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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연민정의 남자' 성혁 "욕심 내려놓으니 일이 풀리더라"

김표향 기자

기사입력 2014-10-20 08:32


사진제공=FNC엔터테인먼트

성혁이란 이름은 아직 낯설어도 문지상이라고 하면 단박에 알아차리는 이들이 꽤 많을 것이다. 희대의 악녀 연민정 때문에 소화불량에 걸릴 뻔한 시청자들의 속을 확 뚫어준 청량음료 같은 남자. 그래서 탄산남, 인간 사이다, 갓(God)지상이라 불린 남자. 그 배우의 이름이 바로 성혁이다.

MBC '왔다 장보리'에서 성혁의 활약상은 이렇게 요약될 수 있을 듯하다. '뛰는 연민정 위에 나는 문지상'. 그의 조용하고 치밀한 복수가 탄력을 받기 시작하면서 드라마는 시청률 30%의 벽을 가볍게 넘어버렸다. 문지상으로 개명하라는 얘기까지 들을 만큼 캐릭터를 막힘 없이 소화한 성혁은 연민정 역의 이유리와 함께 가장 큰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기대주로 급부상했다.

그런데 정작 성혁 본인은 '몹시' 무덤덤했다. 아예 자신의 인기에 관심조차 없는 듯했다. "시청자들이 드라마를 좋아해주는 건 시청률 보면 알겠는데 저의 인기는 아직 잘 모르겠어요. 저는 자유로운 사람이라서요. 주변을 잘 의식하지 않는 편이에요. 그래서 사람들이 제 얼굴을 알아보면 오히려 불편해질 것 같아요."

그러고 보니 문지상의 트레이드 마크인 슈트 대신 캐주얼한 티셔츠를 입은 성혁은 완전 딴사람이다. 자유로운 성품이라는 그의 말처럼 가식이 전혀 없다. 털털하다 못해 그냥 '일반인' 같기도 하다. 약간 마른 듯한 구릿빛 얼굴과 까칠한 수염, 형형한 눈빛에선 마초 냄새가 풍겨온다. 문지상과 이미지가 다르다는 말에 그는 "실제로는 착한 남자보다 상남자에 가깝다"며 껄껄 웃었다. "손발이 오글거리는 걸 못 참아요. 할말은 하는 직선적인 성격이라 오해도 많이 받았고요. 누군가에게 잘 보이려고 마음에도 없는 말 하는 것, 저는 절대 못해요. 그래도 알고 보면 저 같은 사람이 진국이에요."

길들여지지 않는 야생마 같은 성혁에게도 마음 약해지는 순간이 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딸 비단이(김지영)와 함께 있을 때다. 그는 "비단이가 진짜 자식인 것처럼 빠져들게 되더라"고 했다. 하지만 카메라 밖에선 비단이에게 삼촌이나 아빠가 아닌 '오빠'라 불린다. "비단이랑 친해지면서 연기 호흡도 점점 좋아졌어요. 나중에는 바라만 봐도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애틋하고 마음이 아프더라고요. 지금도 가슴이 저릿해요." 비단이 얘기에 성혁의 눈가가 금세 촉촉해진다. "이래서 사람의 눈을 보면 그가 거짓인지 진심인지 안다니까요." 머쓱함을 털어내려고 그가 장난스럽게 농담을 던진다.

성혁은 연민정 캐릭터에도 진한 연민을 갖고 있다. 그래서 복수극을 펼치는 문지상을 연기하며 외로웠고 마음에 상처를 입기도 했단다. "연민정이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에서 벗어나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안간힘을 쓰잖아요. 다른 사람은 몰라도 문지상이라면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는 연민정을 측은해했을 거 같아요. 그래서 문지상은 복수하는 게 아니라 연민정의 폭주를 막는 거라고 생각했어요. 연민정을 노려볼 때도 눈빛엔 안타까움이 묻어나도록 연기하려 했죠." 또 한번 그의 눈빛이 촉촉해진다.

진정성이 느껴지는 그의 연기는 10년 무명 생활에서 얻은 깨달음의 결과물이다. 2005년 드라마 '해변으로 가요'로 데뷔했지만 '왔다 장보리' 이전에는 별다른 대표작이 없었다. 2010년 KBS2 주말극 '결혼해주세요'에서 비중 있는 역할을 맡아 드디어 잘 풀리나 싶었는데 결과는 기대에 못 미쳤다. 그러고는 곧장 군입대. 성혁은 "군복무를 하면서 자아성찰을 했다"고 했다. "'결혼해주세요'에 출연할 땐 당장 뭐라도 될 것처럼 들떠 있었던 것 같아요. 욕심부리지 않고, 주변 의식하지 않고, 묵묵히 연기에 충실하면 되는 건데 말이죠. 20대를 돌아보면 남과 비교하면서 조급해하고, 도태될까 봐 불안해했던 것 같아요.나는 왜 안 되는 걸까 하는 생각조차 할 필요가 없는 건데…. 그렇게 마음가짐이 안 돼 있으니까 연기가 뻣뻣해지고 유연하지 못했던 거예요. 동료들과의 호흡도 안 되고요. 결국 문제는 저에게 있었던 거죠."

성혁은 모든 걸 내려놓았다. 생각을 바꾸니 몸도 마음도 편안해졌다. 그때부터 일이 풀리기 시작했다. '왔다 장보리'도 그렇게 만난 작품이다. 그리고 '왔다 장보리'가 종영하기도 전에 KBS1 새 일일극 '당신만이 내 사랑'에 남자주인공으로 발탁됐다. "레스토랑 셰프 역할인데 상남자의 매력을 보여주겠다"고 한다. 이제 그에겐 거침 없는 질주만이 남아 있는 듯하다.
김표향 기자 suzak@sportschosun.com


사진제공=FNC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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