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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전방부터 최후방까지' 김한원이 멀티플레이어가 된 이유

박찬준 기자

기사입력 2013-10-30 08:15


사진제공=수원FC

2002년 한-일월드컵 이후 한국축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단어가 있다. '멀티플레이어'다.

거스 히딩크 감독은 다양한 포지션에서 뛸 수 있는 한국 선수들의 특성을 이용해 4강 신화를 달성했다. 멀티플레이어라고 해도 소화할 수 있는 포지션은 2~3개 정도다. 그런 의미에서 수원FC의 터줏대감 김한원(32)은 진정한 멀티플레이어라 할 수 있겠다. 그는 조덕제 감독의 만능카드다. 베스트11에 구멍이 나면 바로 김한원 카드를 꺼낸다. 김한원은 올시즌 최전방 공격수, 공격형 미드필더, 윙어, 수비형 미드필더, 센터백, 윙백까지 전 포지션에서 뛰었다. 내셔널리그 시절에는 골키퍼까지 본 적이 있다. 그야말로 진정한 멀티플레이어다. 사실 선수들은 멀티플레이어보다는 한 포지션의 전문가가 되기를 원한다. 전술적으로나, 개인적으로나 더 이롭다는 판단에서다. 김한원은 다르다. 어느 포지션에서 뛰던 상관하지 않는다. 이유가 있다. 그라운드를 누빈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일인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김한원은 2년제인 세경대학교를 졸업했다. 실력을 인정받아 동국대에 편입할 예정이었다. 동국대에서 동계훈련도 마쳤다. 그러나 일이 꼬였다. 편입시험에 대한 부분을 듣지 못했다. 결과는 낙방이었다. 좌절한 김한원은 축구에 대한 꿈을 접고 해병대에 지원했다. 군생활을 하던 중 우연한 기회가 찾아왔다. 수원시청(현 수원FC)가 해병대 캠프에 지원했다. 해병대서 공 좀 차는 군인들을 모아 연습경기를 했다. 김한원은 매경기 골을 넣으며 맹활약을 펼쳤다. 김창겸 당시 감독이 러브콜을 보냈다. 한참을 고민하다 제안을 받아들였다. 전역 후 곧바로 수원시청에 합류했다. 사회에 적응하는 것도, 준 프로급되는 경기에 적응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이를 악물었다. 결과는 달콤했다. 2005년 내셔널리그 득점왕을 차지했다.

꿈에 그리던 K-리그에서 관심을 보였다. 2006년 가장 적극적이었던 인천에 둥지를 틀었다. 역시 프로의 벽은 높았다. 꿈만 가지고는 쉽지 않았다. 다행히 후반기 주전으로 도약하며 3골-1도움을 거뒀다. 가능성을 인정받아 전북으로 이적했지만, 2시즌 동안 14경기 출전에 그쳤다. 공격포인트는 없었다. 여러팀에서 이적 제안이 있었지만, 그를 다시 축구계로 끌어준 친정팀 수원시청을 택했다. 그는 수원FC의 터줏대감으로 자리잡았다. 우여곡절을 보낸 그에게 경기에서 뛴다는 것은 가장 즐거운 일이었다. 그가 여러포지션을 마다하지 않는 이유다. 물론 어린시절 다양한 포지션에서 뛴 것도 도움이 됐다.

그는 경기에 대한 욕심이 대단하다. 2~3년 밖에 남지 않은 현역생활, 동료들과 땀흘리며 미련없이 마치고 싶다. 남은 목표는 수원FC와 함께 K-리그 클래식에서 뛰어보는 것이다. 특히 수원 삼성과 더비 경기를 해보고 싶다. 그래서 수원시민에게 수원 삼성 뿐만 아니라 수원FC라는 열심히 뛰는 팀이 있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다. 그게 그에게 남은 마지막 목표이자 소원이다.


박찬준 기자 vanbaste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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