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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분석] 파일럿까지 점령한 B급 "우리는 이토록 즐겁다"

이승미 기자

기사입력 2015-09-30 15:08



[스포츠조선 이승미 기자] 덕후부터 잉여까지, 올 추석 파일럿 예능 프로그램를 단 하나의 단어로 표현하자면 바로 'B급'이다.

'1박2일', '꽃보다' 시리즈, '삼시세끼' 등 대한민국을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예능 프로그램을 연출하고 예능 PD 최초로 백상예술대상에서 대상 트로피를 거머쥔 나영석 PD가 '신서유기'라는 '병맛'을 내세운 인터넷 컨텐츠를 내놨다. 아시아를 넘어 세계를 점령한 아이돌 그룹 빅뱅은 본인들을 '루저'라고 부르짖는다. 대한민국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중심의 있는 이들이 스스로 B급을 자청한다는 이야기다.

이는 병맛·루저 등 일명 사회의 비주류로 분류됐던 B급 문화가 사회 전면으로 나서기 시작한 사회적 흐름을 탔기 때문. 이 흐름은 온 가족이 함께 둘러 앉아 볼 수 있는 '가족 예능 프로그램'이 주를 이뤘던 올 추석 명절 특집 파일럿 프로그램까지 이어졌다.

파일럿까지 점령한 B급 감성

29일 방송된 MBC '능력자들'은 제목부터가 B급 덕후 문화에 대한 존경심이 담겨있다. 지인은 물론 가족에게도 말 못 할 취미를 가진 덕후들은 박스로 얼굴을 가린 채 등장, 사생활 보호까지 하는 치밀함까지 보였다. 이어 등장한 오드리 햅번과 똑같은 피규어를 제작하는 취미를 가진 '햅번 덕후', 자신이 먹은 치킨 뼈를 모아 직접 한 마리 닭을 만드는 '치킨 덕후', 1초만 듣고도 '무한도전'에서 나온 노래 제목을 줄줄 외는 '무한도전 덕후' 등이 다뤄져 참신했다. 방송 초반 심드렁하게 앉아있던 MC 김구라도 조선실록을 줄줄 외우는 '사극 덕후' 앞에서 감탄을 자아낼 정도였다. 그동안 추석 특집에서 초능력자와 영재 위주로 실력을 뽐내는 프로그램들이 즐비한 가운데 누구나 능력자가 될 수 있다는 덕후 문화를 보여준 '능력자들'은 참신하다는 평이다.

음주운전으로 자숙중이던 노홍철의 복귀작 '잉여들의 히치하이킹'은 사회적 무능력자로 대두되는 '잉여'를 전면에 내세웠다. 인기 예능인인 노홍철과 화려한 스펙의 출연진들을 '잉여'라 칭할 수 있냐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리지만 아직 세상에 빛을 보내 못한 '잉여들'을 예능의 주인공을 내세웠다는 것 자체가 이 프로그램이 B급 감성을 지향한다는 걸 알 수 있다. 전현무의 3년 만의 친정 복귀작인 '전무후무 전현무쇼'도 자신을 B급이라 부르짓는다. 1인 미니멀라이즈 방송를 표방한 이 프로그램은 점점 스케일을 불려가던 다른 예능 프로그램과 달리 저예산, 최소 세트, 열린 포맷, 1인 진행을 기본으로 했다. SBS '심폐소생송' 역시 인기곡이 아닌 가수들의 앨범 속 타이틀곡에 선정되진 못했지만 변두리 곡을 메인 주인공으로 이끌어 냈다.

대중은 왜 B급에 열광하나

B급 감성은 스타 가족 노래자랑·스타 대격돌 등 뻔하지만 온 가족이 부담없이 즐길 수 있는 명정 파일럿 예능까지 점령했다. 그렇다면 왜 대중은 B급 문화에 이토록 열광하는 걸까.


과거 대중은 방송을 통해 보여지는 화려한 모습을 동경하는 데서 프로그램의 만족을 느꼈지만 최근 대중이 프로그램을 선택하는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동경'이 아닌 '공감'이다. 아주 보통의 직장인의 이야기를 담은 드라마 '미생'의 히트만 봐도 알 수 있다. 힘들고 각박한 사회에 살고 있는 대중은 화려한 중심부가 아닌, 변두리, 즉 비주류 문화로 대표되는 B급 문화와 감성으로부터 더욱 공감한다. 잉여·덕후·밀려난 인물 등 '내 모습'이 투영된 비주류 사람들이 "우리는 주류가 아님에도 이토록 행복하다"를 외치는 것에 대해 쾌감을 느낀다는 이야기다.

자연스럽게 비주류와 B급을 바라보는 대중의 시선도 달라졌다. 대중이 자신을 비주류와 동일시하면서 잉여와 덕후 등 B급 문화의 주체들을 긍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정덕현 문화평론가는 "과거에는 기성 세대가 정해놓은 기준을 벗어난 것들에게 비주류라는 이름표를 달았다. 하지만 최근 대중은 그런 기준 자체를 중요하지 않게 생각하거나, 없는 것으로 생각한다. 따라서 비주류를 '기준을 벗어난' 부정적인 것이라는 통념에서 벗어났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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