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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명보식 제로톱, 그리고 박주영

박찬준 기자

기사입력 2013-09-12 07:27



"한국의 딱 한가지 아쉬운점이 있다면 골결정력이다."

10일 한국과 친선경기를 마친 이고르 스티마치 크로아티아 감독의 말이다. 굳이 그의 말이 아니더라도 홍명보호의 문제는 자명하다. 골결정력이다. '약체' 아이티전에서의 4골을 제외하면 5경기에서 2골에 불과하다. 홍 감독도 잘 알고 있다.

홍 감독은 아이티전과 크로아티아전 후반 고수하던 원톱 카드를 버렸다. 전술 변화가 눈에 띄었다. 제로톱이었다. '미드필더' 구자철(볼프스부르크)이 최전방을 누볐다. 골결정력을 해소하기 위한 홍 감독의 깜짝 카드이자 고육지책이었다. 결과적으로는 만족할만한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그러나 '원톱' 조동건 때보다는 공격이 살아나는 모습이었다. 홍 감독의 '제로톱' 카드는 의미있는 실험이었다. 궁극적으로 미드필드의 유기적인 플레이를 강조하는 홍 감독의 전술지향점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제로톱이란?

"미래의 축구는 4-6-0 전술이 될 것이다." 1994년 미국월드컵에서 브라질을 우승으로 이끌었던 알베르투 파헤이라 감독의 말이다.

축구전술의 역사는 공격수 줄이기와 맥을 같이 한다. 고대의 축구는 9-0-1 포메이션으로 출발했다. 8-1-1 전형에서 미드필드 개념을 도입한 이래 공격 숫자는 줄이고 미드필드와 수비의 숫자는 늘어났다. 1990년대 말까지 미드필드 숫자에서 차이가 있을 뿐 투톱은 사실상 고정된 형태였다. 네덜란드와 아약스의 3-4-3이 신선했던 이유는 수비숫자를 줄이고 공격수를 늘린 역발상이었기 때문이다. 2000년대 들어 원톱이 각광을 받기 시작했다. 치열해지는 허리싸움에 대응하기 위해 공격숫자를 더 줄여버렸다. 크리스마스트리 전법(4-3-2-1)을 사용한 프랑스는 1998년 프랑스월드컵과 유로2000을 연달아 제패하며 현대축구의 패러다임을 바꿨다. 제로톱은 여기서 더욱 진화한 형태다.

제로톱이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은 2005~2006시즌 이탈리아 세리에A의 AS로마였다. 루치아노 스팔레티 당시 AS로마 감독(현 제니트)은 공격형 미드필더 프란체스코 토티를 정점으로 한 4-6-0 전형으로 돌풍을 일으켰다. AS로마 이후 잠잠했던 제로톱은 바르셀로나를 통해 정점을 찍었다. 호셉 과르디올라 당시 바르셀로나 감독은 오른쪽 측면에 있던 리오넬 메시를 중앙으로 이동시키며 '티키타카(스페인어로 탁구공이 왔다갔다한다는 뜻·바르셀로나의 패싱축구를 설명하는 말)'를 완성했다. 메시는 중앙에서 신들린 듯한 득점포를 폭발시켰다. 바르셀로나는 2008~2009시즌 6관왕을 달성하며 '세기의 팀'이라는 평을 받았다.

제로톱은 전문적인 공격수가 없는 대신 미드필드를 극대화한 전술이다. 최전방에 포진한 '폴스9(가짜 원톱)'이 미드필드까지 내려와 허리싸움에 가담한다. 중앙 수비가 마크할 스트라이커가 없어 허둥대는 틈을 타 좌우에 포진한 측면공격수나 공격형 미드필더가 배후를 침투하는 것이 주 골자다. 구자철을 최전방으로 올린 후 좌우 날개 손흥민(레버쿠젠)과 이청용(볼턴)의 공격력이 살아났다는 점은 이러한 전술적 특징에서 기인한다.


박주영이 필요한 이유

그러나 문제는 마무리였다. '미드필더' 구자철은 득점할 수 있는 위치로 움직이는 감각이 부족했다. 제로톱의 성패는 폴스9의 역량에 달려있다. AS로마와 바르셀로나에는 모두 토티와 메시같은 패싱력과 득점력을 두루 겸비한 '가짜 원톱'이 있었다. 제로톱이 성공하려면 날카로운 패스를 찔러 줄 수 있는 공격형 미드필더와 포스트 플레이가 가능한 스트라이커의 역할을 동시에 소화해야 한다. 공격의 전포지션을 뛸 수 있는 토티와 메시는 이 역할에 제격이다. 반면 구자철은 공격형 미드필더는 소화했지만 스트라이커 역할은 불가능했던 것이다. 구자철도 출국하며 "포지션에 혼동을 느꼈다"고 토로했을 정도.

홍 감독은 크로아티아전이 끝난 후 2골을 허용하기는 했지만 후반전 공격작업에 대해서는 만족감을 표시했다. 좌우 측면과 중앙의 유기적인 플레이를 칭찬한 것이다. 손흥민 이청용으로 구성된 양 날개는 국제무대에서 한국이 내세울 수 있는 가장 경쟁력있는 무기다. 결국 크로아티아전 후반이 향후 A대표팀의 공격 루트가 될 것이다. 이 전술의 완성도를 위해서는 최전방의 역할이 중요하다. 좌우 측면의 공격력을 극대화하면서 득점력을 갖춘. 결국 박주영(아스널)이 답이다. 박주영은 공격형 미드필더부터 섀도 스트라이커, 최전방까지 다양한 위치를 소화할 수 있다. 최근 부진했지만, 큰 무대에서 득점한 경험도 많다. 올림픽 대표 출신의 어린 선수들을 비롯해, 이청용 등 기존 선수들과도 충분히 호흡했다. 홍 감독식 제로톱을 소화할 수 있는 최상의 조건을 지녔다. 박주영이 꼭 필요한 이유다.


박찬준 기자 vanbaste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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