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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연서는 왜 '왔다 장보리'를 끝까지 지키지 못했을까?

김표향 기자

기사입력 2014-10-22 08:28


사진캡처=MBC

MBC 주말극 '왔다 장보리'는 장보리로 시작해 연민정으로 끝났다.

희대의 악녀 연민정은 신분상승의 욕망에 사로잡혀 온갖 악행을 저질렀다. 그의 악랄함이 정도에 지나쳐서 도리어 순수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연민정이 폭주할수록 시청률도 폭주했다. 비난을 온몸으로 받아내야 할 악녀에게 칭찬과 격려가 쇄도하는 기이한 상황도 벌어졌다. 급기야 '연말 연기대상은 주인공 장보리가 아닌 악역 연민정이 받아야 한다'는 주장이 쇄도했다.

연민정을 연기한 이유리는 자신의 몫 이상을 해냈다. 시청자들은 연민정이 캐릭터로서 훌륭하기 때문이 아니라 영혼을 쥐어짜내 연기하는 이유리의 노력에 탄복해 연민정을 연호했다. 연민정을 향한 시청자들의 칭찬과 이유리의 재발견은 결국 같은 의미다.

연민정이 도드라질수록 장보리의 존재감은 점차 희미해져 갔다. 드라마가 3분의 2 지점을 달려올 때까지 장보리는 나름 씩씩하고 당찬 매력으로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았다. 하지만 용두사미였다. 가장 중요한 스퍼트 지점인 마지막 3분의 1에서 연민정의 그늘에 가리며 급격히 힘을 잃었다. 극의 전개에도 별다른 도움이 되지 못했다. 연민정에 대한 복수는 느닷없이 등장한 문지상(성혁)이 책임졌다. 드라마 제목에 자신의 이름까지 내건 주인공이란 점에서 제 몫을 챙기지 못한 데 대한 아쉬움이 두 배로 크다.

잃어버린 존재감. 가장 큰 이유는 대본과 연출에 있다. 재미에만 치중해 이야기를 이끌어가면서 연민정을 과도하게 부각시켰고 반대로 주인공 장보리 캐릭터를 방치하다시피 했다. 연민정의 악행이 자극의 강도를 높일수록 이에 발맞춰 장보리의 전투력도 끌어올렸어야 했다. 하지만 장보리의 복수는 뒷전으로 밀렸다. 계모와 친모 사이에서 오락가락하는 우유부단함 속에 어느덧 장보리는 연민정보다 더 큰 짜증을 유발하는 밉상 캐릭터로 전락하고 말았다.

배우 본인의 책임도 간과할 수 없다. 캐릭터의 변화를 충분히 담아내지 못한 오연서 연기의 뒷심 부족이 장보리를 힘 빠지게 한 측면이 있다. 장보리는 계모의 구박을 받고 친딸도 아닌 비단이를 키우는 상황에서도 침선장이라는 꿈을 향해 한걸음씩 나아가는 성장형 캐릭터가 돼야 했다. 비록 대본이 정해준 틀 안에서 운신의 폭이 좁았다고는 해도 장보리의 행동과 말에 설득력을 갖추기 위해 얼마만큼의 연기적 노력을 쏟았는지 냉정하게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오연서는 극 초반부에 탄탄하게 구축된 장보리 캐릭터에 안주하거나 기댔을 뿐 자신만의 해석과 노력을 보탠 살아있는 캐릭터를 만들어내는 데는 실패했다.

이유리가 칭찬을 받은 건 대본이나 연출 덕이 아니다. 이유리 만의 독창적인 연기에 대한 노력 덕분이다. 이유리는 표독스러운 악행에도 묘한 동정심을 유발하는 연기로 희대의 악녀를 재창조했다. '이유리 표정 모음 세트'라는 유머 게시물이 인터넷에 올라올 정도로 변화무쌍했던 표정 연기. 대본에 구체적으로 제시된 지침이었을까. 아니다. 캐릭터 해석에 대한 부단한 이해와 노력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온 결과물이었을 것이다.

드라마 속에는 악녀도 흔하고, 정의롭고 착한 캐릭터도 흔하다. 선과 악은 전형적인 인물 구도다. 연민정은 흔하지 않은 악녀로 남았지만 장보리는 흔한 주인공으로 극을 마쳤다. 만시지탄이지만 장보리가 흔하디 흔한 캔디 캐릭터로 남지 않기 위해 오연서는 주연배우로서 캐릭터에 대한 최후의 지킴이가 됐어야 했다. 하지만 대본과 연출로부터 소외받는 동안 오연서 역시 장보리를 방치했다. '왔다 장보리'로 시작해 '갔다 연민정'으로 끝날 수 밖에 없었던 이유였다.
김표향 기자 suzak@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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