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룡영화상후보작

스포츠조선

[축사부일체16]김인완 감독"지동원,강팀-빅매치에 강한 까닭'

전영지 기자

기사입력 2014-06-02 07:39


축구 김인완 감독 인터뷰
김경민 기자 kyungmin@sportschosun.com / 2014.05.26.

"2009년 11월28일!" 5년전 그날, 날짜까지 또렷히 기억했다. 김인완 감독이 말했다. "당연히 기억하죠. 내게도 아이들에게도 평생 잊을 수 없는, 말 그대로 '인생게임'이었으니까요."

2009년 말,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전국 고등축구리그 왕중왕전 결승전은 지동원(23·도르트문트) 김영욱(23·전남) 황도연(23·제주) 이종호(22·전남) 등 광양제철고 출신 선수들도 첫손 꼽는 '인생게임'이다. 당시 김 감독이 이끌던 '고교 최강' 광양제철고는'성남유스' 풍생고를 3대2로 꺾고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풍생고에 선제골을 내줬지만 후반 7분, 9분 지동원이 2골을 몰아치며 역전했다. 후반 40분 동점골을 허용했지만, 연장 전반, 지동원의 킬패스를 이어받은 이종호가 결승골을 밀어넣으며 우승을 확정했다. '스승' 김 감독을 헹가래 치며 포효했다.

"사실 컨디션은 최악이었어요. 17세 이하 월드컵 아시아 예선전에서 (지)동원이와 (김)영욱이가 발목을 다쳐 왔어요. 16강전 직전 돌아온 동원이가 다리를 절뚝이면서도 '이제 저희가 하겠습니다. 맡겨주십시오' 했던 게 생각납니다." 함께 있을 때 두려운 것이 없었던 이 아이들은 고교 마지막 고별전에서 성치않은 발목으로 '불꽃투혼'을 발휘했다. 지동원은 2골1도움으로, 약속을 지켰다. 광양제철고 감독을 거쳐, 부산 아이파크 수석코치, 대전 시티즌 사령탑을 역임한 김 감독이 '애제자' 지동원과의 추억을 술술 풀어놓았다.


◇2009년 8월 삼척종합운동장에서 열린 제64회 전국고교축구선수권대회 결승전에서 광양제철고가 연장전 끝에 배재고에 2대0으로 우승한 뒤 김인완 감독을 헹가래치고 있다.

◇2009년 11월28일은 김인완 감독과 지동원 김영욱 황도연 이종호 등 전남 유스 출신 선수들에게 잊을 수 없는 날이다. 전국고등축구리그 왕중왕전 결승에서 풍생고를 3대2로 꺾고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함께일 때면 우린 두려울 것이 없었다.' '전남유스' 광양제철고 에이스들은 뛰는 곳은 다르지만 변함없는 우정을 나누고 있다.  사진제공=전남 드래곤즈 김영욱 선수

◇2008년 백록기 고교축구대회 우승 기념 사진. 광양제철고는 광주 금호고와의 결승에서 지동원의 프리킥 결승골에 힘입어 1대0으로 승리했다.

◇지난해 11월 주변에 알리지 않고 일시 귀국한 지동원은 전남유스 동기들과 모처럼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광양제철고 2010 노랑유니폼을 맞춰 나눠입은 채 명지대와 연습경기를 가졌다. 빅리그에 뛰면서도 국가대표의 꿈을 키우던 축구키즈의 초심을 잃지 않고 있다.  사진제공=전남드래곤즈 김영욱 선수

◇2007년 대한축구협회 유소년 지원 프로그램 레딩FC 유학시절의 지동원(가운데).김원식(왼쪽) 남태희(오른쪽)과 시내 관광을 즐기는 모습.

◇2007년 대한축구협회 유소년 지원 프로그램에 힘입어 지동원은 남태희 ,김원식(왼쪽부터)과 함께 잉글랜드 레딩FC 유스클럽으로 축구 유학을 떠났다. 늘 주전으로 뛰어오던 지동원은 말도 안통하는 낯선 땅에서 벤치를 전전하며 좌절을 경험했지만, 이 시련 이후 지동원은 더 단단해졌다. 광양제철고, K-리그 전남 드래곤즈에서 차근차근 해외 진출을 준비했다.  사진제공=대한축구협회
지동원, 강팀-빅매치에 강한 이유

홍명보호의 '1991년생 골잡이' 지동원에겐 유독 '인생골'이 많다. 남들은 평생 한번 넣기도 어렵다는 '인생골', 시작은 이미 고등학교 때부터다. 지동원은 자타공인 '우승청부사'였다. 2007년 광양제철고에 입학하던 해 대한축구협회의 지원을 받아 잉글랜드 레딩FC로 축구유학을 떠났다. 청운의 꿈을 안고 떠난 낯선 땅에서 처음으로 벤치 설움을 맛봤다. 이듬해 6월 한국에 돌아온 지동원은 더 단단해졌다. 김 감독은 "레딩에서 많이 힘들었다고 하더라. 그러나 어린 나이에 큰물을 경험하면서 동원이는 분명 기술적, 멘탈적으로 성장했고, 강해졌다"고 했다. 돌아온지 두달만인 8월 백록기 고교축구대회 금호고와의 결승전(1대0 승)에서 지동원은 프리킥 결승골로 우승을 견인했다.

