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92회 아카데미]봉준호 "스콜세지 감독 앞에서 감독상 수상, 비현실적인 느낌이었죠"(인터뷰)

이승미 기자

기사입력 2020-02-10 17:24


AP연합뉴스
[스포츠조선 이승미 기자] "마틴 스콜세지 감독님 앞에서 감독상 수상, 비현실적인 느낌이었어요."

10일 미국 LA할리우드 돌비극장에서 열린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 감독상, 갱상, 국제영화상을 받은 영화 '기생충'. '기생충'의 놀라운 행보를 가능하게 했던 봉준호 감독이 오스카 시상식이 끝난 직후 한국 기자단과 만나 소감을 전했다.

상기된 표정으로 인터뷰장에 들어온 봉준호 감독은 작품상 수상 당시 수상 스피치를 바른손이엔에이의 곽신애 대표와 투자 배급을 맡은 CJ 그룹의 이미경에게 양보한 이유를 묻자 "이미 몇 번 해서 좀 민망하기도 하고 다른 분들이 한마디라도 더하게 하기위해 작품상에서는 뒤에 빠져 있었다"며 쑥스럽게 웃었다.

그러면서 '내일 아침까지 마실 준비가 됐다'는 재치 넘치는 수상 소감에 대해 묻자 "술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니다. 이런저런 한달간 미국에 있으면서 이분들이 말하는 '어워드 시즌', 거의 한 달반 동안 너무나 많은 시상식이 있었다. 스피치를 정말 많이 했다. 그러니까 오스카까지 오니까 수상소감 밑천이 바닥이 났다. 하다하다 할 이야기가 없어서 술 얘기 까지 하고 말았다"고 답해 웃음을 자아냈다. 이어 그는 "'이제 정말 끝났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칸부터 치지 않더라도 8월말부터 오스카 캠페인의 출발점이라고 불리는 시상식부터 강호 선배님과 거의 다섯달 반 동안, '기생충' 촬영 기간보다 긴 캠페인 시간을 보냈기 때문에 이제야 정말 끝났다는 기분이 좋다. 그래서 기쁜 마음에 술을 먹자는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나왔다"고 덧붙였다.
AP연합뉴스
감독상 수상 이후 마틴 스콜세지 감독을 향해 존경을 표했던 봉준호 감독. 그는 "감독상 받으러 올라갔는데 객석에 굉장히 영화인들도 많은데 올라갔는데 스콜세지 감독님과 자동적으로 눈이 딱 마주쳤다. 토드 필립스와 샘이나 좌석표를 몰랐는데도 함께 감독상 후보에 오른 감독님들과 순식간에 눈이 마주치는 신기한 경험을 했다"고 입을 열었다. "제가 스콜세지 감독님을 워낙 존경했었고 그분의 영화도 많이 보고 책도 사서 읽고 그랬었다. 감독님과 함께 노미네이트 됐다는 것 자체가 영광스러운데, 그분을 먼발치에 앉혀놓고 상을 받는다는 게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정말 무대위 소감은 진심이었다. 스콜세지 감독님의 책에서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다'라는 말을 밑줄을 쳐놓고 읽었었다. 이런 영광스러운 자리에서 감독님께 말씀드릴 수 있어서 기뻤다"고 설명했다.

매 시상식 마다 화제의 수상 소감을 전하는 봉 감독은 골든글로브에서 언급했던 '자막의 1인치의 장벽'에 대한 비유적 표현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했다. "자막의 1인치 장벽을 말했던 건 게 골든글로브 때인데 벌써 한 달이 지났다. 지금 와서 찬찬히 돌이켜 보면 내가 때늦은 발언을 한 것 같다"며 웃었다. 이어서 "그때도 이미 장벽은 많이 허물어져 있었고 그때도 '기생충'도 이미 북미 극장가에서 많은 호응이 있었다. 그리고 요즘 세상 자체가 유튜브라던가 스트리밍 등등을 통해 장벽히 어물어져서 모두가 연결돼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우리 '기생충'도 훨씬 편하게 미국뿐만 아니라 많은 나라에서 관객들의 반응이 뜨겁게 이어지고 있는 것 같다"며 "그래서 그때 저의 1인치의 장벽, 언어의 장벽, 자막의 장벽 등의 발언은 오히려 뒤늦은 감이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오늘로 하여금 그 장벽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게 되는 시점이 더 빨리 올 것 같다"고 말했다.
AP연합뉴스
이어 봉준호 감독은 매번 달변의 스피치를 선보이는 비결에 대한 질문이 나오자 "어워드 시즌이라서 저나 송강호 선배님이나 곽신애 대표님이 시상 스피치를 하게 될 일이 많았다. 흔히 말해서 종이를 꺼내서 말하는 식의 수상 소감은 우리 팀 모두 한적이 없다"며 ""우리는 통역분이 계시지 않나. 그래서 일단 첫 문장을 생각하고 무대에 올라간다. 그래서 첫 문장 통역을 하실 동안 다음 문장을 생각한다. 그럼 자연스럽게 문장이 떠오르게 된다. 그게 통역가와 함께 올라가는 우리만의 특권이다"며 웃었다.

