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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리뷰] 베르디 오페라의 진수를 보여준 고양문화재단의 '나부코'

김형중 기자

기사입력 2014-10-19 15:30


[공연 리뷰] 베르디 오페라의 진수를 보여준 고양문화재단의 '나부코'


◇고양문화재단의 '나부코'에서 열연한 나부코 역의 김진추(왼쪽)과 그의 딸 아비가일레 역의 박현주. 사진제공=고양문화재단


애절하고 간절한 마음을 어떻게 이렇게 아름다운 선율에 담을 수 있을까. '나부코'의 명곡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은 바빌론에 끌려간 히브리인들이 하느님에게 구원과 자비를 간구하는 처절한 내용을 담고 있다. 가슴을 긁는 현악기의 울림을 타고 시작되는 이 곡은 작곡가 베르디의 가슴을 서글픔으로 물들였다는 '날아가라, 내 마음이여, 금빛 날개를 타고~'에 이르러 슬픔과 처절함을 넘어서 한편의 음악적 시(詩)로 관객들에게 다가온다.

고양문화재단과 대전 예술의전당이 공동제작해 지난 16일부터 18일까지 고양아람누리 아람극장에서 공연한 '나부코'는 베르디 오페라의 참맛을 보여준 무대였다. 성악 못지 않게 드라마의 비중을 강화한 베르디 오페라의 특색을 현대적인 무대와 조화를 이뤄 잘 살려냈다. 성서에 있는 바빌론 유수를 모티브로 바빌론인들과 히브리인들의 갈등을 바탕으로 사랑과 권력욕, 참회와 용서의 드라마가 베르디의 서정적이고 웅장한, 그러면서도 감정을 절제하는 엄격한 화음을 타고 흘렀다.

누구보다 바빌로니아의 공주 아비가엘레 역을 소화한 소프라노 박현주의 카리스마가 돋보였다. 아비가엘레는 동생 페냐냐의 연인으로 히브리왕의 조카인 이스마엘레를 사랑하지만 뜻을 이루지 못하고, 또 아버지 나부코 왕의 권좌를 탐내다 비극적 최후를 맞는 인물이다. '나부코'에서 벌어지는 모든 사건의 중심에 있는 인물을 관록의 박현주는 드라마틱한 창법으로 연기하며 무대에 긴장감과 활력을 불어넣었다. 마리아 칼라스의 대표작이기도 한 '노르마'를 통해 유럽에서 쌓은 명성을 그대로 보여줬다. 나부코 역의 바리톤 김진추 역시 탐욕의 권력자에서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회개하는 인물로 변화하는 캐릭터를 장중하게 보여줬다.

김태형 연출은 나부코와 히브리인들의 대립을 이교도와 기독교인의 대립이 아니라 다른 가치관을 가진 두 세계의 갈등으로 해석해 나부코는 물질과 기계 문명을, 핍박받는 히브리인들은 정신 및 자연 문명을 대변하는 인물로 각각 설정했다. 이를 위해 인공적의 느낌의 모던한 무대 세트와 화려하고 다양한 영상을 동원해 고전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었다.

개관 초기부터 '토스카'(2008), '사랑의 묘약'(2009), '라 보엠'(2010) 등을 제작해온 고양문화재단은 2012년 예술감독 체제를 도입해 체계적인 오페라 제작 시스템을 갖춰 '피가로의 결혼'(2012), '카르멘'(2013) 등 완성도 높은 작품을 선보여왔다. 정은숙 예술감독과 지휘자 장윤성 등 베테랑 군단이 호흡을 맞춘 이번 '나부코' 역시 재단의 저력과 가능성을 보여줬다.

'나부코'는 24일부터 26일까지 대전예술의전당에서 공연이 이어진다.
김형중 기자 telos21@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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