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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의 원류를 찾아서. 세기말 FPS의 황금기, 하프라이프와 레인보우 식스

이덕규 기자

기사입력 2015-02-26 17:35


하프라이프의 등장

1990년대 중반, '둠'은 말 그대로 북미를 강타했다. 쉐어웨어로 배포된 '둠'을 다운받기 위해 학교 전산망이 마비될 정도였다. 학교 전산실과 회사에서 몰래 '둠' 멀티플레이를 즐기는 사람도 부지기수였다. 과부하에 골치를 썩이던 전산실 관리자가 제발 '둠'을 자제해 달라고 공문을 보낼 정도였다.

'둠' 열풍은 세계 최고의 소프트웨어 회사인 마이크로소프트도 예외는 아니었다. 엔지니어든 사업팀이든 직군을 가리지 않고 모두가 '둠'에 열광했다. '윈도우' 개발팀에서 13년을 보낸 게이브 뉴웰도 시장 조사 결과를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당시 북미에서 가장 높은 보급률을 자랑하는 소프트웨어는 '윈도우'도 '도스'도 아니었다. 바로 '둠'이었다.


하프라이프를 만들어 FPS 장르의 또 다른 전환점을 만든 밸브 게이브 뉴웰 대표
MS의 경영진은 '둠' 열풍을 보고 '윈도우' 홍보에 쓰길 원했다. 처음에는 MS가 '둠'을 아예 사들이려 했지만 불발로 끝났다. 대신 게이브 뉴웰을 비롯해 MS의 주요 개발팀이 '둠'의 '윈도우95'용 컨버전을 지원했다. 이 과정에서 게이브 뉴웰은 '둠'과 FPS의 가능성에 큰 감명을 받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게이브 뉴웰은 동료 마이크 해링턴과 함께 MS를 퇴사하고 1996년 '밸브 코퍼레이션'이라는 회사를 세웠다. 회사를 설립한 그 해 이드 소프트웨어의 협력으로 밸브는 '퀘이크' 엔진 라이선스를 획득했다. 마이크 헤링턴과 게이브 뉴웰은 곧바로 FPS 제작에 들어갔다.


하프라이프의 한장면. FPS 역사상 최고의 무기(?)로 통하는 빠루
본래 1년 정도로 예상했던 신작 개발 기간은 밸브가 퀘이크 엔진을 직접 개조해 '골드소스' 엔진을 만들며 차츰 길어졌다. 1998년 말 드디어 완성된 게임을 내놓을 수 있었다. 그리고 이 게임은 출시와 함께 게임업계를 휩쓸며 전설이 되었다. 이것이 '하프라이프'다.

'하프라이프'는 이전까지 FPS에서 곁다리 취급 받던 '스토리'를 게임과 잘 결합시켰다. 하프라이프는 블랙 메사 연구소의 고든 프리맨 박사를 주인공으로 외계인과의 사투를 그리고 있다. 언뜻 보기에 외계인 혹은 괴물과의 사투라는 기본 뼈대는 '둠'나 '듀크 뉴켐 3D'와 크게 다르게 보이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하프라이프'는 이 소재를 별도의 텍스트나 동영상 대신 게임 연출을 통해 게이머가 자연스럽게 경험할 수 있도록 방향을 제시했다. '둠'이나 '듀크 뉴켐 3D'처럼 딱딱 구분되는 스테이지의 개념보다는 오히려 전통적인 영화나 문학에서 볼 수 있는 '챕터'의 개념으로 자연스러운 이야기를 만들어갔다.


적의 인공지능도 정교하게 짜 기존의 단순무식 돌격에서 벗어났다. 예를 들어 적으로 등장하는 군인들은 캐릭터가 일부러 사각지대에 숨어 있으면 정면으로 돌격해 오는 대신 수류탄으로 사각에서 쫓아내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려 했다. 반대로 캐릭터가 수류탄을 던지면 이를 피하거나 오히려 주인공의 위치에 수류탄을 던지려 들었다.

하프라이프는 발매 후 900만장의 판매량을 달성했다. 게이머와 게임언론 모두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50개 이상의 게임 상을 수상하며 가치를 증명했다. 신생 회사에서 처음 내놓은 게임이 거둔 놀라운 성공이었다. '하프라이프'는 FPS를 완전히 재정의한 기념비적인 게임이었다.

한국 유저들을 잠에서 깨운 레인보우 식스

밀리터리 작가 톰 클랜시와 전직 영국 잠수함 함장 더그 리틀존스는 1996년 레드 스톰 엔터테인먼트라는 회사를 세웠다. 톰 클랜시의 밀리터리 소설을 직접 게임화하려는 목적으로 세운 회사였다. 소설가 톰 클랜시의 명성은 당대 최고였지만, 레드 스톰 엔터테인먼트의 게임은 그저 그런 수준이었다.


레인보우 식스. '전략'이라는 말이 눈에 띈다.
하지만 이들은 1998년 FPS 게임으로 게임 역사에 이름을 남긴다. '레인보우 식스' 시리즈의 출발이다. 이 게임은 나토의 지원을 받아 창설된 가상의 다국적 대테러 부대인 '레인보우 식스'를 다룬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게임이다.

'레인보우 식스'는 독자적인 방향을 취했다. 대테러부대라는 컨셉부터가 특이했다. 이 당시만 해도FPS하면 일당백으로 적을 화끈하게 쓸어버리는 것이 기본 구도이던 시절이었다. 반면 '레인보우 식스'는 분대 단위로 움직여 인질 구출 등의 작전을 수행하는 방식이었다. 분대원에게 명령을 내려 서로 각기 다른 방향에서 진입하는 등 전술적인 요소가 강했다.

