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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축구, 어려움 속 손흥민 찾았다

이건 기자

기사입력 2014-06-27 07:31


2014브라질월드컵 H조 3차전 한국과 벨기에의 경기가 27일 (한국시간) 상파울루의 아레나 코린치안스경기장에서 열렸다. 한국의 손흥민이 벨기에 수비수와 문전에서 치열한 볼경합을 벌이고 있다.
상파울루(브라질)=최문영 기자 deer@sportschosun.com /2014.06.27/

3년 6개월전 김포공항에서 처음 만난 손흥민은 수줍은 많은 소년이었다. 제주로 가는 비행기를 기다리면서 연신 선배들에게 90도 인사를 했다. 질문에도 기어가는 목소리로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당시 18세였던 손흥민은 함부르크 소속으로 분데스리가에 막 데뷔한 프로 초년병이었다. 팀의 프리시즌 경기에서 첼시를 상대로 골을 넣었다. 쾰른 원정경기에서 상대 골키퍼의 키를 넘기는 슈팅으로 강한 인상을 남겼다. 당시만해도 손흥민은 유망주였을 뿐이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대표팀을 맡고 있던 조광래 감독도 "그저 테스트 차원"이라며 선을 그었다. 손흥민도 "정말 잘해서 박지성 선배와 함께 한 팀에서 뛰는 꿈을 이루고 싶다"는 바람을 수줍게 밝혔다.

3년 6개월이 지나고 소년은 달라졌다. 2014년 브라질월드컵에서 손흥민은 한국 축구의 '미래'가 됐다. 국내 팬들뿐만이 아니라 외신들도 손흥민을 극찬했다. 알제리와의 2차전에서 외신들은 손흥민의 골에 주목하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자타공인 한국 축구의 중심에 섰다.

손흥민의 최대 강점은 '개인 전술'이다. 쉽게 말해 자신의 능력으로 상대 선수를 제칠 수 있다. 그동안 월드컵에서 한국 축구 최대 약점은 개인 전술의 부재였다. 상대 수비수들을 따돌릴 때에는 대부분 선수들간의 패스를 통한 '부분 혹은 팀 전술'에 의존했다. 월드컵에서 한국 축구를 보면서 답답함을 느낀 것도 이 때문이었다.

하지만 손흥민은 달랐다. 개인기와 스피드를 활용한 드리블 돌파 능력을 십분 활용했다. 축구통계사이트인 후스코어드닷컴의 집계에 따르면 분데스리가에서 손흥민의 드리블 능력은 수준급이다. 경기당 2.8회 드리블 돌파에 성공했다. 전체 19위다.

월드컵에서도 손흥민의 드리블 돌파 능력은 그대로 이어졌다. 경기당 평균 4.3회 드리블 돌파를 했다. 조별리그가 끝난 현재 월드컵에 나선 전체 선수들 가운데 5위에 올랐다. 알제리전에서도 개인기로 상대 수비수들을 제친 뒤 골을 넣었다. 한국 선수들 가운데서는 드리블 돌파 능력은 독보적 1위다.

슈팅에 대한 욕심도 많다. 능력 또한 탁월하다. 손흥민은 분데스리가에서 경기당 평균 2.7회 슈팅을 때렸다. 분데스리가 전체 15위다. 그만큼 공격적이라는 뜻이다. 그 가운데 10골을 넣었다. 슈팅 성공률은 12%다. 분데스리가 득점왕 로베르트 레반도프스키(도르트문트)의 슈팅성공률은 18%다. 최전방 공격수가 아닌 측면 공격수가 이 정도의 정확도를 보이는 것은 대단한 능력이다. 이번 월드컵에서도 경기당 평균 슈팅은 1.7개였다. 기회가 나면 망설이지 않았다. 슈팅을 주저하는 다른 선수들에 비교해 강한 인상을 남겼다.

탁월한 개인 전술 능력의 바탕에는 탄탄한 기본기가 있다. 손흥민은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인 손웅정 감독의 스파르타식 기본기 훈련을 받았다. 중학교 2학년까지 팀에 소속되지도 않고 기본기만 갈고 닦았다. 독일에 간 이후에도 매일 팀훈련이 끝나면 홀로 개인 훈련을 잊지 않는다. 볼리프팅부터 드리블 돌파, 슈팅까지 하루도 거르지 않은 개인 훈련이 월드컵에서 빛을 발하고 있다.


이번 월드컵을 통해 손흥민은 한단계 업그레이드했다. 팀전술 이해 능력이 좋아졌다. 손흥민에게 팀전술 이해 능력은 아킬레스건이었다. 팀에 들어간 것은 2006년 여름이었다. 팀이라는 틀에서 축구를 한 것이 8년밖에 되지 않는다. 그것도 대부분 공격수로 나섰다. 공격수는 미드필더나 수비수에 비해 팀전술을 활용하는 경향이 덜하다. 개인 전술이 우선이다. 함부르크와 레버쿠젠에서도 손흥민은 공격에 치중했다. 특히 레버쿠젠은 분데스리가 내에서도 강팀이다. 수비 부담이 많지 않다. 개인 전술의 비중이 높을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한국 월드컵대표팀은 달랐다. 한국의 기본 전형은 4-2-3-1 시스템이다. 한국은 월드컵에서 약체였다. 수비에 우선순위를 둘 수 밖에 없다. 측면 미드필더로 나선 손흥민은 수비도 등한시하면 안되는 상황이었다. 소속팀에서 늘 공격만 해온 손흥민이기에 '수비 가담 능력에 대한 걱정어린 시선'이 있을 수 밖에 없었다. 손흥민은 월드컵에서 이런 편견을 날려버렸다. 최전방부터 최후방까지 종횡무진 누볐다. 국제축구연맹이 제공하는 히트맵상으로도 손흥민의 활동범위는 전방위적이다. 기록상으로 러시아전에서 분당 108.78m를 뛰며 팀평균인 90.33m보다 더 뛰었다. 알제리전 역시 분당 109.98m로 팀평균 90.32m보다 활동량이 더 많았다. 벨기에전에서는 분당 111.15m를 뛰었다.

물론 아직 완성체가 아니다. 더 보완해야할 점이 있다. 드리블 돌파가 많은만큼 실책의 수도 많다. 손흥민은 평균 3개의 실책을 범했다. 실책 부문 10위에 올라있다. 드리블돌파 1위인 리오넬 메시(아르헨티나)가 5.7개의 드리블 돌파에 성공한 반면 실책은 0.7개에 불과한 것과 견주면 손흥민이 가야할 길은 더욱 명확해진다. 개인기와 스피드를 앞세워 위협적인 돌파를 계속 하되 안정성도 동시에 갖추어야 한다.

한가지 분명한 건 이것이다. 한국축구는 월드컵에서 손흥민을 찾았다.


이 건 기자 bbadagu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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