외국어 영화임에도 미국내 뛰어난 사랑을 받은데 이어 작품상과 감독상을 받게 된 비결이 뭐라고 생각하냐는 질문에 봉 감독은 "외국어 영화가 갱상을 받은 적은 있는데 작품상을 최초라고 하더라. 왜 그랬을까 싶다.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준비할 시간이 없었다. 저 또한 그 이유에 대해 지켜보고 살펴봐야 할 것 같다. 여러 리뷰들이 계속 나오고 있고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한 것 같다. 일단 그 기쁨 자체만을 느끼고 싶고 왜 이런 사태가 일어났는가에 대해서는 다각도의 심층적 분석이 필요한 것 같다. 오히려 제가 다른 나라 관객분들에게 여쭤보고 싶다"고 말했다.

이날 자리에 함께한 송강호 감독은 봉준호 감독의 뛰어난 성취를 자신의 일처럼 기뻐했다. '살인의 추억'부터 '괴물' '설국열차' '기생충'까지 봉준호 감독과 함께 한 송강호는 "'기생충'의 국내 제작보고회 때도 말씀드렸는데 저는 봉준호 감독의 리얼리즘의 진화를 20년 동안 지켜봤다. 어떻게 보면 이 '기생충'이라는 영화가 봉준호 20년 리얼리즘의 완성에 와 있는 영화라고 감히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칸에 가기도 전이었는데도 말씀을 드렸던 기억이 난다"라며 "배우를 떠나서 팬으로서 '살인의 추억'부터 쭉 거쳐온 봉준호 감독만의 시대에 대한 탐구, 사회에 대한 성찰, 깊이 있는 시선을 느끼면서 늘 감동 받았다"고 말했다. 앞으로도 봉준호의 페르소나로 함께 작품을 계속 하냐는 질문에는 "다섯 번째 작품은 확신을 못하겠다. 너무 힘들다. 계단도 너무 많이 나오고 비 맞아야 하고 너무 힘들다. 다음에는 박사장 역을 한다면 생각해보겠다"고 센스있는 답변으로 웃음을 자아냈다.
AP연합뉴스
제작자인 곽신애 대표 역시 봉준호 감독이 이뤄낸 성취에 대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한 사람에게 이렇게 많은 트로피가 간 건 월트 디즈니 이후로 최초라고 하더라"고 입을 열었다. 그러면서 "감독님과 다니다보면 어딜 가나 가장 큰 박수가 나온다. 너무 많은 분들이 좋아하시는걸 느낄 수 있더라. 계속 사랑해 달라고 말씀드리고 싶다"며 웃었다.

차기작 계획에 대해서도 밝혔다. 봉준호 감독은 차기작 계획에 대해 묻자 "차기작은 두 편을 준비하던 게 있었는데 변함없이 그걸 준비하고 있다. 하나는 한국어 영화다. 서울 도심에서 벌어지는 독특한 공포스러운 상황에 대한 이야기다. 두 번째는 영어 영화인데 규모는 크지 않다. '기생충' 정도의 규모다. 영국 런던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다. 조금 더 다듬어 지면 핵심적인 줄거리에 대해서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봉준호 감독은 "오스카 트로피를 받은 지금 영화감독을 처음 꿈꿨던 14살의 봉준호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냐"는 질문에 "일찍 자라고 말해주고 싶다. 어렸을 때 늦게 까지 영화를 너무 많이 봐서 건강에 다양한 문제가 생겼다"고 재치 있게 대답했다.

이승미 기자 smlee0326@sportshcosun.com


2020 신년운세 보러가기

눈으로 보는 동영상 뉴스 핫템

:) 당신이 좋아할만한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