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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충성이 조국 골문을 노리는 이유

민창기 기자

기사입력 2011-08-10 15:32


지난 1월30일(한국시각) 호주와의 카타르아시안컵 결승전에서 결승골을 넣은 이충성이 환호하며 그라운드를 질주하고 있다. 도하(카타르)=김경민 기자 kyungmin@sportschosun.com

22년 간 이충성(李忠成)으로 불렸는데 지금 그의 공식 이름은 오야마 다다나리(大山忠成). 그래도 이충성을 고집한다. 일본축구대표팀 유니폼에는 'LEE'가 박혀 있다. 한국 국적을 포기하고 일본인이 된 이충성의 가슴에는 대한민국이 선명하게 찍혀 있다.

일본대표팀의 주전 공격수로 성장한 재일교포 4세 이충성(26·히로시마). 10일 한국전에 나서는 그는 '축구계의 추성훈'이다. 추성훈(36)과 아키야마 요시히로(秋山成勳),두 개의 이름을 가진 추성훈을 꼭 닮았다. 재일교포 3세인 추성훈이 유도 국가대표가 되고 싶어 한국을 찾았지만 현실의 벽에 막혀 꿈을 이루지 못하고 일본으로 귀화해 일본국가대표가 된 것처럼 이충성도 그랬다.

아버지는 재일교포 3세 이철태씨(53). 도쿄도 니시도쿄시에서 야키니쿠(일본식 불고기)집을 운영하는 이씨는 실업팀 요코하마 트라이스타에서 선수생활을 했다. 아버지의 피를 이어 받은 이충성은 어린시절부터 두각을 나타냈다. 도쿄 조선학교 5년 때 3부 리그 요코가와 무사시노FC 유스팀에 입단했고, 2001년 도쿄도립 다나시고등학교 입학과 동시에 J-리그 FC도쿄 유스팀에 스카우트 됐다.

이충성의 유니폼 등번호에는 같한 의미가 담겨 있다. 2005년 FC도쿄에서 가시와 레이솔로 이적해 20번을 달고 뛰었다. 2002년 한-일월드컵 4강 신화의 주인공 홍명보가 가시와 시절 달았던 등번호였다. 홍명보의 근성을 본받고 싶었다. 2009년 히로시마 산프레체로 이적했을 때 이충성은 구단에 9번을 달라고 했다. 히로시마의 '레전드' 노정윤이 달았던 그 번호였다.


지난 1월 30일(한국시간) 호주와의 2011년 카타르아시안컵 결승전에서 연장 후반 결승골을 터트린 이충성이 다이내믹한 골세리머니를 펼치고 있다. 도하(카타르)=김경민 기자 kyungmin@sportschosun.com
한국인도 아니고 일본인도 아닌 중간자 자이니치(재일 한국인). 설움과 아픔이 적지 않았다. 2004년 열아홉 이충성은 파주NFC(국가대표팀 트레이닝센터)에 입소했다. 2005년 네덜란드 국제축구연맹(FIFA) 청소년월드컵(20세 이하)을 준비하고 있던 박성화 감독이 호출했다. 당시 청소년대표팀에는 박주영(26·AS 모나코) 신영록(24·제주) 정성룡(26) 백지훈(26·이상 수원) 김진규(26·고후)가 있었다. 하지만 이충성은 끝내 태극마크를 달고 뛰지 못했다.

이충성은 "마음고생이 심했다. 한국어 표현력이 부족해 동료들로부터 '쪽바리(일본인을 비하해 부르는 말)' 소리를 들었다"고 했다. 따뜻하고 포근해야할 조국은 이충성을 일본인으로 여겼다.

2007년 2월 9일. 이충성에게 잊을 수 없는 날이다. 이충성을 눈여겨 본 소리마치 야스히루 일본올림픽대표팀 감독이 2006년 가을 귀화를 설득했다. 올림픽대표 발탁을 약속했다. 오랜 고민 끝에 그해 9월 귀화를 신청했고, 5개월 만에 일본국적이 나온 것이다. 이충성은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 일장기를 달고 뛰었다. 자이니치가 귀화해 일본축구대표가 된 것은 이충성이 처음이었다.


호주와의 카타르아시안컵 결승전에서 결승골을 터트린 이충성에게 혼다(왼쪽에서 두번째)가 달려들어 환호하고 있다. 도하(카타르)=김경민 기자 kyungmin@sportschosun.com
아버지는 귀화를 앞둔 아들의 손을 잡고 대구 선산을 찾았다. 이씨는 조상 무덤 앞에 무릎을 꿇고 "이제 아들을 귀화시킵니다. 힘내서 열심히 살겠습니다"라고 다짐했다.


정체성의 혼란을 정리한 그 앞에 새로운 길이 열렸다. 지난 1월 처음으로 일본 A대표로 발탁돼 카타르아시안컵에 출전했다. 1월 9일 요르단과의 조별예선 1차전 후반에 교체 출전했다. A매치 데뷔전이었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주전이 아닌 교체멤버였다. 한국과의 4강전에는 출전하지도 못했다. 절치부심하던 이충성은 어렵게 찾아온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호주와의 결승전 연장 전반 9분 교체 출전한 이충성은 후반 4분 결승골을 넣었다. A매치 첫 골이 일본을 아시안컵 우승으로 이끈 것이다.

독일 축구 전문잡지 키커는 '한국인 이충성이 일본의 우승을 쏘아 올렸다'고 썼다.

올시즌 소속팀에서도 펄펄 날고 있다. 20경기에서 10골을 터트려 J-리그 득점 공동 1위다. 이번 여름에는 독일 분데스리가 호펜하임 이적설이 있었고, 헤르타 베를린이 관심을 보이고 있다는 얘기가 나왔다.

이충성은 한국과 일본에 대해 묻는 질문이 나올 때마다 "나에게는 한국과 일본, 두 개의 조국이 있다"고 말하곤 한다.

지난 주 국내파를 중심으로 한 대표팀 소집 훈련 때 이충성은 "한국전에 꼭 출전하고 싶다. 가슴이 두근거린다"고 했다. 9일 한-일전 하루 전에 열린 인터뷰에서는 "한국에 지고 싶지 않다"고 했다.

그의 마음 속에는 한국과 일본이 공존하고 있다. 결코 가슴 속에서 지울 수 없는 조국에 대한 애정과 함께 새로운 조국 일본대표로서 성장한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열망이 함께 자리잡고 있다.

재일교포 출신이지만 일본 언론은 이충성에게 우호적이다. 일본의 한 스포츠전문지 기자는 "그라운드에선 열정적이지만 평소엔 굉장히 겸손하고, 부드러운 선수다. 인간적으로 이충성을 좋아한다"고 했다. 또다른 일본 취재진은 "매년 성장이 눈에 보인다"고 했다.

10일 한국전은 이충성에게 아주 특별했다.


민창기 기자 huelva@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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