손으로 얼굴을 가리는 척 하며 레이저 공격을 피하자 잠시 멈추는 듯했다. 하지만 레바논의 킥이 임박하면서 김승규의 손이 얼굴에서 떠나는 순간 다시 출몰한 레이저빔은 김승규의 몸통을 거쳐 얼굴로 올라오더니 눈을 바로 겨냥했다. 이 장면은 TV 중계 화면에 고스란히 잡혔다.

이 프리킥이 주어지는 과정에서는 레바논의 비신사적 플레이가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석현준이 레바논 진영에 쓰러져 있는데도 레바논의 플레이는 1분여 동안 멈추지 않았고, 오히려 레바논의 하이다르가 오른쪽 사이드라인 앞에서 예의상 공을 아웃시켜주는 척 하다가 기습적으로 김진수를 제치고 돌파하다가 구자철의 파울을 유도했다. 비신사적인 플레이의 극치였다.

레이저빔 공격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후반 30분 0-3으로 패색이 짙어진 것에 화가 났는지 사이드 라인 아웃으로 경기가 잠깐 멈췄을 때 그라운드로 물병이 날아들었다. 주심이 직접 물병을 주워 대기심에게 갖다 주고 돌아가는 웃지 못할 장면이 연출된 것도 잠시. 주심이 그라운드 중앙으로 돌아가는 동안 주심 옆쪽 그라운드에 초록색 불빛이 또 어른거렸다. 레이저빔 공격이 골키퍼뿐만 아니라 필드 플레이어들을 향해 광범위하게 자행됐음을 입증하는 장면이다.


레바논 관중의 레이저빔 추태는 후반에도 그치지 않았다. 후반 30분 주심이 그라운드에 날아든 물병을 처리한 뒤 그라운드 중앙쪽으로 돌아가는 동안 레이저빔이 다시 등장해 필드 선수들을 공략했다. 돌아가는 주심의 왼쪽 경기장 바닥에 연두색 환한 자국이 레이저빔이다.


레바논에서 레이저빔 테러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2011년 11월 15일 브라질월드컵(2014년) 아시아지역 3차예선 원정에서 1대2로 패할 때 코너킥을 준비하는 이근호에게 레이저를 쏘는 장면이 포착됐다. 당시 차두리는 레바논측의 추잡스런 행동으로 인해 경기가 끝난 뒤 몹시 화를 내기도 했다.

2008년 11월 20일 남아공월드컵(2010년)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3차전 사우디아라비아와의 원정경기에서도 골키퍼 이운재를 겨냥한 '레이저빔 사건'이 발생해 대한축구협회가 국제축구연맹(FIFA)과 아시아축구연맹(AFC)에 제소하기도 했다. 당시 FIFA는 경고 수준에 그쳤다. 이에 앞서 같은해 9월 일본도 바레인과의 최종예선 1차전 원정 때 같은 피해를 봤다며 FIFA에 의견서를 낸 적이 있다.

지난해 브라질월드컵 때에도 레이저빔 사건이 파장을 몰고 왔다. 2014년 6월 26일 열린 러시아와 알제리의 조별리그 H조 최종전에서 러시아 골키퍼의 얼굴에 레이저빔이 어른거리는 장면이 TV 중계 화면에 포착됐다. 이에 FIFA는 알제리축구협회에 5만 스위스프랑(약 5천700만원)의 벌금을 부과하는 등 레이저빔 추태에 대한 강력한 제재 의지를 보였다. 레이저빔은 최악의 경우 실명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에 경기장 내 소지를 엄격히 금하고 있다.

결국 이번에도 레바논은 경기장 관리에 허점을 드러내는 등 경기 외적으로 한국축구를 괴롭혔고, 오히려 한국은 열악하기로 소문난 중동 원정에서 맷집을 키우는 반대효과를 얻었다.
최만식 기자 cms@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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