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현장] "열정X코피 쏟았다"…'칸→오스카' 찢은 봉준호의 질주는 지금부터(종합)

조지영 기자

기사입력 2020-02-19 12:06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4개 부문을 석권한 영화 '기생충' 팀의 기자회견이 19일 오전 서울 중구 소공동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열렸다. 봉준호 감독이 질문을 듣고 있다. 소공동=박재만 기자 pjm@sportschosun.com/2020.02.19/
[스포츠조선 조지영 기자] "거대 스튜디오에 비하면 훨씬 못 미치는 예산으로 '오스카 캠페인'을 진행했지만 우리는 그 못지 않은 열정으로 뛰었다. 그말인즉슨 나와 송강호 선배가 코피를 흘릴 일이 많았다."

전원 백수인 기택(송강호)네 장남 기우(최우식)가 가족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으며 박사장(이선균)네 과외선생 면접을 보러 가면서 시작되는 예기치 않은 사건을 따라가는 가족희비극 '기생충'(봉준호 감독, 바른손이앤에이 제작). 19일 오전 서울 중구 소공동에 위치한 웨스틴 조선호텔 서울 그랜드볼룸에서 한국 영화 최초 아카데미 4관왕을 달성한 '기생충' 기자회견이 열렸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아카데미 무대를 빛낸 봉준호 감독, 곽신애 바른손이앤에이 대표, 한진원 작가, 이하준 미술감독, 양진모 편집감독과 함께 '기생충'의 주역 송강호, 이선균, 조여정, 박소담, 이정은, 장혜진, 박명훈이 참석했다.

'기생충'은 2019년 5월 열린 제72회 칸국제영화제에서 한국 영화 최초 황금종려상을 수상했고 곧바로 그해 5월 30일 국내 개봉해 53일 만에 1000만 관객을 돌파, 작품성과 흥행을 동시에 거머쥐었다. 또한 '기생충'은 배급사 네온(NEON)을 통해 지난해 10월 11일 북미에서 정식 개봉, 제77회 골든글로브 시상식 외국어영화상, 제26회 미국 배우조합상(SAG) 앙상블상, 제72회 미국 작가조합상(WGA) 갱상, 제73회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 외국어영화상·갱상, 그리고 대망의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 작품상·감독상·국제영화상·갱상까지 휩쓸며 한국 영화의 새로운 역사를 만들었다.

특히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은 한국 영화 역사뿐만 아니라 아카데미 역사 또한 새로운 신기록을 만들었다. '오스카 소 화이트(OscarSoWhite)'라는 오명이 붙을 정도로 100년 역사 가까이 백인 남성 위주의 수상을 이어간 아카데미지만 '기생충'이 이런 아카데미의 편견을 깨고 92년 역사 최초 외국어 영화 작품상을 수상한 것. 또한 올해 아카데미에서 4개 부문을 수상한 '기생충'은 역대 아카데미 외국어 영화 최다 수상이며 여기에 역대 칸영화제 황금종려상과 아카데미 작품상을 동시에 거머쥔 3번째 작품, 작품상과 국제장편영화상 최초 동시 수상, 역대 아시아 출신 감독 중 2번째 감독상 수상, 아시아 영화 최초 외국어 영화 중 6번째 갱상 수상, 아시아 여성 제작자 최초 작품상 수상 등 아카데미에 파란을 일으켰다.

이렇듯 칸영화제부터 아카데미까지 점령하며 전 세계 '#봉하이브(hive·벌집)' 신드롬을 일으킨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은 19일 기준 해외 영화제 수상 19개와 해외 시상식 수상 155개를 더해 무려 174개의 트로피를 가져갔다.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4개 부문을 석권한 영화 '기생충' 팀의 기자회견이 19일 오전 서울 중구 소공동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열렸다. 송강호, 봉준호 감독이 질문을 듣고 있다. 소공동=박재만 기자 pjm@sportschosun.com/2020.02.19/
4개의 아카데미 트로피를 품에 안고 금의환향한 봉준호 감독은 "이 자리에서 '기생충'의 제작발표회를 했는데 제작발표회한지 1년이 됐다. 다시 여기에 오게 됐다. 굉장히 기쁘다. 기분이 정말 묘하다"고 말문을 열었다.

그는 "후보에 오른 모든 작품이 '오스카 캠페인'을 펼친다. 우리가 처한 상황은 중·소배급사인 네온을 통해 캠페인을 펼쳤다. 거대 스튜디오에 비하면 훨씬 못 미치는 예산으로 진행했지만 대신 열정으로 뛰었다. 그말인즉슨 나와 송강호 선배가 코피를 흘릴 일이 많았다. 열정으로 메꿨다. 정확하지 않지만 인터뷰만 600회 Q&A만 100회를 했다. 다른 경쟁작은 LA 시내, TV에 전면 광고를 냈지만 우리는 아이디어와 네온, CJ, 바른손이앤에이가 똘똘 뭉쳐 진행했다. 한편으로는 '바쁜 창작자들이 잠시 창작의 일을 멈추고 캠페인에 참여하나?' 낯설기도 했지만 반대로 5~6개월동안 진지하게 작품을 점검해보는 과정이기도 하더라"고 설명했다.

