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카오게임즈의 엑스엘게임즈 인수, 아쉬움이 남는 이유는?

남정석 기자

기사입력 2020-02-13 06:00


지난해 10월 열린 '달빛조각사' 미디어 간담회 현장에서 개발사 엑스엘게임즈와 퍼블리셔 카카오게임즈 임원들이 한자리에 모여 게임 성공을 기원하고 있다. 최관호 엑스엘게임즈 대표와 조계현 카카오게임즈 대표, 송재경 엑스엘게임즈 대표(왼쪽 2번째부터 오른쪽으로 3명). 사진제공=카카오게임즈

국내 게임계에 연초부터 상징적인 M&A(인수합병)가 이뤄졌다.

카카오게임즈가 엑스엘게임즈의 지분 약 53%를 취득하고 경영권을 인수한다고 11일 밝힌 것이다. 두 회사는 이미 모바일 MMORPG '달빛조각사'의 개발과 퍼블리싱 관계를 맺으며 맞손을 잡은 바 있다. 이에 앞서 카카오게임즈는 2018년 8월 엑스엘게임즈에 100억원을 투자하며 전략적 파트너십을 맺은 후 자연스레 '달빛조각사'의 퍼블리싱 권한을 가져온 상태였다.

카카오게임즈는 엑스엘게임즈가 발행하는 신주와 함께 송재경 대표가 가진 구주 등을 인수하는데 1180억9218만원을 투자했다고 밝혔다. 이로써 전문 퍼블리셔인 카카오게임즈는 검증된 IP와 개발력을 확보하게 됐고, 엑스엘게임즈는 자금을 확보해 개발에만 매진할 수 있게 됐다.

카카오게임즈가 대주주가 되면서 경영권까지 가지게 됐지만, 지금처럼 '독립경영'을 유지한다고 강조했다. 즉 엑스엘게임즈는 송재경, 최관호 각자 대표가 유임을 하는 가운데, 인력에 큰 변화는 없을 것이란 얘기가 된다. 지난해 IPO(기업공개)를 시도하다가 자진 철회한 카카오게임즈는 올해 다시 재도전을 준비하고 있는데, '아키에이지'와 '달빛조각사'라는 인기 IP에 대한 단순 퍼블리싱이 아닌 소유를 하게 되면서 기업가치가 상당히 올라갈 것으로 기대된다. 시장에서는 카카오게임즈의 기업가치가 최대 1조원쯤 된다고 예측했는데, 엑스엘게임즈를 품에 안게 되면서 당연히 투자한 액수 이상의 가치가 플러스 될 것으로 보인다.

사실 이번 M&A는 두 회사가 합치는 이상의 상징적인 사건이라 할 수 있다. 엑스엘게임즈는 '바람의 나라', '리니지' 등을 개발한 한국의 대표 개발자 송재경 대표가 지난 2003년 설립한 게임사로, 2013년 출시한 온라인 MMORPG '아키에이지'는 그해 '대한민국 게임대상'에서 대상을, 그리고 지난해 출시한 모바일 MMORPG '달빛조각사'로 최우수상을 각각 수상했다. 카카오게임즈는 지난 2015년 남궁훈 대표가 창업한 개발사 엔진이 모태가 돼 카카오로부터 투자를 받은 후 그해 12월 다음게임과 합병을 통해 2016년 4월 통합법인 카카오게임즈로 출범했다. 이후 2017년 11월 카카오의 게임 사업부문을 합쳐 현재의 개발, 퍼블리싱, 플랫폼을 함께 가진 종합 게임사로 성장했다. 즉 17년의 구력을 가진 전통의 게임 개발사를 만 5년째에 접어드는 퍼블리싱과 플랫폼 사업에 특화된 신생 게임사가 풍부한 자본력을 바탕으로 인수한 것이다.

서로 부족한 부분을 채워준다는 측면에선 '윈윈 게임'이라 할 수 있고, 시너지 효과도 충분히 기대해 볼 수 있지만 분명 아쉬운 점은 남는다.

올해로 출시한지 7년을 맞는 '아키에이지'는 초반보다는 분명 줄었지만 여전히 국내와 글로벌 64개국 서비스를 통해 수익을 올리고 있으며, 이미 국내외에 다수의 계약을 할 정도로 검증된 게임으로 향후 확장성에 대한 잠재력이 엄청난 IP라 할 수 있다. 국내뿐 아니라 글로벌 게임사들이 인기 IP를 확보하기 위해 혈안이 돼 있고, 과감한 투자를 단행하고 있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다. '귀하디 귀한' IP라는 점이다. 여기에 송재경과 김민수로 이어지는 네임드 개발자 인력풀을 그대로 확보하게 되면서, 이후에도 확실한 개발력을 인정받을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잡은 것은 엄청난 가치 창출이라 할 수 있다.

