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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꿈은 트로피를 수집하는 게 아니라 아름다운 축구를 단 5분이라도 그라운드 위에서 펼치는 것이다."
아르센 벵거 감독의 꿈이 이루어지고 있다. 아스널은 2일(한국시각) 나폴리와의 2013~2014시즌 유럽챔피언스 리그 32강 조별 리그 2차전에서 2대0 완승을 거두었다. 결과도 결과지만 완벽에 가까운 경기력을 보이며 '벵거볼'이 완성되고 있음을 펼쳐보였다. 중심에는 올시즌 5000만유로의 이적료에 아스널 유니폼을 입은 메주트 외질이 있다.
1골-1도움을 기록한 나폴리전을 되돌아보자. 언뜻보면 간단한 플레이들이지만, 하나하나가 고난도의 기술이 숨어 있다. 먼저 골장면이다. 아스널에서 데뷔골이 없었던 외질은 애런 램지의 크로스를 받아 데뷔골을 기록했다. 쉽게 보이는 플레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볼이 살짝 뜬 것을 순간적으로 감지하고 발목을 튼 고난이도의 슈팅 기술을 보였다. 도움 장면에서는 개인기, 공간창출 능력 등 외질이 가진 장기를 모두 보여줬다. 상대 수비의 위치를 정확히 파악한 후 순간적인 돌파로 공간을 만들어낸 외질은 정확한 패스로 지루의 골을 도왔다. 아르센 벵거 감독을 비롯해, 동료들도 "외질은 차이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선수"라며 만족감을 표시하고 있다
최근 스페인 리그 출신 선수들은 EPL을 지배하고 있다. 다비드 실바, 야야 투레, 세르히오 아게로(이상 맨시티), 후안 마타(첼시) 등이 맹활약을 펼치며 올시즌 로베르토 솔다도(발렌시아), 알바로 네그레도, 헤수스 나바스(이상 맨시티) 등이 새롭게 가세했다. EPL은 여전한 속도전에 기술적으로 많은 발전을 이뤄왔다. 과거 피지컬이 좋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리그에서 기술이 좋은 선수들이 성공할 수 있는 리그로 변모했다. 최고 수준의 기술을 지닌 외질이 성공할 수 있는 풍토를 갖춰진 셈이다. 외질은 '패스마스터'라는 별명답게 뛰어난 패싱력과 넓은 시야, 볼키핑, 드리블까지 플레이메이커가 갖춰야할 모든 요소를 지녔다. 스토크시티전에서 두개의 도움을 세트피스에서 올렸을 정도로 날카로운 킥능력도 갖췄다. 레알 마드리드에서 빼어난 찬스메이킹 능력을 과시했던 외질은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에서 경기당 평균 5번의 킬패스를 기록하며 이부분 단독 1위를 달리고 있다.
빅스타에 목말랐던 아스널 팬들은 신이 났다. 외질의 홈경기 데뷔전이었던 스토크시티전을 앞두고 팬 수백명은 경기장 한편에서 외칠 유니폼을 입고 어깨동무를 하는 이벤트를 벌였다. 최근 아스널 팬들 사이에선 SNS(소셜네트워킹서비스)에서 'O'를 외질의 독일어 이름 첫 자인 'O'로 바꿔쓰는 것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아스널 대변인은 외질 영입 후 아스널의 셔츠 판매량이 예년과 비교했을 때 무려 12배나 급증했다고 밝혔다. 외질 영입의 진짜 효과는 따로 있다. 스타가 경기장 안팎에서 주는 효과를 실감한 벵거 감독이 또 다른 슈퍼스타 영입을 노리고 있다는 점이다. 아스널은 카림 벤제마(레알 마드리드), 안드레아 피를로(유벤투스), 마르코 로이스(도르트문트) 등 4000만유로가 넘는 선수들과 연결되고 있다. 아스널은 지난 몇년간 티에리 앙리, 파브레가스, 로빈 판 페르시 등 팀의 핵심자원을 모두 뺏겼다. 빅클럽 이미지를 상당부분 잃었다. 그러나 외질의 영입과 함께 아스널은 판매자에서 구매자로 변신에 성공했다. 이는 클럽 브랜드에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박찬준 기자 vanbaste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