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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사부일체]②스승 기억속 어린 기성용 "경기중 공을 손으로 잡더니"

하성룡 기자

기사입력 2014-05-13 07:31


사진제공=정한균 감독

"초등학생 지도를 하면서 축구 욕심이 이렇게 많은 선수를 본 적이 없어."

2000년, 초등학교 5학년인 기성용(25·선덜랜드)의 독특했던 유년기는 여전히 순천중앙초등학교 후배들에게 전설로 남아있다. 초등학생 기성용을 지도한 정한균 순천중앙초 감독(56)의 입을 통해 순천중앙초 후배들에게 14년전 기성용의 일화가 전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정 감독은 "경기 중에 공을 손으로 잡아 학교 밖으로 뻥 차버린 선수를 본적 있나?"라며 얘기를 시작했다. 한국 축구의 '중원 사령관'인 기성용의 유년기는 유쾌했고, 당돌했다.



욕심이 부른 돌발행동?

정 감독이 기성용을 처음 만난 건 초등학교 3학년 때였다. 부친인 기영옥 광주시축구협회장(당시 광양제철고 감독)의 손을 잡고 온 기성용을 테스트했다. 킥 감각은 뛰어났지만 기본기가 전혀 없는 '초보'였다. 당시 광양제철고를 지휘하고 있던 기 회장은 순천중앙초를 찾아 정 감독에게 아들을 맡겼다. '기본기 교육'에 충실한 정 감독의 철학을 믿었기 때문이다. 기성용은 5학년부터 팀의 주전으로 활약했다. 그러나 타학교와의 연습경기에 출전한 기성용이 돌출 행동을 했다. 공이 오자 손으로 잡았다. 그리고 학교 정문 밖으로 공을 뻥 차버렸다. 이유가 있었다. "자신에게 볼을 잘 주지 않아 화가나 볼을 차 버렸다"는 게 '어린' 기성용의 설명이었다. 정 감독은 겉으로는 화를 냈지만 속으로는 '이 놈, 욕심봐라'라며 승부욕을 눈여겨봤단다. 그는 "많이 혼냈는데 생각해보면 그런 축구 욕심이 있었기에 지금의 기성용이 있는 것 같다. 그동안 이렇게 축구에 욕심이 많은 선수를 본적이 없다"고 했다. '뻥 축구'가 대부분인 초등학교 축구에서 기성용은 패싱 플레이를 원했다. 어렸을 때부터 기 회장의 제자인 '패스 마스터' 윤정환(사간 도스 감독), 고종수(수원 코치)의 플레이를 즐겨본 영향이 컸다. 미드필드를 거치지 않는 동료들의 플레이에 화가 났던 것이다. 축구 공부에 대한 욕심도 남달랐다. 정 감독은 "다른 선수들은 모두 휴식 시간에 쉬기만 하는데 성용이는 그때부터 '월드컵 골 모음' 비디오를 즐겨봤다. 재능도 노력도 유별났다"고 했다.




파워에서 길을 찾다

위기도 있었다. 축구선수의 길을 걸은지 1년, 기성용이 초등학교 4학년에 재학 중인 당시 기 회장이 정 감독을 찾아왔다. 1년 동안 기성용의 성장을 지켜본 기 회장은 고개를 저었다. '축구를 포기시켜야 겠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공을 찬다면 선수로 성공하지 못할 것이다. 공부를 시켜야겠다." 기 회장의 '폭탄 발언'에 정 감독이 설득에 나섰다. "초등학생 지도는 나한테 맡겨달라. 아직 4학년이다. 1년만 시간을 달라." 4학년 기성용은 마른 체격의 평범한 소년이었다. 파워도 부족했다. 그러나 1년 동안 정 감독의 특훈을 소화하며 기본기와 파워를 기른 기성용의 실력이 눈에 띄게 향상됐다. 축구 유전자를 타고 난 덕분에 성장 속도도 빨랐다. 파워가 더해지니 몸싸움에 능해졌고, 기본기가 탄탄해지면서 드리블도 능숙해졌다. 기성용의 '에이스 본능'이 발휘되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이다. 5학년생인 기성용은 2000년 인천에서 열린 전국소년체전에서 팀을 우승으로 이끌었고 최우수선수상도 거머쥐었다. 2001년에는 차범근 축구대상까지 차지하며 한국 축구의 유망주로 이름을 알렸다.

또 한번의 성장은 호주 유학을 통해 이뤄졌다. 기 회장은 축구는 못해도 좋으니 영어만 제대로 배웠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중학생 기성용을 홀로 호주로 보냈다. 성장기와 때가 맞았다. 호주에서 매일 고기(스테이크)를 먹더니 키가 '쑥쑥' 자랐다. 힘까지 붙었다.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기성용을 본 정 감독은 깜짝 놀랐다. "성용이가 한참 커가지고 왔다. 몸에 파워가 붙으니 볼을 자유자재로 다뤘다." 파워가 부족해 축구를 그만 둘 뻔 했던 기성용은 장신의 몸에서 나오는 넘치는 파워와 기술을 바탕으로 한국 축구의 '에이스'로 거듭났다.



스승이 바라는 '공격본능'

초등학교 시절 기성용을 섀도 공격수로 기용했던 정 감독은 기성용의 '공격 본능'을 누구보다 잘 안다. 정 감독은 페널티박스 부근에서의 공격력은 기성용이 공격수를 능가한다고 평가한다. "어렸을 때부터 공격 성향이 짙은 선수였다. 특히 상대 페널티박스 앞에서 볼을 다루며 골을 넣은 기술은 정말 뛰어나다." 기성용은 첫 출전한 2010년 남아공월드컵에서 아쉽게 득점에 실패했다. 기성용의 두 번째 월드컵, 스승이 바라는 모습이 바로 '공격 본능'이다. 그는 "수비를 하고, 안정적으로 패스를 하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브라질에서는 더 공격적인 침투 패스와 돌파, 과감한 슈팅을 많이 했으면 좋겠다"며 제자의 첫 월드컵 득점을 기원했다. 지난해 아쉽게 무산된 재회의 기회도 월드컵 이후로 미뤄뒀다. 정 감독은 지난해 9월 순천중앙초를 이끌고 영국 런던에서 열린 다논 네이션스컵에 출전했다. 런던행을 앞둔 그해 6월, 기성용이 학교를 찾아 후배들을 런던에서 응원하기로 약속했다. 그러나 9월에 선덜랜드로 임대 이적하는 바람에 재회가 무산됐다. 정 감독은 "이적 문제로 (당시에는) 어쩔 수 없었지만 이번 월드컵이 끝난 뒤에는 다시 학교를 방문해 후배들을 만났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하성룡 기자 jackiecha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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