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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브라질 월드컵의 막이 올랐다. 방송 3사의 중계 경쟁도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피파(FIFA)로부터 제공받는 경기 영상은 방송 3사 모두 동일하다. 문제는 얼마나 효과적으로 전달하느냐다. 결국 중계단의 전투력에 성패가 달렸다. 그래서 준비했다. 1년 내내 그라운드를 누비거나 축구중계를 밥먹듯 빠지지 않고 챙겨보는 축구전문가이자 '축빠'를 자처하는 본지 축구 전문기자 7명에게 중계단의 전력분석을 의뢰했다. 설문조사는 10개 문항에 대해 각각 5점 만점으로 평가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전체 문항의 총점은 50점 만점. 설문자 7명의 합계점수는 350점 만점이다. 결과부터 말하면 SBS(합계점수 317점)의 압도적 '우위'와 MBC(260점)-KBS(244점)의 '분전'으로 갈렸다. 하지만 '공은 둥글다'는 축구 격언이 있다. 또, 축구 해설에 대한 전문기자의 시각과 평가기준은 일반 대중의 그것과는 조금 다를 수 있다. 갱 없는 드라마는 그라운드뿐만 아니라 마이크 앞에서도 펼쳐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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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범근에겐 아들이 한 명 더 있다. 바로 배성재 캐스터다. 팬들뿐만 아니라 자신들도 '부자관계'를 자처할 만큼 손발이 척척 맞는다. 호흡(31점)과 시너지(32점) 점수가 타사 중계단에 비해 월등히 높았던 이유다. 차범근은 "더 이상 이런 조합이 가능하겠는가 싶다"라고까지 표현했다.
차범근과 쌍두마차를 이룰 배성재는 캐스터로서는 이례적으로 전문성(33점)이 높이 평가됐다. '배거슨(배성재+퍼거슨)이란 별명이 왜 나왔는지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스포츠 전문 아나운서답게 순발력(32점) 점수도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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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는 이번 대회에서 '2002 신화'를 중계로 재현하겠다는 목표를 내걸었다. 공격수 출신 안정환, 수비수 출신 송종국, 그리고 그 둘의 시너지를 통해 다각도로 접근하는 균형있는 해설을 준비하고 있다. 그 가운데 자리한 김성주 캐스터는 양 날개를 조율하는 컨트롤타워다. 지난달 28일 튀니지와의 국내 평가전에서 처음 선보인 '3인 중계'는 좋은 평가를 받았다. 특히 안정환은 "운동장 안에 감독이 없네요", "수비수의 눈이 없는 곳에 공격수가 있어야죠", "예방 주사를 맞았다고 생각하세요" 등의 어록까지 탄생시키며 주목받았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불안요소가 없지 않다는 평가다. 송종국의 해설위원 경력은 1년, 안정환은 6개월에 불과하다. 해설위원들의 네임밸류(29점)에 비해 설명력(24점)이 다소 낮게 평가된 이유다. 스타 플레이어 출신이긴 하지만, 선수가 아닌 해설위원으로서의 전문성(27점)도 보완해야 할 점이다.
때문에 MBC 중계단의 맏형인 김성주의 역할이 중요하다. 2006 독일 월드컵에서 실력을 인정받은 김성주는 2012 런던 올림픽과 2014 소치 동계올림픽에서도 전천후 활약을 펼치며 명불허전임을 입증했다. 김성주가 최고의 캐스터라는 건 저명도(30점)와 순발력(30점) 점수에서도 드러난다. 그러나 월드컵 중계는 2006년 이후 8년 만이다. 축구 중계라는 한정된 영역에서 전문성(24점)이 저평가된 데는 8년의 공백이 고려됐다는 분석이다.
김성주-안정환-송종국은 예능 프로그램 '아빠 어디가'를 통해 친목을 다졌다. 누구와도 잘 어울리는 김성주에겐 '케미 요정'이란 수식어까지 붙었다. 김성주는 "홍명보 감독과의 친분, 선수들과의 교류 관계 등을 활용해 차별화된 고급 정보를 제공하겠다"며 "아빠들이 축구 보며 수다 떠는 느낌으로 친숙한 중계를 선보이겠다"고 말했다. 아빠들의 수다가 예능에 이어 중계에서도 통할지 관심이 모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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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는 월드컵 중계단을 꾸리는 데 애를 먹었다. 소치 동계올림픽에서의 참패를 극복해야 하는 과제까지 안고 있었다. 그래서 SBS와 MBC에 맞설 카드로 프리랜서로 활동 중인 전현무 영입이란 깜짝 카드까지 검토됐다. 결국엔 이영표 해설위원과 조우종 캐스터로 메인 중계진의 조합을 마쳤지만, 뒤늦게 김보민 아나운서의 남편인 김남일을 해설위원으로 영입하며 반전을 노리고 있다. 김남일은 입담이 좋은 MBC 안정환과 SBS 차두리를 견제하기 위한 카드로 읽힌다.
KBS 중계단은 '신참'들이다. 이영표-김남일 해설위원뿐만 아니라 조우종 캐스터도 월드컵 중계는 첫 경험이다. 김남일은 아직 중계석에 제대로 앉지도 못했다. 때문에 이영표와 달리 김남일은 캐스터들과의 조합을 점검할 수 있는 시간이 충분하지 않았다. 중계단의 호흡(22점)과 시너지(22점)에 대한 낮은 평가는 이런 우려를 반영한다.
조우종도 캐스터로서의 전문성(19점)과 저명도(20점)가 약점이다. 교양, 예능, 스포츠 등 다양한 분야를 아우르며 진행 실력을 쌓은 덕분에 순발력(26점)은 높게 평가됐지만, 월드컵이라는 큰 대회 경험이 부족했던 것이 발목을 잡은 셈이다.
그러나 지난 10일 가나와의 평가전에서 선보인 이영표의 해설은 비교적 좋은 평가를 받았다. 전문성(30점)은 특별히 높았고 설명력(27점)도 무난하다는 평가다. '2002 신화'의 주역 답게 네임밸류(31점)도 높다. 해설위원으로 시청자들에게 각인되기 위한 노력(대중성 24점)이 보완된다면 상승세를 탈 가능성도 있다.
KBS는 충성도 높은 중장년층 시청자들을 확보하고 있다는 점에서 타사에 비해 채널 경쟁력을 갖는다. 여기에 젊고 패기 넘치는 해설진이 새 바람을 일으킨다면, 최약체로 평가받는 KBS 중계단이 브라질에서 '큰 일'을 낼지도 모른다.
김표향 기자 suzak@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