또한 아카데미를 향해 '로컬 시상식'이라고 표현한 것에 대해 "도발은 아니다. 칸, 베니스, 베를린은 국제영화제이고 아카데미는 미국 중심 영화제임을 설명하는 과정이었다. 그런 내 이야기가 SNS를 통해 번졌더라. 전략을 가지고 이야기한 것은 아니었다. 대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나온 이야기였다"고 웃었다.


앞서 봉준호 감독은 '기생충'뿐만 아니라 '괴물'(06) '설국열차'(13)를 통해 빈부 격차 문제를 다룬 것에 대해 "빈부 격차를 다룬 작품이 처음은 아니었다. '괴물'과 '설국열차'는 SF적이지만 '기생충'은 우리 주변의 이야기와 같은 현실에 기반한 분위기의 영화라 더욱 폭발력을 가진 것 같다"며 설명했고 또 많은 기대를 모으고 있는 차기작에 "지금 준비하고 있는 2편의 작품은 몇 년 전부터 준비하고 있던 작품이다. 평소 하던대로 준비하고 있다. '기생충'도 나를 포함해 모든 제작진이 평소 해왔던대로 해왔던 영화지만 오늘날 이런 결과를 얻었다. 늘 정성스레 만든 영화였고 그 기조가 다음 차기작에서도 이뤄질 것이다"고 소신을 전했다.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4개 부문을 석권한 영화 '기생충' 팀의 기자회견이 19일 오전 서울 중구 소공동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열렸다. 봉준호 감독이 인터뷰를 하고 있다. 소공동=박재만 기자 pjm@sportschosun.com/2020.02.19/
수많은 패러디를 낳은 수상 소감에 대해서도 특유의 위트를 전한 봉준호 감독. 그는 "유세윤, 문세윤 씨 참 천재적인 것 같다. 존경한다. 최고의 엔터테인너다. 오늘 아침에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이 편지를 보냈다. 나로서는 영광이었다. 개인적인 편지라 전부 공개할 수는 없지만 마지막 문장에 '그동안 수고했고 좀 쉬어라. 대신 조금만 쉬어라. 빨리 컴백해라'고 하더라. 그게 정말 감사했다"고 고백했다.

"너무 과도한 관심과 업부로 번아웃 증후군(한 가지 일에 지나치게 몰두하던 사람이 극도의 신체적·정신적 피로로 무기력증·자기혐오 등에 빠지는 증후군)을 받지 않았느냐?"라는 질문에 대해 "2017년 개봉한 '옥자' 당시 이미 번아웃 판정을 받았다. '기생충'을 너무 찍고 싶어서 힘을 내 촬영했다. 오스카도 잘 끝냈다. 마침내 마음이 편안해 지면서 끝이 났구나 싶다. 2015년 곽신애 대표와 처음 '기생충'에 대해 이야기를 했는데 행복한 마무리가 된 것 같아 기쁘다. 노동을 정말 많이한 것은 사실이다. 조금 쉬어볼까 했는데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이 조금만 쉬라고 해서 고민된다"며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육체적, 정신적으로 방전됐다. 10시간동안 기내에서 기내식을 먹고 잠만 잤는데 생각을 정리하면서 시적인 문구도 남겨야 하는데 그럴 여력이 없었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4개 부문을 석권한 영화 '기생충' 팀의 기자회견이 19일 오전 서울 중구 소공동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열렸다. 봉준호 감독이 입장하고 있다. 소공동=박재만 기자 pjm@sportschosun.com/2020.02.19/
오는 26일 개봉하는 '기생충: 흑백판'에 대해 "고전 영화에 대한 동경이 있다. 내가 만약 1930년대에 살고 있고 흑백으로 영화를 찍으면 어떤 느낌일까 호기심이 있었다. '마더' 때도 그래서 흑백 작업을 했고 이번 '기생충'도 흑백 버전을 만들었다. 굉장히 묘하더라. 색이 빠졌을 뿐 똑같은 영화인데 다른 느낌이 있다. 보는 분마다 다른 느낌을 받을 것 같다. 로테르담영화제에서 어떤 한 관객은 영화에서 왠지 더 심하게 냄새가 나는 것 같다고 하더라. 흑백판이 연기 디테일이 더 잘 보인다"고 자신했다.

