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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조선 전혜진 기자] 배우 이청아는 어느덧 데뷔 15년 차에 접어들었다. 인터뷰를 통해 만난 그의 얼굴은 우리의 기억 속 소녀처럼 여전히 말갛고 맑고 청아했지만, 어딘지 모르게 단단함과 여유가 느껴졌다. 그것은 차근차근 한 계단씩 밝으며 변신을 시도해 온 노력들로 만들어진 것이었다. 공개 연애로 누군가의 여자친구로 더욱 부각 될 때도 있지만 그런 것에 개의치 않고 사랑도 일도 솔직하고 묵묵하게 해온 그의 서른은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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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나고 인터뷰 시작하면서 이제 조금 끝났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종방연도 막방날 바로 해버리는 바람에 사실 회포를 열심히 풀기 보단 그날까지 촬영하다 와서 다들 좀 피곤한 상태였거든요. 인터뷰 하면서 비로소 촬영 에피소드나 배우들에 대해 얘기하니 이제 좀 끝났나 싶어 마음이 이상하더라고요."
"너무 즐거웠죠. 수호랑 밀당하느라 초반 막말 쏘아대고 이럴 때 이외엔 저는 심각한 부분이 많이 없었어요. 심지어 그때마저도 '이렇게 갈까' '이렇게 해볼까' 끊임없이 즐겁게 얘기했죠. 감독님과 배우들이 소통을 많이 하고 마치 스터디그룹 같기도 한 현장이었어요. 사실 저보단 수호, 보늬가 정말 많이 고생했는데 그에 비해 저는 체력적으로 버티기가 쉬웠어요. 남들 밤샐 때 저는 오후에 출근하면 미안한 마음도 있었고 우리 다들 정말 장하다는 느낌도 있었어요. 이번에 진짜 다들 태도가 좋은 배우들을 만나서 기뻤어요."
-설희는 분명 여느 주인공들을 괴롭히는 악역은 아니다. 분명 자기 논리가 있는 캐릭터지만 어느 정도 긴장을 부여해야하는 역할이기도 했다. 두 지점을 균형을 맞추기가 부담스러웠을 것 같다.
"전혀 부담스럽지 않았어요. 그냥 제가 끼면 수호와 보늬 사이에 불안한 기류가 흐르는 게 그냥 보였죠. 그 이상한 기류라는게 제가 어떻게 해서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수호가 한 역할이 커요. 보늬랑 있을 땐 아이같고 천진난만한 모습이 있다면 제 앞에서의 수호는 단단하고 차가웠어요. 그런 온도차를 보면서 차근차근 안될거라는 감정을 느껴나갔죠. 저는 수호의 감정을 흔들어야 하는 인물이고 그게 과하면 나쁜 사람이 되고 약하면 존재감이 약해질 수 있는데, 그 미묘함을 주변 사람들이 만들어준 덕에 잘 지킨 것 같아요."
-결말에 대해 만족하나. 특히 설희의 결말에 대해?
"제가 구축했던 설희라는 캐릭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것 같아요. 설이는 의외로 질척거리지 못하는 애였어요. 선택도 포기도 빠르고 남들의 규칙을 깨면서까지 이기심 부리는 애가 아니었죠. 제 스스로 설정하기에설희가 스포츠 에이전트라 페어플레이 정신이 있는 것 같은데, 치사하게 반칙을 해서라도 승점을 따야겠다고 생각하지는 않잖아요. 수호랑도 연인이 되고 싶었지만 그 게임이 끝났고 '그래? 그럼 내 선수 챙기듯이 네 게임 도와줄게' 이렇게 그를 보냈던 것 같아요. 또 보늬가 아니라 딴 애였으면 포기하지 않았을 텐데 그녀가 감싸주지 못했던 제수호를 보늬가 치료해주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고 나 때문에 그렇게 닫혀있지 말라고 얘기하고 싶은데, 그 닫혀있던 걸 보늬가 푸는 걸 봤기에 쿨하게 포기할 수 있었던 것 같네요."
-실제로도 그렇게 쿨한 연애를 하나. 돌진하는 스타일?
