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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 무승 탈락, '뿌리'가 약하니 '꽃'이 필 리 없다

임기태 기자

기사입력 2014-06-27 10:38


2014브라질월드컵 H조 3차전 한국과 벨기에의 경기가 27일 (한국시간) 상파울루의 아레나 코린치안스경기장에서 열렸다. 0대1로 벨기에에 패해 16강 진출이 좌절된 홍명보호의 손흥민이 경기종료후 홍명보 감독의 위로를 받고 있다.
상파울루(브라질)=최문영 기자 deer@sportschosun.com /2014.06.27/

막막함 너머로 당황스러움까지 밀려든다. 숱한 패러디를 남긴 '따봉'과 답답한 경기 내용에 '암'을 운운한 반응만이 남았다. 자국에서 열린 2002 한일 월드컵 외엔 원정 16강이 최고 성적. 그마저도 1승 1무 1패로 승점 4점 선에서 가까스로 이뤄냈지만, 이번 대회 목표는 당당하게 '원정 8강'이었다. 목표는 원대하고 구체적으로 세우는 게 맞다. 태양을 보고 쏘아 올린 화살이 특정 지점을 겨냥한 것보다 높이 올라가는 법이다. 단, 우리의 현실을 직시했을 때 이는 '목표'가 아닌 '염치'의 문제일 수 있다.

홍명보 감독의 선수 선발과 전술, 전략적 착오가 도마에 올랐다. 이것만이 문제라면 해결법은 간단하다. 지갑을 열어젖혀 족집게 과외 선생을 데려오면 그만이다. '선생님만 믿고 우리 애 맡겨요'라며 전권(全權)을 쥐여주면 어떻게든 성적은 오르지 않겠는가. 그런데 문제는 누군가에게 의존하지 않고도 유지할 본인만의 실력을 갖출 수 있느냐는 것이다. 세계적 명장이 장기 집권해 국제 대회 성적을 만들어 놓는다 해도 또다시 흔들릴 가능성은 농후하다. 대표팀 성적 먼저 낸 뒤 자국 리그-유소년-축구 인프라를 차례로 발전시킨다는, 즉 꽃 피우고 뿌리를 내리겠다는 기형적인 구조는 한계가 명백하다.

한일월드컵을 거친 한국 축구는 질적, 양적으로 유례없는 발전을 일궈냈다. 현 대표팀 주축으로 자리 잡은 어린 선수들을 길러낸 것은 물론, 자국 리그의 열기도 함께 불러왔다. 2000년 9,619명, 2001년 12,596명이었던 K리그 관중 수는 2002년 14,366명으로 증가하며 99년도의 르네상스를 재현한다. 하지만 여기까지였다. 축구는 4년에 한 번씩 열리는, 내셔널리즘으로 잘 포장된 '국가적인 행사'에 그쳤다. 예능 프로가 달려들고, 기업 광고가 들러붙는 6월의 축제, 축구팬이라 자처하는 이들은 '반짝' 일어나 호응했다. 하나의 '수단'으로 전락한 축구, 자국 리그 현장에 꾸준히 발 도장 찍어온 이들은 수년 전부터 이런 위기를 감지해왔다.

다음은 2018 러시아 월드컵이다. 기성용, 구자철, 이청용 등 서른 줄로 접어든 세대가 풍부한 경험을 자랑하며, 손흥민을 비롯한 20대 중반의 세대가 전성기를 맞을 것이다. 이 선수들만이 아니다. 백승호, 이승우, 장결희라는 바르셀로나 유스팀 3인방은 물론, 유럽 등지에서 뛰고 있는 유망주들이 엄청난 반향을 몰고 오리란 그럴싸한 기대도 있다. 선진 축구를 일찍이 경험한 효과는 대단할 것이다. 메시나 호날두가 그렇듯 '선수 개인'이 '하나의 전술'이 돼 팀 전체를 쥐락펴락하는 원맨팀이 가능할지도 모른다. 브라질월드컵 홍명보호의 세 경기를 봤다면 '에이스'의 존재 여부가 얼마나 크게 작용하는지 뼈저리게 느꼈을 것이다.

