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장토크①]박나래 "19금·만취 개그, 여자는 왜 하면 안되죠?"

이승미 기자

기사입력 2016-07-13 14:30 | 최종수정 2016-07-20 11:20


※ 바쁜 별들을 위해 스포츠조선 기자들이 두 팔을 걷고 나섰습니다. 밀려드는 촬영 스케줄, 쏟아지는 행사로 눈코 뜰 새 없는 스타를 위해 직접 현장을 습격, 잠시나마 숨 돌릴 수 있는 안식처를 선사했습니다. 현장 분위기 속에서 진솔한 이야기를 나누는 스포츠조선의 '출장토크'. 이번 주인공은 '대세'라는 말로도 부족한 최고의 개그우먼 박나래입니다.
가만히 있어도 땀이 흘러내릴 듯한 뜨거운 주말 오후, '댜세' 예능인 박나래의 CF 촬영장을 습격했다. 빠듯한 촬영 일정을 소화하면서도 만나자마자 유쾌한 웃음과 입담으로 분위기를 '업' 시켰다. 허상욱 기자 songs@sportschosun.com
[스포츠조선 이승미 기자·이종현 인턴 기자] 여성 예능인의 보릿고개 시대는 갔다.

여성 예능인들이 설 자리가 없어 허덕거리던 지난해 기억이 벌써 흐릿해지고 있다. 오랜만에 방송가에 날아든 반가운 여성 예능인 열풍, 그 중심에는 바로 개그우먼 박나래가 있다. 박나래는 남자 방송인들 전유물처럼 여겨졌던 19금 드립와 만취 개그를 거침없이 날리며 '금녀의 영역'을 당당히 깨뜨렸고, 토크쇼면 토크쇼, 코미디면 코미디, 장르를 가리지 않는 개그 소화력으로 당당히 데뷔 10년 만에 전성기를 열었다. 밀려드는 섭외 요청에 눈코 뜰새 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박나래를 만나기 위해 스포츠조선이 그녀의 숙취해소음료 CF 촬영장을 급습했다.

광고 촬영장을 찾기 전 ,본 기자들은 관계자로부터 이날 박나래가 이른 새벽부터 광고 촬영에 임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전해듣고 엄습하는 불안감을 감출 길이 없었다. 광고 촬영 전날부터 피의 스케줄을 소화한 것도 모자라 새벽부터 빡빡한 릴레이 CF 촬영에 지친 박나래가 인터뷰에 활기차게 임해줄 수 있을지 걱정이 밀려들었기 때문이다. 인터뷰이도 이터뷰어도 힘든 최악이 인터뷰가 되는 건 아닌지 초조함에 손톱까지 잘근잘근 물어뜯었더랬다.
개그우먼 박나래 출장토크
허상욱 기자 wook@sportschosun.com/2016.06.18/
하지만 웬걸. 그런 기자들의 걱정에 어퍼컷이라도 날리듯 CF 촬영 중 겨우 시간을 내서 스포츠조선 출장토크의 마스코트인 캠핑카 앞에 다가온 박나래는 그 누구보다 활기찬 목소리와 밝은 목소리로 기자들에게 인사를 건넸다. 이어 캠핑카 앞에서 초특급 섹시 포즈까지 선보이며 에너지를 뿜어냈다. 캠핑카에 올라 기자들이 어설프게 준비한 '나래바'를 보자 "어머! 제가 뭐라고 이렇게까지 준비하셨어요!"라며 하이톤의 목소리로 기뻐하는 그녀의 모습을 보니 그간의 걱정이 눈 녹듯 녹아내렸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50분 동안 진행된 인터뷰는, 단언컨대 역대 본 기자들이 해왔던 인터뷰 중에 가장 유쾌하고 가장 화끈했다.(너무 화끈해서 차마 텍스트로 옮길 수 없을 정도랄까.)

박나래를 단숨에 대세행 열차에 태운 건 MBC '라디오스타'다. 지난 해 2월 '라디오스타'에 출연했던 박나래는 테이블 가장 끝자리에 앉아 있을 만큼 주목받는 게스트가 아니었다. 그녀에게 큰 기대를 거는 시청자도 없었다. 하지만 녹화가 시작되고 상황은 180도 바뀌었다. 박나래의 하드캐리가 대폭발한 것. 함께 출연했던 다른 게스트가 누구였는지 기억이 나지 않게 만들 만큼 온갖 에피소드와 입담을 대방출하며 모든 스포트라이트를 자신에게 돌렸고, 단박에 온갖 포털 사이트 메인을 장악했다. 또한, 대표 온라인 커뮤니티 마다 박나래 관련 게시글이 도배되기 시작했다.
"'라디오스타' 출연 이후로 제 인생이 달라졌죠. 원래 제 개그가 굉장히 마니악했어요. 호불호가 확 갈렸죠. 그런데 제 마니악한 개그가 '라디오스타'를 통해서 대중에게 가깝게 다가가게 된 것 같아요. 저도 몰랐는데 이런 아슬아슬한 개그를 좋아하는 분들이 분명히 있었던거예요. 하하하.