미국 HBO에서 드라마화되는 '기생충'에 대해 "밀도 높은 TV 시리즈를 만들려고 하고 있다. 틸다 스윈튼, 마크 러팔로 출연 소식이 전해지고 있는데 아직 공식적인 상황은 아니다. 아담 맥케이 감독과 이야기를 하고 있다. '기생충' 드라마도 시간이 꽤 걸릴 것 같다. 차근차근 준비하려고 한다"고 전했다.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4개 부문을 석권한 영화 '기생충' 팀의 기자회견이 19일 오전 서울 중구 소공동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열렸다. 송강호, 봉준호 감독이 인터뷰를 하고 있다. 소공동=박재만 기자 pjm@sportschosun.com/2020.02.19/
외신의 질문에도 재치를 잃지 않은 봉준호 가독이다. 그는 "샤론 최가 없는 상황에서 외신 질문을 받으니 당황스럽다"며 농을 던졌다. 그는 "내가 만들려는 스토리의 본질을 외면하고 싶지 않았다. 이 스토리가 가진 우스꽝스러운 것도 있지만 빈부격차가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씁쓸함도 있다. 그걸 피하고 싶지 않았다. 영화의 처음부터 엔딩까지 정면돌파하고 싶었다. 어쩌면 그 부분을 관객이 불편해하고 싫어할 수 있지만 그것에 대한 두려움으로 영화에 당의정을 입혀 끌고 가고 싶지 않았다. 최대한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를 솔직하게 그리려고 했다. 촬영할때부터 편집할때까지 그런 생각을 가지고 만들었다. 한국에서도 다행히 1000만 관객이 호흥해줬고 한국뿐만 아니라 오스카 후광 없이 전 세계적으로 관심을 받고 있다. 수상 여부를 떠나 동시기 전 세계에서 개봉해 기쁘다. 나도 왜 전 세계 관객이 호응해줬는지 시간을 두고 생각해봐야 할 것 같다"고 답했다.

최근 정치권에서 봉준호 감독의 생가 보전·동상 설립 추진을 이야기 하는 것에 "나 역시 기사를 보고 알게 됐다. 그냥 내가 죽은 뒤에 해주셨으면 좋겠다. 이 모든 게 지나가리라 여기며 넘겼다. 딱히 할 말이 없다"고 머쓱하게 웃었다.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4개 부문을 석권한 영화 '기생충' 팀의 기자회견이 19일 오전 서울 중구 소공동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열렸다. 곽신애 대표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소공동=박재만 기자 pjm@sportschosun.com/2020.02.19/
아시아 제작자 최초 아카데미 작품상을 거머쥔 곽신애 대표는 "성원 해주셔서 감사하다. 처음 아카데미를 가서 무려 작품상까지 받아왔다. 이 작품에 참여한 모든 분에게 같이 영광과 기쁨을 누릴 수 있는 상이라 너무 기뻤다"고 밝혔다.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4개 부문을 석권한 영화 '기생충' 팀의 기자회견이 19일 오전 서울 중구 소공동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열렸다. 영화 '기생충' 갱 한진원이 인터뷰를 하고 있다. 소공동=박재만 기자 pjm@sportschosun.com/2020.02.19/
한국 작가 최초 아카데미 갱상을 수상한 한진원 작가는 "대학교 졸업한 이후 유일한 사회 생활이 충무로였고 아직도 충무로에서 일하고 있다. 나의 인생에서 여러 기간을 보냈던 곳이라 아카데미 수상 당시 이야기를 하게 됐다. 시나리오는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 같다. 내가 취재할 때 많은 도움을 준 가사 도우미, 운전 기사님들, 아동 전문가들에게 감사드린다"고 못다한 소감을 전했다.

그는 "우리 영화에는 아주 잔혹한 악당이 나오지 않는다. 선과 악, 이분법적인 대립이 아니다. 각자 10명의 캐릭터가 드라마를 가지고 있고 이유가 있다. 모두에게 연민을 가질 수 있다는 점이 영화 전체적인 플롯을 따라갈 때 색다르게 다가왔던 것 같다. 나는 서민 가정에서 태어났다. 기우(최우식)의 환경과 가까웠다. 박사장의 세상이 판타지였다. 그래서 그들의 생활을 표현하기 위해 취재원들이 중요했다. 그런 부분이 많은 분에게 공감과 동의를 샀다"고 덧붙였다.

이하준 미술감독은 "스태프들은 이런 스포트라이트를 거의 받을 일이 없다. 뒤편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것도 우리와 같이 함께 고생해준 아티스트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거장들 앞에서 수상 소감을 이야기 했는데 속으로 다짐한게 그들이 내게 준 상이 앞으로 더 잘할 수 있도록 주는 상이라는 의미를 받았다. 한국 돌아오는 내내 나만의 숙제를 안고 돌아온 것 같아 뿌듯했다. 정말 더 열심히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사실 아카데미 수상 소감을 준비하기도 했다. 혹시라도 잊어버릴까봐 빼곡히 적어놨는데 하지 못했다"며 웃었다. "그동안 시상식에서 봉준호 감독 이야기를 한 번도 못했다. 봉준호 감독과 송강호 배우를 포함한 모든 이들에게 감사하다고 전하고 싶었고 사랑하는 아내와 아이들에게 영광을 돌리고 싶다는 소감을 준비했다"고 말해 모두를 웃게 만들었다.

양진모 편집감독은 "스태프로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게 너무 신기하다. 여러 스태프의 노력이 이 자리를 만든 것 같아 감사하다"고 답했다.

'기생충'은 송강호, 이선균, 조여정, 최우식, 박소담, 장혜진, 이정은, 박명훈 등이 출연했다. 또한 '플란다스의 개'(00) '살인의 추억'(03) '괴물'(06) '마더'(09) '설국열차'(13) '옥자'(17)를 연출한 봉준호 감독의 7번째 장편 영화다.

조지영 기자 soulhn1220@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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