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년의 세월이 흘렀다. 창창했던 검은 머리에는 어느덧 흰 머리가 수북했다. 하지만 그 때나 지금이나 반가운 서로의 얼굴은 잊지 않았다. 맞잡은 두 손에는 이념 대립이나 복잡한 정세는 없었다.
북핵실험과 개성공단 폐쇄 등 긴장일로를 치닫던 남-북 관계도 서서히 해빙무드에 접어들고 있다. 하지만 입국 때부터 대회 준비 시점까지 삼엄한 철통경계 분위기에 휩싸인 북한 선수단과 접촉하는게 쉬울 리 만무했다. 윤 감독은 "같은 숙소를 쓰면서도 얼굴 한 번 보지 못했다"고 웃었다. 그라운드에서 비로소 서로를 확인했다고 한다. 윤 감독은 "경기 준비 차 라커룸을 나오는데 누가 '윤 동무'하고 불러서 보니 현역시절 만났던 윤길남 북한 선수단장이었다.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고 미소를 띠었다.
그라운드 밖에선 친구지만, 승부는 승부였다. 김 총감독의 북한은 윤 감독이 이끄는 한국에 2대1 역전승을 거두면서 실력차를 증명해 보였다. 전반 26분 한국이 김수연(충북 스포츠토토)의 선제골로 기선을 제압했으나, 전반 37분과 38분 김은별(4.25)이 잇달아 터뜨린 득점으로 전세가 순식간에 뒤집어졌다. 승부는 북한의 2대1 승리로 마무리 됐다.
김 총감독은 "윤 감독과는 선수 시절 함께 했다. 서울과 평양에서 함께 달렸다"고 웃었다. 오랜기간 북한 여자 대표팀을 이끌고 있는 김 총감독은 한국 여자축구의 발전상과 나아갈 방안에 대해 말해달라는 물음에는 "한국 여자축구가 단기간 내에 빨리 발전하기는 했다. 하지만 어떻게 해야 발전할 수 있을지는 아마 스스로가 잘 알 것"이라고 말했다. 2015년 캐나다월드컵 본선행을 목표로 달리는 친구가 스스로의 힘으로 일어서길 바라는 우정의 메시지였다.
상암=박상경 기자 ppark@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