지동원은 2009년 8월 강원도 삼척에서 열린 전국고교축구선수권 배재고와의 결승전(2대0 승)에서도 연장전 쐐기골을 터뜨렸다. 김 감독은 "당시 내가 퇴장을 당해, 반대쪽 관중석에 앉아 있는데, 동원이가 골을 넣고 나를 향해 400m 이상 전력질주해왔다. 하이파이브를 하며 찡했던 기억이 난다"고 했다. 지동원은 11월 전국고등축구리그 왕중왕전 결승(3대2 승)에서도 2골1도움으로 믿음에 보답했다.

지동원은 2010년 광저우아시안게임 이란과의 3-4위전에서 후반 막판 2골을 몰아치며 4대3 역전 드라마를 썼다. 선덜랜드에서 뛰던 2012년 새해 벽두 맨시티전(1대0 승), 후반 교체투입돼 '키스를 부르는' 짜릿한 버저비터골로 전세계 주요 신문 헤드라인을 도배했다. 2012년 런던올림픽 8강전, 지동원은 '대포알 선제골'로 잉글랜드의 심장을 꿰뚫었다. 홍명보호의 '미라클 동메달'을 이끌었다. 2014년 1월 아우크스부르크 컴백 직후엔 '미래의 소속팀' 도르트문트를 상대로 후반 교체출전 2분만에 동점골을 터뜨렸다. 지동원을 빗대 "'골 못넣는 공격수'를 키워보는 것도 재밌겠지"라고 말했다던 위르겐 클롭 도르트문트 감독 앞에서 강력한 존재감을 드러냈다.

김 감독은 '애제자' 지동원을 "강팀에 강한 선수, 큰경기에 강한 선수"라고 정의했다. "고등학교때부터 중요한 경기에선 반드시 골을 넣었다. 동원이는 큰경기라고 해서 특별히 준비하거나, 긴장하는 게 없다. 긴장하거나 의욕이 앞서서 실수하는 법이 없다. 평상심을 유지한다. 냉정하고 침착하게 결정지을 줄 안다."


◇지동원의 축구인생에 가장 든든한 버팀목이자 후원자인 아버지 지중식씨(왼쪽)
 사진제공=전남 드래곤즈 구단

◇제주도 북단의 작은 섬 추자도에서 태어난 1991년생 지동원 아기의 돌 잔치, 해맑은 미소를 짓던 이 아기는 19년 후 최연소 프리미어리거, 23년 후 브라질월드컵 23인의 대표선수가 됐다.
 사진제공=전남 드래곤즈

◇위로 누나 둘을 둔 막내아들 지동원, 착하고 순한 아이였다. 유치원 무렵, 사진 속 희고 맑은 얼굴, 똘망한 눈매가 귀엽다.  사진제공=전남 드래곤즈 구단

◇육상 장거리 선수로 활약했던 초등학교 5학년 때 화북초등학교 축구부 코치의 스카우트로 축구선수가 됐다. 배구선수 출신의 아버지 지중식씨는 외아들을 큰 섬 제주도 화북초등학교로 전학시켜 본격적인 축구수업을 받게 했다



◇제주 오현중 시절 스트라이커로 급성장한 지동원. 다섯 차례나 득점왕에 오를 정도로 일찌감치 두각을 나타냈었다. 당시 최고의 골결정력을 자랑하던 호나우두를 꿈꾸던 소년이었다.

◇'될성 부른 떡잎' 지동원에게 제주도는 좁았다. 지동원의 아버지는 고등학교 진학을 앞둔 아들을 제주도에서 뭍으로 떠나보낼 결심을 한다. 지동원은 최고의 유소년 시스템을 갖춘 전남 드래곤즈의 유스클럽인 광양제철고에 진학했다. 지동원 김영욱 황도연 1년 후배 이종호가 가세한 광양제철고는 당시 고교축구대회 우승, 준우승을 휩쓸며 프로무대에서의 활약을 일찌감치 예고했다. 2009년 고교 챌린지리그에선 14경기에서 17골을 터트리며 득점왕에 올랐다. '광양루니' 이종호는 "동원이형과 투톱으로 나서면 우린 무서운 것이 없었다"는 말로 당시의 활약상을 떠올렸다.  사진제공=전남드래곤즈

◇김인완 전 대전 시티즌 감독이 애제자 지동원의 선전을 기원하며 남긴 응원 메시지.
브라질월드컵에서 '최고의 인생골' 넣길

지동원은 '반전 있는' 선수다. 잘난 체하거나, 좀체 자신을 드러내는 법이 없다. 그러나 방심은 금물이다. 언제 어디서 불쑥 나타나 가공할 '인생골'을 쏘아올릴지 모른다. 김 감독은 "동원이는 겉으로 표현하는 스타일이 아니지만, 속에 엄청난 에너지를 담고 있는 선수다. 지도해보면 '무서운 놈'이라는 걸 알게 된다"고 했다.