카카오게임즈 조계현 대표는 "엑스엘게임즈는 다년간 경험을 지닌 개발진과 우수한 IP를 보유하고 있는 중견 개발사이다. 엑스엘게임즈와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체계를 구축해, 글로벌 유저들이 즐길 수 있는 다양한 콘텐츠를 제공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송재경 대표는 "'달빛조각사'를 시작으로 좋은 관계를 맺어온 카카오게임즈와 함께 할 수 있어 기쁘다. 차별화된 경쟁력을 갖춘 카카오게임즈와의 협업으로 유저들이 공감하고 즐길 수 있는 게임 개발에 총력을 기울이겠다"고 전했다.


하지만 엑스엘게임즈가 잠재력에 대한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다는 아쉬움의 목소리도 있다. 무엇보다 엑스엘게임즈 지분이 매물로 나왔을 때 여기에 베팅할 국내외 게임사들이 카카오게임즈 외에는 거의 없었던 것이 이유라 할 수 있다. 지난해 넥슨 인수에 열을 올렸던 넷마블은 렌탈업계의 선두주자인 코웨이를 인수하면서 이미 거액을 투자했고, 넥슨은 지난해 지분 매각 실패 이후 내부 개발작과 개발 인력에 대한 정리를 하는 와중이라 외부 투자에 눈을 돌릴 여력이 없었다. 엔씨소프트는 자체 보유한 MMORPG IP를 모바일게임으로 만드는데 공을 들이고 있고 이미 이 전략이 큰 성공을 거두고 있어 굳이 외부 IP를 확보하는데 관심이 없는 상황이다. 이처럼 자본력을 가지고 있는 대형 게임사들이 인수전에 뛰어들지 않다보니, 공급자인 엑스엘게임즈 보다는 수요자인 카카오게임즈 우위의 시장이 형성될 수 밖에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는 최근 넥슨의 넷게임즈 투자 사례에 견줘봐도 알 수 있다. 넥슨은 2016년 당시 'HIT'(히트)를 개발하고 있는 박용현 대표의 넷게임즈에 392억원을 투자해 22.4%(이후 넷게임즈 추가 주식 발행으로 18.3%로 지분율 축소)를 확보한데 이어, 2018년 5월에 1450억원을 투자해 30%를 추가로 인수하며 자회사로 편입시켰다. 즉 넷게임즈의 48.3% 지분을 확보하기 위해 1842억원을 투자한 셈이다. 넷게임즈가 'HIT' 이후 '오버히트'를 성공시켰고 이어 'V4'를 개발하고 있는 등 박 대표를 중심으로 하는 개발력에 대한 잠재력을 높이 평가해 조금씩 지분을 늘여간 것과 비교한다면, 확장성이 무궁무진한 온라인 MMORPG '아키에이지'에 대한 가치가 상대적으로 저평가가 된 셈이다. 물론 현재 매출적인 측면에선 '달빛조각사'가 넷게임즈의 3개 IP와 비교해 열세라는 점이 감안된 가격이라고 할 수 있지만, 국내에서 대형 MMORPG 개발을 진두지휘할 스타 개발자가 손에 꼽을 정도로 적은 것을 감안했을 때 송재경 대표에 대한 존재감도 인수가에는 크게 반영되지 못한 아쉬움도 남는다. 엑스엘게임즈가 그동안 수입보다는 지출에 많아 적자가 누적됐기에, 시장에서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한 것도 이유로 꼽힌다.

게임사의 한 임원은 "보통 인수합병이 발생했을 경우 피인수 회사는 투자금으로 실망감이 클 내부 직원들을 달래는 위로금 등을 지급하며 달래는 경우가 꽤 있는데, 엑스엘게임즈는 유입된 자금으로 개발 자금으로 사용해야 해서 그렇게 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며 "대형 게임사들의 극소수 게임만 성공을 거두는 구조가 반복되면서, 게임 산업에 대한 외부의 투자 유인이 계속 감소하는 상황이 이번 딜에 반영된 것 같아 상당히 아쉽다"고 말했다.
남정석 기자 bluesky@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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