밀리터리 소설가가 직접 개발에 참여한 만큼 사실적인 면도 강했다. 적에게 몇 방을 맞아도 커다란 헬스팩 하나면 체력이 몽땅 회복되던 '둠' 시리즈와는 달리, '레인보우 식스'에서는 단 한 발을 맞아도 정말로 대원이 사망했다. 다른 FPS처럼 화력전이 아니라, 맵을 숙지하고 조용히 잠입해 결정적인 순간에 몇 발을 교환하는 방식의 긴장감 넘치는 방식에 게이머는 전율했다.


레인보우 식스! 현실감 있는 게임성으로 한국 FPS 열풍의 원조게임이다
'레인보우 식스'는 한국 게임 역사에 있어서도 특별한 게임이다. 사실 '레인보우 식스' 이전까지 우리나라에서 FPS는 좀 특이한 장르로 취급되고 있었다. PC통신을 사용하던 소수의 게이머는 '둠'이나 '듀크 뉴켐 3D'같은 최신 문물(?)을 접할 수 있었지만 나머지 게이머에겐 잘 알려지지 않은 영역이었다.

그러던 것이 '레인보우 식스'의 등장과 PC방이 맞물리며 본격적으로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인터넷 보급률이 낮던 시절 친구들과 다 함께 게임을 즐기기에는 PC방이 제격이었고, 긴장감 넘치는 스타일인 '레인보우 식스'는 더욱 적합한 게임이었다. 너 나 할 것 없이 '레인보우 식스' 아니면 '스타크래프트'를 하던 시절이었다. 이 '레인보우 식스'로 시작된 PC방 FPS 열풍은 이후 소개할 '카운터스트라이크'로 절정을 맞게 된다.

전장을 안방에, 메달 오브 아너

같은 시기 콘솔에서도 걸출한 FPS 명작이 등장했다. '골든아이 007'의 성공 이후 많은 사람들이 콘솔 FPS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그 중에는 영화감독 스티븐 스필버그도 끼어 있었다. 1998년 말, 스티븐 스필버그는 드림웍스 인터렉티브를 찾아 엉뚱한 제안을 했다. 자신이 감독을 맡은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처럼 2차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한 FPS도 만들어 보자는 것이었다.

엉뚱한 제안에 모두가 당황했다. 2차세계대전이라는 닳고 닳은 소재를 주제로 한 게임이 성공할 수 있겠냐는 우려도 많았다. 하지만 스티븐 스필버그는 양보하지 않았다. 결국 2차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한 FPS 개발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스필버그가 갱을 맡고, 동성무공훈장을 받은 베트남전 영웅인 데일 다이가 군사 자문 역으로 참여했다. 후에 '미션 임파서블3'등의 음악을 맡는 작곡가 마이클 자키노도 합류했다.


거장 스티븐 스필버그가 제작에 참여해 더 유명해진 메달오브아너
당시 콘솔 게임기의 성능으로는 3D FPS로 '라이언 일병 구하기'의 초반 같은 전면전 표현은 무리였다. 대신 주로 야간에 임무를 수행하는 군 정보기관의 특수요원이라는 컨셉을 잡았다. 신분을 위장한 채 검문소를 통과한다든가 수류탄을 보고 적이 고함을 치며 도망가는 등 전쟁영화에서 보던 다양한 연출을 게임에 집어넣었다.


플레이스테이션용으로 처음 나올때만 해도 사람들은 이 게임의 위력을 알지 못했다
1999년, 미군 최고 훈장인 '명예 훈장'(Medal of Honor)의 이름을 딴 FPS '메달 오브 아너'가 출시되었다. 2차세계대전이라는 '낡은' 소재였지만 자신이 군 정보기관의 특수요원이 되어 2차세계대전의 비밀임무에 뛰어든다는 소재는 호평을 받았다. 콘솔 게임기 성능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전장을 실감나게 표현하는 '메달 오브 아너'의 여러 요소도 긍정적인 반응을 얻었다.

세기말, FPS의 전성기

실로 지난 세기말은 FPS의 전성기라 할 만 했다. 1998년은 특히 기념비적인 해였다. '레인보우 식스'와 '하프라이프'라는 걸출한 FPS가 등장해 성공을 거뒀다. 1999년에는 플레이스테이션 진영에 '메달 오브 아너'가 등장해 2차세계대전 FPS 붐을 일으켰다.

하지만 이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하프라이프'와 '레인보우 식스', '메달 오브 아너'는 나비효과의 시작일 뿐이었다. '구스맨'과 '클리페'라는 닉네임의 게이머는 대테러 진압팀과 테러리스트 간의 대결을 그린 '하프라이프' 모드를 기획했다. 구스맨은 일주일에 20시간씩 투자하며 모딩에 열을 올렸다. 그는 얼마 후 '카운터 스트라이크'라는 모드를 내놓았다.

다른 한 편에서는 '메달 오브 아너'에 깊은 감명을 받은 일렉트로닉 아츠는 드림웍스 인터렉티브를 전격적으로 인수했고 콘솔이 아닌 PC용 차기작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이전까지 콘솔을 주로 제작하던 드림웍스 인터렉티브 대신 PC 게임 경험이 있는 개발사에 외주를 주기로 했다. '메달 오브 아너: 얼라이드 어썰트'의 개발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레인보우 식스'와 '하프라이프'가 활짝 연 FPS의 황금기는 이제 막 시작일 뿐이었다. FPS 역사를 다시 한 번 바꿀 '카운터 스트라이크'와 '메달 오브 아너: 얼라이드 어썰트'가 다가오고 있었다. 새천년이 막 밝으려 하고 있었다.


메달오브아너: 얼라이언 어썰트에 나오는 오마하 해변 전투.. 이 엄청난 전투장면은 20세기를 마감하고 21세기 FPS의 방향에 또 다른 이정표를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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