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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cm 거구'가 울산도, 조민국 감독도 살렸다

김준석 기자

기사입력 2014-08-07 09:07


사진=송정헌 기자 songs@sportschosun.com/2014.08.06

'196cm 거구' 김신욱이 해냈다. 6일 저녁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14 현대오일뱅크 K리그클래식 19라운드에서 울산이 서울을 0-1로 누르고 6위 자리를 지켰다. 결승골을 안긴 김신욱은 "'우리를 믿어주시는 감독님 한 분만 보고 뛰자'고 했다. 그 동기부여로 승리했던 것 같다"며 소감을 전했다.

화두는 '높이'였다. 최용수 감독이 "똑같은, 단순한 패턴으로 상대 팀을 수년간 괴롭혀 오고 있다"고 평했을 만큼 울산의 높이는 무시무시했다. "울산에 대한 경계심, 두려움이 나를 옭아매지 않았나 싶다"라고 덧붙인 데엔 2011시즌 6강 플레이오프에서부터 내려온 악몽이 단단히 작용했을 터. 정규리그를 3위로 마친 서울은 PO행 막차를 탄 6위 울산에 1-3으로 발목을 잡혔다. 최근 5경기 전적에서 3승 2무로 앞선 만큼 자신이 있었지만, 김신욱-곽태휘-고슬기의 공중 장악에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 그 해 울산은 준우승을 차지했고, '철퇴 축구'라는 브랜드를 성공적으로 런칭했다. 김호곤 감독에 대한 재평가가 이뤄진 것도 이 시기다.


최 감독이 우려한 문제는 이번에도 반복됐다. 오스마르(192cm)가 경고 누적으로 빠진 서울 수비진에는 상대의 높이에 대적할 자원이 없었다. 울산은 꾸준히 볼을 띄웠다. 중앙 미드필더 반데르의 왼발이 괜찮았음에도 세밀한 플레이메이킹보다는 김신욱(196m)-양동현(186cm)의 트윈타워를 단번에 노리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김신욱은 머리뿐 아니라 가슴으로 볼을 받아두고 다음 장면을 이어가는 포스트 플레이에도 능했다. 쓰리백으로 나선 서울 수비는 두 명씩 짝지어 공중볼 타점을 방해하려 했으나, 세컨볼까지 종종 놓치며 슈팅을 헌납하곤 했다.

서울은 상대적으로 육로를 많이 거쳤다. 아무래도 170cm대의 공격진은 김치곤-김근환의 중앙 수비보다 높이가 부족했다. 대신 측면으로 빠르게 열어주는 패스에 공을 많이 들였다. 오른쪽 윙백 차두리는 상대 측면 미드필더 따르따의 견제를 받기 전에 측면 수비 이재원(김성환)과 일대일로 맞섰고, 적기에 크로스 타이밍을 잡을 수 있었다. 비가 내린 만큼 오른발 크로스만 고집하기보다는 중앙으로 꺾어 들어와 왼발 슈팅도 적극적으로 노렸다. 카사가 수비 적극성과 전투력을 내보인 반대쪽 측면에서는 윤일록이 잠잠해 좌우 균형이 딱 들어맞지는 않았다.

0-0의 잔잔한 흐름은 여러 변수로 요동친다. 하프타임에 윤일록을 뺀 서울은 몰리나-에스쿠데로-에벨톤으로 쓰리톱을 꾸렸다. 후반 7분 카사가 퇴장당한 울산은 투톱을 해체해 양동현을 측면으로 돌렸다. 타겟형 스트라이커에게 볼이 몰릴 수 있는, 자칫하면 답답한 롱볼 축구가 될 수 있는 상황. 그 와중에도 김신욱은 후반 13분 골을 뽑아낸다. 위치 선정에서부터 몸무게를 싣는 임펙트까지, 흠 잡을 데 없는 헤더는 옆 그물에 꽂혔다. 남은 시간은 35분 남짓. 곧장 내려앉기엔 시간대가 애매했다. 최소 10~15분 정도는 정상적으로 싸워야 했고, 교체 자원을 투입하며 뒷공간을 공략하는 편이 바람직했을 것이다.


후반 18분, 양 팀 감독이 꺼낸 카드는 현실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었다. 김신욱 원톱을 상대하게 된 서울은 쓰리백을 유지할 필요가 없었다. 김진규 대신 윤주태를 넣어 앞선의 무게감을 늘린 것도 이러한 맥락. 김치우-김주영-이웅희-차두리 포백에 최현태-고명진을 중앙에 뒀고, 네 명의 공격 자원이 수시로 자리를 바꾸며 종적인 침투 가능성을 높였다(사진 참고). 수비 범위가 넓어진 울산은 중앙 미드필더까지 아래로 이동한 5~6백의 전형을 취한다. 그러면서도 양동현 대신 한재웅으로 측면 배터리를 갈아끼우며 뒷공간을 훔치겠다는 의도를 노골적으로 내비쳤다.서울은 끝내 추격에 실패했다. 울산 수비는 침투 패스 및 움직임에 곧잘 반응했고, 태클로써 슈팅을 방해했다. 헤더를 몇 차례 얻어맞긴 했어도 유효 슈팅은 드물었으며, 결정적인 슈팅이 굴절되는 행운까지 따랐다. 골키퍼 김승규는 킥을 늦게 처리하는 노련함으로 상대를 급하게 했다. 어디 그뿐인가. 속공이 불가능함을 인지한 공격진은 터치 아웃을 유도하며 공격권을 유지했다. 스로인을 던져 경기를 재개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30초 안팎이었다. 버티고 또 버텨 승점 3점을 챙긴 것도 모두 김신욱의 머리 덕분. 울산도, 조민국 감독도 살려낸 이 선수는 이렇게 말했다.

"올해처럼 어려운 시즌은 오랜만에 겪게 됐다. 선수가 많이 바뀐 상황이라 더 어려웠다. 우리 모두가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 봤다. 감독님의 믿음이 지금까지 큰 동기부여를 주지는 못했는데, 힘든 상황에서도 '너희를 믿는다'. '편하게 뛰고 와라'라는 말 한마디가 큰 힘이 됐다. 월드컵을 다녀온 선수가 K리그에서 못 뛴다는 것은 창피한 일이다. 월드컵에 다녀온 선수가 잘 뛰어야 K리그가 다시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우리나라 최고의 서울 월드컵 경기장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자 했다. 뭉쳐진 분위기를 다음 경기에 또 보여드리도록 하겠다." <홍의택 객원기자, 제대로 축구(http://blog.naver.com/russ1010)>

※객원기자는 이슈에 대한 다양한 시각을 위해 스포츠조선닷컴이 섭외한 파워블로거입니다. 객원기자의 기사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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