"어떤 부분에선 쿨하다고 할 수 있죠. '뱀파이어 탐정' 당시 제일 고민했던 감정이 이미 마음 떠난 남자에게 질투와 욕망으로 눈이 멀어서 제 옆에 두려고 들끓는 그런 부분이에요. 저는 사람 마음이 마음대로 어떻게 안된다고 생각하는 편이라, 떠나가기 전에는 노력할 수 있지만 이미 사람 마음에 내려가면 되돌리기가 쉽지 않잖아요. 내가 내린 셔터는 잘 뒤집고 싶지도 않고. 마음이 뒤집어지기 전까진 굉장히 노력하다가 이게 도저히 안된다 싶으면 과감히 덮는 편이라 번복도 잘 안해요. 그리고 서로 피곤하지 않기 위해서 좀 확실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제 그런 부분이 아마 설희에게 좀 묻은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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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뭔가를 만들 수 있는 얼굴이 좋다고 생각하는 편인데, 류준열 그 친구는 정말 얼굴이 많아요. 어떨 땐 되게 심각하다가도 어떨 땐 싸늘하고. 준열이가 설희를 대할 때 얼굴 보늬를 대할 때 얼굴이 하나씩 다 다라서 정말 다른 사람 같을 때가 있어. 그게 그 친구의 가장 큰 장점이 아닐까 싶어요. 또 본인 스스로가 워낙 연구도 많이 하고 고민도 많이 하고요. 그렇게 연기하다가도 카메라까 꺼지면 다시 너무 장난끼 많고 천진난만하게 현장을 누벼 스태프들의 사랑을 받죠(웃음)"
-가장 많은 시간 함께 했던 건 이수혁이다. 이수혁은?
"전에 한번 수혁이랑은 '고교처세왕'에서 카메오 특별 출연으로 만난 적이 있는데, 그때는 굉장히 차가웠던 역할로 기억해요. 근데 이번에 만나고 나서 이렇게 귀여운 매력이 있는지 몰랐죠. 수혁이는 극중에서는 말 되게 안듣고 뺀질뺀질해 보이지만 실제 이수혁이라는 사람은 배려도 많고 침 착해요. 같이 연기하면서 고마웠던 적이 많아요. '누나 어떻게 하고 싶어요?' 묻고 그럼 '난 괜찮아' 이런 식으로 맞춰주는 편이라 동생같지 않고 듬직했어요."
-실제 이청아라면 제수호나 개리. 어떤 남자 스타일이 더 끌리나.
"제가 봤을때 개리는 약간 여자가 좀 있을 타입이다(웃음) 제수호는 여자도 없고 일에 돌진하는 성격이다. 근데 둘 다 극중 성격을 보면 한 여자만 보는 타입이다. 솔직히 어렵다. 은근 둘이 성격이 다르지 않다. 장난끼나 자기 여자한테 맘 편하게 해주려고 거짓말하는 것도 비슷하다. 왠만하면 선택하겠는데 이래서 한쪽이 좋다고 하기엔 둘에게 다 있는 성격이다."
-로맨스라하면 빼놓으 수 없는 장면, 아직까지 '늑대의 유혹'의 우산 씬이 매년 패러디된다. 어떤가?
"감사한 마음 뿐이죠. 대중들에게 이청아라는 이름을 각인시킬 수 있었던 작품이었으니까요. 지금까지도 '늑대의 유혹'이 계속 언급되는 걸 보면 대단해요. 당시엔 정한경이라는 역할이 여리고 순할 뿐 강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는데 지금와서 보면 반면 굉장히 강한 이미지였구나 싶어요. 어떤 캐릭터로건 한 배우를 그렇게 기억해준다는 건 좋은 일이지 않나요. 정말 감사드리죠."
-연기를 하면서 힘들었던 적은?
"정말 매 작품이 힘들었어요. 왜 나는 10년이나 연기를 했는데 왜 한번도 쉽지가 않을까. 근데 점차 그걸 내 성격으로 받아들였죠. '맨날 매 작품 이렇게 처음 같을 건데, 힘들건데 그래도 할래?' 이렇게 질문을 던져요."
-반면 배우가 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거나 기쁨을 느끼는 순간?
"스스로 잘했다고 느낄때. 그게 진짜 자기만족이더라고요. 남이 잘했다 해도 제 맘에 안들면 그 칭찬은 걷돌고 계속 의심 하게 되죠. 근데 얼마 전 드라마 '닥터스'에서 '원래 잘하는 사람들은 끊임없이 되짚어봐요. 그래야 실수 안하니까'라는 인상깊은 구절을 들은 적이 있는데 괜히 눈물이 핑 돌면서 '그래 이렇게 하다 보면 언젠간 잘 할거야'하는 용기를 얻었어요. 언젠가 잘하게 되면 그때는 좀 편안해질까 싶었는데 오히려 여전히 안편해진다는걸 깨닫고 나서야 편해졌죠. 그냥 나는 계속 의심할 사람이니까 즐겨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청아 인생에서 '운빨'은 뭔가?
"연기를 시작하게 된 것? 제 인생에서 배우라는 걸 시작하게 된 게 제 인생에서 제일 큰 운인 것 같아요. 그간 성격도 모나고 갇혀있는 성격이었다면 연기를 통해 다양한 캐릭터를 만나면서 변했어요. 또 제가 연기하면서도 싫은 캐릭터들도 있었는데 그런 사람들에 대한 편견이 없어지고 이해하게 되고 또 사랑할 수 있는 사람들의 영역이 넓어지는 것 같아요."
gina1004@sportschosun.com, 사진=허상욱 기자 w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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