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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년 전 약속 지킨 김은중과 대전의 아름다운 동행

박상경 기자

기사입력 2014-11-06 07:24


◇김은중. 사진제공=대전 시티즌

"꼭 다시 돌아오겠다."

2003년 8월 24일. 대전월드컵경기장을 빠져 나가는 선수를 바라보던 팬들의 외침에 대한 답변이었다. 챌린지 챔피언 자리에 오른 대전의 최고참 김은중(35)이 주인공이었다.

김은중은 지난 3월 친정팀 대전으로 복귀했다. 베갈타 센다이(일본) 임대로 팀을 떠났던 11년 전의 기억을 떠올렸다. 지난해 강원과 계약이 만료되어 자유계약(FA) 신분이 된 김은중의 행선지는 대전이 아닌 미국이었다. 미국 메이저리그사커(MLS) 한 팀과 계약이 거의 확정된 상태에서 대전의 제의를 받았다. 강등의 철퇴를 맞고 챌린지서 부활을 꿈꾸고 있는 친정팀의 제의에 고심을 거듭했다. 결국 플레잉코치 신분으로 백의종군을 택했다. 처음으로 프로무대를 밟은 대전의 제의를 거절할 수 없다는 게 이유였다.

김은중과 팬들의 동행은 시즌 내내 이어졌다. '기억하다, 기다리다, 돌아오다'라는 문구가 새겨진 '18번 김은중'의 걸개가 경기장 한켠에 매번 걸렸다. 김은중의 등번호와 이름이 새겨진 유니폼을 입은 팬들도 삼삼오오 경기장으로 몰려들었다. 그들에게 김은중은 곧 추억이었다. 클럽하우스가 없어 빌라를 숙소로 쓰고 훈련장이 없어 대학교 맨땅 운동장에서 볼을 차던 그 시절, 패기와 투혼으로 팬심을 사로 잡았던 대전의 모습을 떠올렸다. 아픔 속에 떠나보낸 또 다른 레전드 최은성을 향한 아픔의 감정까지 뒤섞여 김은중을 바라보는 눈길은 더욱 애절했다. 대전 팬들은 '대전에 와준 것만으로도 감사하다'고 성원을 보냈다.

부천과의 챌린지 34라운드까지 김은중이 쓴 기록은 16경기 1골-1도움이다. 선발출전은 지난 1일 부천전 고작 한 경기 뿐이다. 플레잉코치 신분인 만큼 활약 기회가 많진 않다. 올 시즌 대전은 '브라질 폭격기' 아드리아노를 비롯해 서명원, 김찬희, 송주한 등 챌린지 스타가 넘쳐난다. 그러나 김은중은 훈련장과 그라운드에서 후배들의 버팀목 역할을 하면서 선두 고공비행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신예로 재편된 대전의 맏형이자 선생님이었다. 센다이를 비롯해 서울, 창사(중국), 강원 등을 거치면서 쌓은 경험을 전수하는데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다. 일각에서 부족한 출전 시간을 두고 아쉬움을 토로하는 목소리가 나올 때마다 "지금 내 위치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하는 것 뿐"이라고 담담하게 말했다. 세대 차이를 뛰어 넘은 소통은 즐거움이다. 김은중은 "어린 선수들과 함께 땀흘리면서 경험을 이야기하다보면 보람을 느낀다. 내가 배우는 점도 많다"면서 "팀이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는 게 무엇보다 기쁘다"고 웃었다. 다시 찾은 친정팀에서 불태운 열정은 승격이라는 열매로 결실을 맺었다.

김은중의 모습을 내년 시즌 클래식에서도 볼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향후 거취를 고민 중인 상황이다. 구단, 팬들은 클래식에서 유종의 미를 거두길 바라고 있다. 하지만 미래를 준비해야 할 시점이기도 하다. 김은중은 부천전을 마친 뒤 "시즌 일정을 마치고 입장을 정리할 것"이라고 여운을 남겼다. 미래보다는 후배들과 함께 하는 지금의 순간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의지다.

대전은 8일 한밭종합운동장에서 수원FC와 챌린지 35라운드를 치른다. 대전의 올 시즌 마지막 홈 경기다. 한 시즌간 동행했던 친정팀과 팬들 앞에서 김은중은 승격 축포를 준비 중이다.


박상경 기자 ppark@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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