아버지 지중식씨는 아들의 '집중력'을 이야기했다. "초등학교 4~5학년때 매일 저녁까지 뛰어놀았다. 어느날 성적표를 가져왔는데 반 1등이더라. 뭐가 잘못됐나 싶어 선생님을 찾아갔다. 동원이가 수업시간에 집중력이 좋다고 하시더라." 800m 장거리 육상선수였던 지동원은 추자도성당에서 재미삼아 축구를 처음 배웠다. 5학년때 제주 화북초등학교로 전학한 후 뒤늦게 축구를 시작했다. 출발이 늦었던 만큼 집중력있게 훈련했다. 절친들의 증언도 일맥상통했다. 김영욱과 황도연은 "동원이는 고등학교 때 진짜 잠을 많이 잤다. 우리끼리 '잠을 많이 자야 축구를 잘하나보다'라고 농담할 정도였다. 그러나 훈련시간 만큼은 엄청 집중했다"고 말했다. 김 감독은 광양제철고의 분위기를 이야기했다. "패스게임 한번에도 아이들의 눈에선 불꽃이 번쩍 튀었다. 승부욕이 대단했다. 너무 열심히 해서 다칠까봐 오히려 걱정이 될 정도였다." 축구에 '미친' 아이들이 모인 '레전드' 광양제철고에서 지동원은 이기는 습관, 즐기는 습관, '프로의 정신'을 일찌감치 체득했다.

한때 배구선수를 꿈꿨던 아버지의 든든한 후원속에 지동원은 추자도에서 제주도로, 제주도에서 전남드래곤즈로, K-리그에서 빅리그로, 올림픽 대표에서 월드컵 대표로, 매년 성장을 거듭해왔다. 프리미어리거, 분데스리거가 된 후에도 지동원은 한결같다. 겸손하고 반듯하다. 김 감독은 "지동원의 겸손이 아버지의 가정교육에서 비롯됐다"고 말한다. 아버지 지씨는 "네가 잘해서 골을 넣은 게 아니다. 다 동료, 선후배들 덕분이다. 인사 잘하고 겸손하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달고 산다.

지동원은 소탈하고 따뜻한 스승, 김 감독을 깍듯이 모신다. 김 감독은 "내가 동원이를 키웠다고 생각한 적이 없다. 동원이가 내게 와줬다. 어떤 스승을 만났더라도, 동원이는 잘됐을 것"이라며 자신을 낮췄다. 전남유스 선수들과의 우정 역시 시공을 초월해 막역하다. 리그 휴식기때마다 가장 먼저 찾는 이도 '전남유스'다. 지난해 11월, 일시귀국했을 때 지동원은 '광양제철고 2010' 노랑유니폼 10벌을 직접 준비했다. 김영욱 황도연 이종호 이중권(전남) 황도연 박준강(부산) 이대명(인천) 이호석(경남) 조규승(경주한수원) 등으로 이뤄진 '광양제철고 2010'은 명지대를 상대로 압승했다. 경기후 지동원은 '스승' 김 감독을 찾았다. 식사를 함께하며 밀린 얘기들을 나눴다.

브라질월드컵에 출전하는 '애제자' 지동원을 향한 메시지를 부탁하자 김 감독은 심사숙고했다. "남들이 뭐라 해도 동원이는 결정적일 때 한방 해줄 수 있는 선수다. 이번 월드컵에서도 무조건 한골은 해줄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 홍명보 감독님도 결국 그 부분을 인정해서 뽑은 것이 아닐까."

초여름 햇살이 쏟아지는 공원 벤치에 무릎을 꿇은 채, 기도하듯 한글자 한글자 꾹꾹 눌러쓰는 스승의 모습이 숙연했다. 꿈★의 무대, 브라질에서 한국축구를 구원할 '최고의 인생골'을 응원했다. '동원아, 선생님은 항상 너의 모든 것을 믿는다. 이번 월드컵에서 한국 월드컵 역사에 남을 멋진 골을 기대할게.'
전영지기자 sky4us@sportschosun.com



:) 당신이 좋아할만한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