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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포항 골망을 '네 번'이나 흔든 비결은?

김준석 기자

기사입력 2014-08-04 09:13


사진=최문영 기자 deer@sportschosun.com

꼬박 2년 하고도 한 달이 걸렸다. 2012년 7월 포항스틸야드 원정에서 5-0으로 패한 이래 상대 전적 8경기 연속 무승(1무 7패)까지 내몰렸던 수원. 3일 저녁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현대오일뱅크 K리그클래식 18라운드에서 마침내 포항을 4-1로 완파했다. 중원에서 시작한 침투 패스부터 측면에서 썰어나온 짧은 패스, 멋스럽게 감아올린 크로스, 뒷공간으로 떨어진 세컨볼 장악까지, 포항 골문을 네 번이나 열어젖힌 방법은 각양각색이었다.

수원(4) : 산토스(1,60'), 로저(86'), 권창훈(92')

(4-2-3-1) : 정성룡(GK) / 최재수-민상기-조성진-신세계 / 김은선-김두현(이종성,87') / 고차원(염기훈,HT)-산토스(권창훈,68')-서정진 / 로저

포항(1) : 황지수(25')

(4-2-3-1) : 김다솔(GK) / 김대호-김광석-김형일-신광훈 / 김승대-황지수(신영준,70') / 이광훈(고무열,36')-김재성-강수일 / 이광혁(김태수,HT)

경기 시작 44초 만에 첫 골이 나왔다. 김은선이 중원에서 낚아챈 볼을 앞으로 건넸고, 로저가 상대 중앙 수비와의 거리를 유지하며 내려와 볼을 선점했다. 산토스는 뒷공간으로 부지런히 뛰어들어가 골키퍼 김다솔을 무너뜨렸다. 최전방 공격수가 상대 수비의 시선을 끌며 연계 플레이에 나선 순간 처진 스트라이커가 침투해 직접 결정짓는 장면. 패스의 방향을 지체없이 돌려놔 뒤따라오던 상대 수비를 역동작에 빠뜨리는 과정은 '최후방 라인 붕괴의 정석'다웠다(하단 삽화① 참고).

포항은 말려들었다. 그간 황선홍 감독은 상대의 공격 전환을 틀어막기 위해 발 빠른 중앙 수비를 세워 왔고, 김광석은 파트너에게 뒷공간을 맡긴 채 중앙선 부근까지 전진해 커팅을 시도했다. 높은 선에서 볼을 빼앗아 상대 진영으로 빠르게 넘어간다는 메리트에 어느 정도의 위험 부담까지 감수했다. 단, 이러한 수비법은 준수한 포스트 플레이어를 지닌 상대와의 대결에서는 흔들릴 가능성이 컸다. 작지 않은 덩치에 신체 밸런스까지 잘 잡혀 있던 로저는 등 진 상태로 볼을 잘 지켜냈고, 때로는 공간으로 먼저 움직여 동료의 전진 패스 루트를 개척해냈다.

공격을 끝낸 뒤의 대처도 좋았다. 볼을 빼앗긴 수원은 앞선에서 승부를 보려 했다. 위로 올라선 만큼 뒷공간이 노출돼 있었고, 강수일 등 발빠른 자원이 밀고 들어올 경우를 대비해야 했다. 정성룡이 마누엘 노이어만큼의 활동 반경을 보일 수는 없는 노릇. 전방 압박을 통해 포항 수비진의 시야와 롱패스 타이밍을 철저히 방해했다. 전반 22분, 드리블이 길어진 김대호가 김두현과 충돌했던 장면도 이런 맥락에서 해석이 가능할 터. 볼 줄 곳이 없었던 포항은 아랫선에서부터 무리한 빌드업을 시작할 수밖에 없었고, 도박성 짙은 개인 플레이가 줄을 이었다.



포항의 후방이 부실했던 건 '김승대 시프트'와도 맞물린다. 손준호(경고 누적)를 대체하기 위해 꺼내 든 비책은 그리 두껍지 못한 스쿼드 사정을 여실히 드러냈다. 종적인 침투에 이어 골문 앞 침착함을 주무기로 삼았던 김승대를 아래로 내렸을 때, 잃는 것은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공격은 공격대로, 수비는 수비대로 안 됐던 것. 윙어 서정진이 중앙으로 드리블을 칠 때, 최근 5경기에서 단 한 골도 내주지 않았던 포항 수비진도 요동쳤다. 수비형 미드필더와 수비 라인 사이에 조금 더 강력한 블록을 형성해 제어하지 못한 게 큰 아쉬움이었다. 수원 공격진엔 침투할 만한 경우의 수가 여럿 주어졌고, 산토스는 결정적인 슈팅을 두 방 쏘았다.

산토스와 황지수의 골에 1-1로 돌입한 후반전. 전반 36분 이광훈 대신 고무열을 투입한 황선홍 감독은 하프타임엔 이광혁을 빼고 김태수를 넣어 김승대를 전진 배치한다. 서정원 감독은 고차원 대신 염기훈으로 응수한다. 딱 '한 골'이 먼저 필요했던 두 감독의 수 싸움은 서 감독에게로 기울었다. 수원은 측면의 좁은 공간을 짧은 패스로 썰어 나오는 질 높은 플레이를 펼쳤고, 횡패스-종패스로 각도를 급히 변하는 흐름 속에서 산토스가 추가골까지 뽑아낸다(삽화② 참고). 다시 리드를 내준 포항은 후반 20분이 되기도 전부터 수비로 전환하는 속도가 현저히 꺾였고, 앞으로 볼을 보내는 빈도도 줄어들었다.

수원은 신명나게 공격을 퍼부었다. 권창훈은 '왼발'잡이를 '왼쪽' 측면에 배치한 이유를 스스로 입증하며 로저의 추가골을 돕는다. 왼쪽 측면에 오른발잡이 자원을 놓을 경우엔 중앙으로 좁혀 들어와 슈팅을 감아 때릴 수 있지만, 반대로 왼발잡이를 둔다면 골키퍼-수비 뒷공간으로 향하는 날카로운 크로스를 노릴 수 있었다. 공격수가 전진하는 방향과는 반대로 볼에 스핀이 먹어 쇄도하던 로저가 슈팅 임펙트를 주기에도 한결 편했다(삽화③ 참고). 염기훈이 헤더로 떨어뜨린 볼을 직접 몰고 들어가 추가골까지 작렬한 권창훈은 수원의 올 시즌 최다 득점 경기를 일궈낸 동시에, 포항에 최다 실점 경기까지 안겼다.

스쿼드 깊이를 따져봐야 한다. 밋밋하게 끝난 여름 이적시장을 고려하면 '9월 전역자 합류 시즌'이 K리그 클래식의 판도를 뒤흔들 가능성이 무척 크다. 이런 관점에서 시즌 막판까지 1위 전북(승점35)과 2위 포항(승점34)을 물고 늘어질 경쟁력은 수원이 높은 편이다. 문제는 오범석, 양상민, 이상호, 하태균이 가세하기 전까지 이번 포항전과 같은 경기력을 얼마나 내보일 수 있느냐는 것. 일단 전북(6일,원정), 제주(10일,홈), 전남(17일,원정)을 연이어 만날 중대 일정의 스타트는 순조롭게 끊었다. <홍의택 객원기자, 제대로 축구(http://blog.naver.com/russ1010)>

※객원기자는 이슈에 대한 다양한 시각을 위해 스포츠조선닷컴이 섭외한 파워블로거입니다. 객원기자의 기사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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