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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원의 센터서클]슈틸리케 감독과 차두리, 마지막이 아름답다

김성원 기자

기사입력 2015-03-17 15:37 | 최종수정 2015-03-18 07:38



유시유종(有始有終), 처음도 있고, 끝도 있다.

서른 다섯 살 차두리(서울), 시작도 그랬지만 마지막도 변함이 없다. 옆에서 지켜 본 차두리는 축구밖에 모르는 순수한 영혼이다. 태어날 때부터 축구는 삶이었다. 아버지가 차범근이란 것은 부러움을 한 몸에 받을 만 했다. 하지만 아버지가 걸었던 길을 다시 걷는다는 것은 또 다른 이야기다. 인정받기까지는 주변의 편견과 늘 싸워야 했다.

축구 선수로서 출발은 '차범근 아들'이었다. 타고난 스피드와 폭발적인 질주, 우월한 체격조건은 타고 났다. 아버지와 닮았고, 공격수로 첫 발을 내디뎠다. 2002년 한-일월드컵 4강 신화의 당당한 주역이었다. 그러나 독일에서 프로생활을 시작하면서 현실과 부딪혔다. 아버지와는 늘 비교대상이었다. 아버지만 못하다는 평가가 우세했다.

탈출구가 보직 변경이었다. 수비수로 말을 갈아탔다. 2006년 자신이 태어난 독일에서 열린 월드컵에 출전하지 못하며 차두리의 이름도 가물가물해졌다. 그는 눈길을 돌리지 않았고, '우둔'하게 한 우물만 팠다. 2010년 남아공월드컵이 전환점이었다. '차미네이터'가 탄생하며 그의 이름은 더 선명해졌다. 사상 첫 월드컵 원정 16강 진출의 주연이었다.

현역과 은퇴의 기로에 섰던 2013년에는 K리그행을 선택했고, 2015년 호주아시안컵에서 국가대표로 대미를 장식했다. 정신적인 리더였다. 맏형으로 투혼을 일깨워줬다. 기량은 나이를 잊었다. 지칠 줄 모르는 체력과 상상을 초월하는 오버래핑으로 슈틸리케호의 결승행을 이끌었다. 준우승을 차지하며 정상에 오르지는 못했지만 차두리는 빛났다. 어느덧 '차범근 아들'이 더 어색해졌다. '차두리'라는 이름으로 독자적인 세계를 구축했다. '차붐가'는 대를 이어 한국 축구에 큰 족적을 남겼다.

대한축구협회는 A매치 70경기 이상 출전 선수의 국가대표 은퇴식을 개최하고 있다. 가장 최근인 2013년 11월에는 이영표(KBS 해설위원)의 은퇴식이 진행됐다. 꽃다발을 받고, 소감을 밝히고, 그라운드를 돌며 팬들에게 인사하는 것이 관행이었다. 2001년 11월 8일 세네갈과의 친선경기을 통해 A매치에 데뷔한 차두리는 75경기 출전, 4골을 터트렸다. 국가대표 은퇴식을 거행할 수 있는 자격조건을 갖췄다. 차두리는 최근 "경기를 뛸 지, 꽃다발만 받을 지는 정해지지 않았다"고 했다.

그의 피날레 무대가 더 특별하다. 울리 슈틸리케 A대표팀 감독은 17일 서울 신문로 축구회관에서 우즈베키스탄(27일 오후 8시·대전)과 뉴질랜드(31일 오후 8시·서울), A매치 2연전에 출전할 23명의 명단을 공개했다. 차두리가 마지막으로 A대표팀에 이름을 올렸다. 우즈베킨스탄전 이후인 29일 A대표팀에 합류하는 그는 뉴질랜드전에서 그라운드를 누빈다. 그는 전반을 출전한 후 하프타임에 태극마크와 이별한다. 추억에 남을 은퇴식이다. 아름다운 은퇴식은 슈틸리케 감독과 최용수 FC서울 감독의 합작품이다.

슈틸리케 감독은 "명단 발표에 앞서 차두리와 면담을 했다. 차두리는 분명하게 대표팀에서 은퇴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내가 들은 바에 의하면 한국에서 특정 선수가 은퇴를 할 때는 A매치 전반전 뒤 단순히 은퇴행사를 하는 소극적인 행보를 했다고 들었다. 하지만 차두리는 아직까지 현역에서 활약 중이라 발탁했다. 이번 기회에 단순한 은퇴식보다는 은퇴경기라는 의미를 부여하고자 했다"며 "차두리는 A매치에 75차례 나서 큰 자부심을 갖고 대표팀에서 활약해 온 선수다. 그래서 은퇴 경기를 만들어주고 싶었다"고 했다. 그리고 "나도 선수였다면 은퇴할 때 단순히 하프타임 때 꽃다발을 받고 은퇴하는 것보다 은퇴 무대에서 멋진 활약을 펼친 후 이별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다. 전반 종료 2~3분 전 교체해 관중들의 기립박수를 받은 후 은퇴식에 나설 수 있도록 할 생각"이라며 미소를 지었다.


차두리의 은퇴경기를 허락한 최용수 감독도 이날 "두리를 통해서 A대표팀 이야기를 들었다. 사랑을 받은 만큼 축구를 통해서 국가대표팀의 마지막 경기를 뛰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팬들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했다. 어제도 와서 얘기하길래 마지막까지 국민들에게 좋은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것은 축복받은 것이라고 했다"며 웃었다.

차두리는 국가대표에선 은퇴하지만 여전히 그라운드에서 숨을 쉬고 있다. 올 시즌 서울에서 뛴 후 완전 은퇴한다는 계획이다. 차두리가 국가대표에서 떠나는 것은 아쉽다. 몇 년을 더 뛰어도 될 만한 몸상태다. 하지만 관행이 깨지고 새로운 문화가 생기게 된 것은 반갑다. 국가를 위해 14년을 헌신한 태극전사에 대한 최소한의 선물이 될 수 있다. 축구 새싹들에게는 새로운 꿈으로 자리잡을 수 있다.

차두리가 걸어온 길이 유난히 눈에 밟힌다. 마침표가 아름다워 더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스포츠 2팀 newsme@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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