그리고 '라디오스타' 이후 제 개그를 바라보는 일반인들의 시선 자체도 많이 달라진 것 같아요. 예전에는 제가 술 취해서 실수한 이야기, 야한 이야기 하면 다들 '아이고, 박나래 저거 언제 정신 차릴래'라며 혀를 찼어요. 김준호 선배도 저보고 개그맨으로 안 풀리면 5년 뒤에는 그냥 술집 차려준다고 술집이나 운영하라고 했었어요. 하하하. 그런데 지금은 이런 제 개그가 통할 때가 된거죠. 준호 선배도 이제는 저한테 '나래야. 너 그렇게 막 살길 잘했지. 바르게 살았어봐라 이렇게 안됐다. 변하지 말고 지금처럼 막 살아라'라고 했다니까요."

'라디오스타'가 박나래의 대세행 열차표를 끊어준 프로그램이라면 박나래가 직접 열차에 몸을 실을 수 있도록 뒤에서 밀어 넣어준 사람은 바로 김구라다. 처음부터 박나래의 가능성을 지켜보고 있던 김구라는 '라디오스타' 녹화 내내 박나래의 에피소드에 계속 힘을 실어주며 박나래가 제대로 뛰어놀 수 있도록 판을 깔아줬다. 박나래의 두 번째 '라디오스타' 출연인 사랑과 전쟁 특집(박나래, 장도연, 양세형, 양세찬 출연) 편의 '2회 방송'을 장담했던 것 이도 바로 김구라다. '아빠'라고 부를 만큼 김구라는 박나래에게 고맙고도 남다른 존재다.

"김구라 선배님께는 언제나 너무 감사해요. '라디오스타' 사랑과 전쟁 특집 녹화 끝나고 김구라 선배님이 진짜 용돈도 주셨어요. 구라 선배님이 끝나고 다같이 회식이라도 하라면서 그 자리에서 바로 회식비를 50 만원이나 주셨어요."


MBC '라디오스타'에서 김구라에게 새베하는 박나래.
김구라와 박나래의 인연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여자판 '라디오스타'(박소현, 김숙, 박나래, 차오루 진행)라고 불리는 MBC에브리원의 새 토크쇼 '비디오스타'에서 박나래가 '김구라의 역할'을 하게 된 것.


"'비디오스타' 제작진이 4명의 MC 중 김구라 선배님 역할을 해줬으면 한다는 거에요. 사실 그게 쉽지 않은 역할이잖아요. 구라 선배님이야 말로 '라디오스타'의 상징이자 혀 같은 존잰데. 그래서 선배님께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르겠다고 문자를 드렸어요. 농담이나 독설을 보내주실 줄 알았는데, '제작진이 그렇게 이야기 하지만 너는 너다. 너대로 하는 게 정답이다'라고 말해주셨어요. 정말 감동적이었어요."

이제는 명실상부한 대세가 된 박나래. 하지만 여전히 세고 자극적인 박나래의 토크 스타일을 좋아하진 않는 사람들도 분명 존재한다. 하지만 박나래는 그런 시선들을 크게 신경쓰지 않는다고 말했다. 자신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으면 싫어하는 사람도 있다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면 편하다고 말이다.

"'왜 여자가 저렇게까지 이야기하지?'라며 제 개그 스타일을 안 좋아하는 분들도 많아요. 하지만 전 그냥 캐릭터라고 생각하거든요. '섹드립'과 '야드립'에 강한 개그맨이 있듯이 여자도 19금 개그를 할 수 있거든요. 조신하고 얌전한 여자가 있으면 저 처럼 막 사는 애들도 필요한 거 아니겠어요? 한 번 밖에 못하는 인생인데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살아야죠. 뭘 절 비난하시고 싶은 분들은 하셔도 되는데, 저는 제 인생이 너무 행복해요."

그렇기 때문에 도를 넘는 악플에도 크게 상처 받지 않는 편이다. 오히려 악플을 보고 즐기는 경지에 도달했다는 박나래. 이 사람, 진짜 보통이 아니다.
"웬만해서 잘 상처 받지 않아요. 어떤 분이 제게 '술 얘기, 남자 얘기, 분장 빼면 할 거 없는 애'라고 했는데, 상처는커녕 '아, 내가 술과 남자 이야기를 하는 것, 분장하는 것들이 웃겼나 보다' 싶어서 좋더라고요. 오히려 저런 댓글은 귀엽죠. 밑도 끝도 없이 '박나래 은퇴해라' '박수칠 때 떠나라'라고 말하는 댓글도 많아요. 그런 글 볼 때 마다 '미안한데, 조금만 더 해먹을게요'라고 생각하죠. 얼마 전에 (양)세형이가 댓글 때문에 더욱 움츠러들고 눈치를 보게 된다고 말하더라고요. 걔도 그런 눈치 진짜 안 보던 앤데, '무한도전' 출연하게 된 다음부터 사람들의 관심이 많아지니까 댓글을 보게 된대요. 그래서 제가 그냥 댓글 보지 말랬어요. 신경 쓸 바에는 그냥 댓글 보는 건 끊어야 해요. 아니면 저처럼 봐도 신경안쓰던가.

