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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밤 축구도시 광양,전남-서울전 아름다웠다

전영지 기자

기사입력 2014-07-06 11:35




한여름밤 축구도시, 광양은 용광로처럼 뜨거웠다. 5일 오후 7시 재개된 K-리그 클래식 13라운드 전남-서울전, 1만3000석 규모의 광양전용구장에 9012명의 팬들이 운집했다.

전반 9분 광양의 프랜차이즈 스타 이종호가 선제골을 터뜨렸다. 자신의 헤딩골이 불발된 후 튕겨나온 공을 기어이 왼발로 밀어넣었다. 4분후인 전반 13분 '공격의 핵' 스테보가 추가골까지 터뜨렸다. 중원에서 시작된 전현철의 질주, 안용우의 왼발 택배 크로스, 스테보의 정확한 헤딩까지 과정이 완벽했다. 짜릿한 골 폭죽에 팬들은 신이 났다. 신명나는 파도타기 응원이 시작됐다. 팬들의 응원속에 선수들도 신이 났다. 그 어느때보다 절실하게 달렸다. 전남 선수단은 이날 처음으로 팬 얼굴을 등번호에 새긴 20주년 유니폼을 선보였다. 팬들을 등에 업고 혼신의 힘을 다해 달렸다.

경기 초반 서울의 스리백을 상대로 내놓은 전남의 '역습 카드'는 위협적이었다. '전메시' 전현철과 '왼발의 달인' 안용우가 '빛의 속도'로 치고 달릴 때마다 그라운드는 뜨거운 함성소리로 뒤덮였다. 아쉬운 순간마다 팬들은 자리에서 벌떡벌떡 일어났다. "꺅!"하는 기쁨의 괴성, "아!"하는 아쉬움의 탄식이 수시로 교차했다. 영화 '시네마천국'속 사람들처럼 9000여명의 팬들은 광양 축구극장에서 함께 울고 웃었다.

7개월만에 그라운드에 나선 '서울 에이스' 몰리나는 여전히 날카로웠다. 전반 종료 직전 몰리나의 날선 코너킥에 이은 오스마르의 헤딩골이 작렬하며 긴장감은 한층 더 고조됐다. 하프타임 이후 서울의 공세는 제대로 불붙었다. 일진일퇴의 공방이 이어졌다. 전반 5분 이종호가 몸을 날린 다이빙 헤딩슈팅에 팬들은 뜨겁게 열광했다. 몰리나, 에스쿠데로, 윤일록이 감각적인 패스워크로 전남 수비라인을 위협했다. 후반 22분 '차미네이터' 차두리의 등장에 광양 꼬마팬들은 신이 났다. 후반 27분 전남 공격수 전현철이 오른쪽 라인을 타고 질풍같은 드리블로 쇄도할 때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쫓아가던 서울 수비수 최현태가 허벅지 통증을 호소하며, 들것에 실려 나갔다. 전쟁이었다. 후반 39분, 결국 몰리나의 동점골이 터졌다. 2대2, 돌아온 몰리나의 한방에 원정 응원석을 붉게 물들인 서울 서포터 '수호신'이 환호했다. 전남 12개, FC서울 25개, 양팀을 통틀어 무려 37개의 슈팅이 쏟아졌다. 한시도 눈을 뗄 수 없을 만큼, 90분 내내 빠르고, 뜨거운 경기였다.

경기 직후 하석주 전남 감독과 최용수 서울 감독은 나란히 그라운드를 거닐었다. 선수시절부터 '독종 승부사'이자 '화끈한 상남자'였던 이들의 스타일은 사령탑이 돼서도 여전하다. 홈에서든 원정에서든, 내려서지 않는 공격축구를 추구한다. 이날 전반 초반 2실점한 최 감독은 오스마르, 몰리나의 골에 힘입어 2대2로 비겼다. 승점 1점을 따내고도 역전승하지 못한 부분을 못내 아쉬워했다. 이종호 스테보의 연속골로 기분좋은 승리를 예감했던 하 감독은 막판 실점으로 다잡은 승점 3점을 놓쳤다. 이종호의 다이빙 헤딩슛, 전현철의 1대1 쇄도 찬스 등 아쉬운 장면들을 복기했다. 90분의 피말리는 승부후 함께 그라운드를 거닌 두 감독은 서로를 이렇게 위로했다. "정말 재미있는 경기를 했으니, 우리 그걸로 위안 삼자." 승부를 떠나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투혼, 치고받는 경기력, 짜릿한 골 폭죽으로 팬들의 마음을 뒤흔들었던 양 감독의 만족감 역시 그 어느때보다 컸다.

최 감독은 "2실점, 그 상황만 잊어버리면 정말 높은 점수를 주고 싶은 경기다. 정말 재밌는 경기였다"고 자평했다. "홈팬들이 많이 찾아와주셨고, 진보된 전남 축구를 봤다. 팬들 덕분에 더 좋은 경기력을 선보일 수 있었다"고 말했다. 유쾌한 덕담도 잊지 않았다. "하 감독님께서 월드컵을 상당히 많이 보셨는지 카운트어택에서 힘든 상황을 많이 내줬다. 전남은 전반기와는 또다른 역습의 속도, 힘을 갖췄다. 현대축구 트렌드이기도 하다. 다른 팀들이 경계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했다.

하 감독 역시 최 감독에게 공을 돌렸다. "서울이라는 팀이 원정이라고 내려서는 팀이 아니지 않은가. 내려서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는 '강팀'이다. 그런 원정팀의 자세가 경기를 재밌게 해준 것이다." 전남은 이날 하프타임 프로축구연맹이 지난 1~12라운드까지 관중수가 가장 많이 증가한 구단에게 수여하는 '플러스 스타디움상'을 받았다. 광양의 달라진 축구열기에 한껏 힘이 났다. 하 감독은 "광양전용구장은 아담하고, 축구 보기에는 전국 최고인 경기장이다. 앞으로도 우리는 팬들이 경기장을 떠날 때 아쉬움이 남을 만큼, 재밌고 박진감 넘치는 축구를 할 것이다. 축구가 재미 없으면 관중도 없다. 올시즌 전남 경기는 재미없는 경기가 없었다. 골도 많이 나고, 지더라도 재밌는 경기를 한다. 최 감독도 이 점을 칭찬해주더라. 고맙게 생각한다"며 활짝 웃었다.

팬들의 참여, 감독의 철학과 열정, 선수의 투혼이 K-리그 클래식을 바꾼다. K-리그가 다시 열린 광양전용구장, 한여름밤의 축구도시, 광양은 그래서 아름다웠다. 선수도, 감독도, 팬도 K-리그 클래식을 진심으로 즐겼다.
광양=전영지기자 sky4us@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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