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리뷰] '살인자의 기억법' 누가 뭐래도 설경구는 설경구

조지영 기자

기사입력 2017-09-02 13:25



[스포츠조선 조지영 기자] 말도 많고 탈도 많았다. 우여곡절로는 충무로에 제일가는 배우다. 그럼에도 충무로는 끊임없이 찾는다. 결국 연기력이 답이다. 부정하고 싶어도 부정할 수 없는 '갓(God)경구'가 서늘한 스릴러로 가을 극장가를 찾았다. 명불허전. 누가 뭐래도 설경구는 설경구였다.

알츠하이머에 걸린 은퇴한 연쇄살인범이 새로운 살인범의 등장으로 잊혔던 살인습관이 되살아나며 벌어지는 범죄 스릴러 영화 '살인자의 기억법'(원신연 감독, 그린피쉬 제작). 사전 예약 판매만으로 베스트셀러에 오른 것은 물론 출간과 동시에 베스트셀러 1위를 기록하며 문학계 센세이션을 일으킨 김영하 작가의 대표작 '살인자의 기억법'을 영화화한 작품이다. 알츠하이머에 걸린 연쇄살인범이라는 파격적인 소재와 새로운 연쇄살인범의 등장 이후 숨 쉴 틈 없이 몰아치는 전개, 반전 결말 등 스릴러 소설의 새 지평을 연 '살인자의 기억법'은 '장르물의 귀재' 원신연 감독을 통해 세계관을 확장, 여기에 '갓경구' 설경구의 몸과 말을 통해 재탄생, 9월 관객을 찾는다.


일단 원신연 감독이 40분만에 소설을 독파한 뒤 곧바로 영화화를 결심한 '살인자의 기억법'은 신선한 소재와 탄탄한 연출, 빈틈없는 연기 등 삼박자를 갖추며 기대 이상의 만듦새로 만족감을 안긴다. '소설과 가장 가까우면서 먼 영화'라는 원신연 감독의 말처럼 '살인자의 기억법'은 원작의 큰 틀을 유지하되 영화라는 매체에 맞는 장르적인 변신을 과감히 시도했다. 근래에 원작을 소재로 한 영화 중 가장 파격적인 변주, 가장 강렬한 해석을 장착한 리메이크 혹은 콜라보레이션이다. 잔혹하고 보기 불편한 범죄 스릴러가 아닌 추리하는 맛이 있고 상당한 몰입도와 텐션을 가진 웰메이드 스릴러가 탄생한 것.

원작의 힘도 상당했지만 무엇보다 '살인자의 기억법'을 빛내는 대목은 배우들의 '신들린 연기'다. 알츠하이머로 기억을 잃어가는 은퇴한 연쇄살인범 김병수 역의 설경구를 중심으로, 김병수의 살인습관을 깨우는 의문의 남자 민태주 역의 김남길, 김병수가 기억해야 할 하나뿐인 딸 김은희 역의 김설현(AOA), 김병수의 오랜 친구 안병만 역의 오달수까지 빈틈없는 열연으로 꽉 채운다.

특히 설경구는 '살인자의 기억법'을 1인칭 시점으로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118분을 이끄는데, 매 장면, 매 순간 노련한 내공이 곳곳에서 드러난다.

은퇴한 연쇄살인범 김병수 캐릭터를 만들기 위해 스스로 늙어가는 방법을 택한 설경구. 기억과 망상을 오가며 무너져가는 남자의 혼란을 표현하는 데 있어 분장 대신 10kg 이상 몸무게를 감량, 극한의 체중 조절로 캐릭터를 만들었다. 촬영 전날 새벽마다 2시간씩 줄넘기를 하고, 탄수화물을 끊는 식이요법을 병행하는 것은 물론 심지어 수분섭취까지 최소화한 결과 쉽게 살이 빠지지 않는 손까지 노인의 손처럼 쭈글쭈글하게 만들었다. 김병수가 되기로 작정한 설경구의 독기가 스크린을 통해 고스란히 전해진다.

한동안 연기 슬럼프를 겪으며 흥행 고배를 마셨지만 지난 5월 개봉한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이하 '불한당', 변성현 감독)으로 건재함을 입증하더니 마침내 '살인자의 기억법'으로 완벽히 부활한 셈이다. 설경구가 아니면 그 누구도 소화하지 못할 '살인자의 기억법', 기억을 잃어가는 연쇄살인범 김병수다.


'살인자의 기억법'의 서스펜스를 이끄는 또 다른 주인공 김남길 역시 섬뜩한 변신으로 존재감을 드러낸다. '멜로킹'으로 사랑받았던 김남길은 온데간데없이 반전의 변신으로 관객을 얼어붙게 만든다. 따듯하지만 한편으로는 서늘한 냉소를 오가는 디테일한 연기를 펼친 김남길. 웃어도 웃는 것 같지 않은 서늘함을 전하기 위해 설경구와 반대로 14kg을 증량한 그는 선과 악을 넘나들며 관객을 사로잡는다.


걸그룹 AOA에서 연기돌로 거듭난 김설현의 성장도 '살인자의 기억법' 관전 포인트다. 2015년 개봉한 '강남 1970'(유하 감독)을 통해 스크린에 데뷔한 김설현은 두 번째 스크린 도전으로 '살인자의 기억법'을 선택, 안정된 연기력을 보여주며 배우로서 입지를 다졌다. 연쇄살인범 아버지를 둔 딸의 복잡한 내면을 풍부하게 그려낸 것은 물론 얼굴에 피 분장을 묻히며 흙바닥을 뒹굴고 맨발로 야산을 뛰어다니며 고군분투한 김설현. 충무로를 이끌 '블루칩'으로 가능성을 입증했다.


한편, '살인자의 기억법'은 설경구, 김남길, 김설현, 오달수 등이 가세했고 '용의자' '세븐 데이즈' '구타유발자들'의 원신연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오는 7일 개봉한다.

soulhn1220@sportschosun.com 사진=영화 '살인자의 기억법' 스틸 및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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