반대로 '요즘 너무 힘들었는데 박나래 씨 개그 보고 힘이 되는 것 같아요'라는 글을 보면 정말 힘이 돼요. 주변 분들이 '요새 우리 부모님이 너 너무 좋아하셔'라는 이야기를 간혹 하는데, 그게 그렇게 좋더라고요. 예전에는 지인의 부모님이 '나래 걔는 뭐 먹고 살려고 그러니'라는 이야기만 하셨대요. 크하하"

'라디오스타'로 박나래를 띄운 프로그램이지만, 박나래를 대표하는 프로그램은 단연 tvN '코미디 빅리그'다. 각종 버라이어티와 토크쇼에서 활약하고 있는 와중에도 박나래는 여전히 '코미디 빅리그'의 터주대감 역할을 하고 있다. 대세로 떠오른 후 박나래의 '코미디 빅리그' 하차를 예상하는 이들도 많았다. 분량에 비해 쏟아 부어야 하는 연습시간과 노력이 엄청난 공개 코미디 프로그램은 바쁜 스케줄에 쫓기는 개그맨들에게는 부담스러운 프로그램일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박나래는 '코미디 빅리그'를 떠나지 않았다. 아니, 떠날 수 없었다.
"'코빅' 15분짜리 무대를 위해 아이디어 짜고 회의하고 연습하고 1주일에 5일을 투자해요. 그렇지 않으면 코미디는 금방 도태되거든요. 그럼에도 포기할 수 없는 건 코미디의 '날 것이 주는 웃음' 때문이예요. 무대에서 즉각적으로 관객들의 반응을 느낄 수 있잖아요. 개그는 트렌드가 굉장히 중요한데, 공개 코미디를 위한 아이디어 회의를 하다 보면 저절로 트렌드를 읽게 돼요. 10들의 이야기, 온라인상에서 가장 핫한 이야기, 사회적으로 가장 핫한 이슈를 계속 읽을 수 있거든요.

앞으로도 '코빅'은 놓지 않으려구요. 개그맨들끼리 하는 이야긴데, 개그맨은 두 종류가 있어요. 공개 코미디를 하는 개그맨과 안 하는 개그맨. 사실 제가 요새 스케줄도 많고 해서 감독님이 다음 시즌에서 코너를 하나만 하자고 했는데, 제가 욕심을 부려서 두 개를 하기로 했어요. 그런데 코미디는 제가 할 수 있는 한 계속 많이 하고 싶어요."

박나래 뿐 아니라 모든 개그맨들이 '코미디 빅리그'에 쏟아붓는 정성만 보더라도 알 수 있듯 개그맨이야 말로 기획부터 연기까지 섭렵해야 하는 종합예술인이다. 하지만 아직까지 우리나라에서는 배우나 가수에 비해 개그맨들의 가치를 낮게 보는 시선이 존재하는 게 사실. 박나래는 이런 시선이 안타깝다고 속상하다고 말한다.

"다 똑같은 연예인인데 그런 시선 속상하죠. 그래서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을 해요. 지금 활동하는 개그맨들이 더 열심히 해서 후배들은 '꽃길'을 걷게 하고 싶어요. 그래서 요새 개그맨들끼리 뭉쳐서 더욱 '으›X으›X'하는 분위기가 강한 것 같아요. 예전에는 다른 친구들이 더 잘나가면 질투하고 그런 게 있었거든요. 애드립도 잘 안받아주고 그랬었어요. 그런데 요새는 네가 잘 되야 내가 잘되고 결국에 프로그램이 잘된다는 생각을 하죠."


MBC 에브리원 '비디오스타' 제작발표회
그 어렵다는 예능인, 그 중에서도 여성으로서 살고 있는 박나래.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서 '여성 예능인'으로서 사는 게 어떤 건지에 대해 묻자 박나래는 단번에 '쉽지 않은 일'이라고 답했다. 그럼에도 박나래는 "그래도 신나요. 모두가 다 그런거 아니겠어요?"라며 캠핑카가 떠나가라 '크하하하하' 웃었다.

"남자나 여자나 똑같은 연예인인데, 여자 연예인들에게만 '여'배우, 여자'예능인'을 강조하더라고요. 그 말 자체에서부터 여자 연예인에게는 '여자'다운 모습을 바란다는 뜻이 들어있어요. 저는 그 틀을 깼으면 좋겠어요. 제가 농담으로 '여자들도 방송에서 위통을 벗을 수 있는 시대가 와야 돼!'라고 말하곤 해요. 남자와 여자가 똑같으니 방송에서도 똑같은 개그로 웃길 수 있어야 된다는 뜻이에요. 남자는 야한 개그가 되고, 여자는 안 된다? 왜 그래야 하죠? 왜 여자 개그우먼이 노출 있는 의상을 입으면 '못 볼 꼴 봤다'고 말을 하는건지 이해가 안돼요. 보기 싫으면 안 보면 되죠. 열심히 일하는 개그우먼들 욕하지 마세요. 저도 욕 잘해요. 하하하"

smlee0326@sportschosun.com 사진=허상욱 기자 song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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