유럽파로 하나둘 채워가다 보면 베스트 11이 완성된다. 그런데 월드컵 엔트리는 23명이나 된다. 가장 잘하는 11명만 내세워 경기에 나서면 되는데 굳이 12명이 더 필요하단다. 여기저기 수소문해 숫자를 채워나가도 엔트리에는 공백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 이것이 우리네 실정이다. 현 인력풀에서는 '우리를 건들지 말았어야 됐다'던 모 선수의 SNS 내용 중 '우리'에 해당하는 선수들로만 팀을 꾸리는 게 불가능하다(가타부타를 논하는 게 아닌, 현실적으로 힘들다는 것을 말한다). 그라운드에서 뛰는 선수와 벤치에서 대기하는 선수의 간극이 심한 탓에 대체할 자원도 사실상 없다. 이것이 곧 이번 대회를 망친 여러 원인 중 하나이기도 하다.

건강한 스쿼드만이 답이다. 그럼에도 '살아있는 자국 리그 없이 살아남을 대표팀도 없다'는 명제를 외면해 왔다. 올림픽, 월드컵 등 각종 국제 대회만 치르고 나면 어김없이 반복돼 잔소리로 느껴질 정도. 이토록 공허한 메아리조차도 한철에 그치는 게 마냥 안타깝다. '월드컵 채널'이라 자처하던 방송사는 자국 리그에까지 조명을 나눠주지 않는다. 이해는 된다. 시청률이 나오지 않은 바에야 기업 광고주의 입맛을 당기기도 어렵고, 제자리 수준인 중계권료(지난해 기준 65억 원)에 스포츠 조직도 힘겨워진다. 팬들에게 '사랑'을 강요할 수만도 없다. 유명 선수가 득실한, 100년도 더 된 명문 리그와의 단순 비교에서는 떨어지는 게 사실이다.

이는 현직 산업 종사자들도 풀지 못한 난제다. 해당 산업과 관련된 학부는 물론, 대학원에서 역시 이를 주제 삼아 많은 고민을 주고받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뜬구름을 몰아낼 뾰족한 수는 찾지 못했다는 후문이다. 리그 차원에서의 위기의식이 절실한 때, 독단적인 결정 등으로 소비자가 등을 돌리는 일도 허다하다. 어디서부터 손 써야 할지 모를 만큼 엉켜버린 형국, 켜켜이 쌓여 굳어버린 부정적인 인식을 해결하는 데엔 생갭다 긴 시간이 걸릴 수도 있다. 수술이 필요한 환부에 연고만 슬쩍 바르고 버텨온 후유증이 고개를 들고 있는 셈. '월드컵 4강'이란 신기루가 걷히며 그동안 보지 못했던 것들이 수면 위로 속속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통계 수치를 들춰봤을 때, 월드컵의 성공이 자국 리그의 활성화를 불러온다는 건 옛말이다. 뒤집어 보면 브라질 월드컵의 실패가 자국 리그의 하락으로 치닫지도 않을 터다. '축구'라는 한 단어 아래 이렇게도 동떨어진 '대표팀', '자국 리그'의 접점을 찾는 작업이 시급해 보인다. ?가만히 있으면 좋아지리란 안일한 생각은 큰 오산이다. 치열한 고민 없이는 '왕의 귀환'이라며 거창하게 포장할 아시안컵 우승도, '명예 회복'이라며 벼를 2018 러시아 월드컵 본선 진출도 장담할 수 없다. 아시아의 호랑이는 무슨, 이가 여러 대 빠져 임플란트 없이는 씹지도 못하는 게 현실이다.


월드컵으로 휴식기를 보낸 K리그 클래식은 7월 첫째 주부터 재개한다. 5일(토)에는 수원-경남, 전남-서울, 부산-전북, 제주-포항이, 6일(일)에는 성남-울산, 인천-상주가 맞대결을 펼친다. K리그 챌린지는 당장 이번 주말에도 열린다. 28일(토)에는 안양-충주, 고양-부천, 29일(일)에는 수원-강원, 안산-대전의 경기가 잡혀 있다. 월드컵 무대에서의 1무 2패라는 초라한 성적 속, 다시 한 번 짚어봐야 할 일정이다. 자국 리그의 경쟁력, 너무나도 진부한 레퍼토리인 동시에 더없이 절실한 생존 방법이다. <홍의택 객원기자, 제대로 축구(http://blog.naver.com/russ1010)>

※객원기자는 이슈에 대한 다양한 시각을 위해 스포츠조선닷컴이 섭외한 파워블로거입니다. 객원기자의 기사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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