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로틱칵테일] 오빠, 진짜 제가 여자로 보이나요?

김형중 기자

기사입력 2011-10-30 17:36


얼마 전 한 남자에게서 고백을 들었다. "사실 내가 오늘 너한테 자꾸 얼굴 보자고 한 이유는 말이야, 내가 너한테 마음이 있기 때문이야. 넌 까탈스럽긴 하지만 매력이 있단 말이야. 요즘엔 어떻게 하면 너를 행복하게 해줄 수 있을까, 그 생각밖에 하지 않아."

누군가에게 사랑 고백을 받은 지가 도대체 언제였던가. 이쯤 되면 '내가 여자로서 아직 매력이 있구나, 죽지 않았어!' 하면서 좋아하거나 그 남자를 다시 보면서 '이 남자랑 어떻게 잘해봐 말아'를 고민해야 할 텐데, 나름 진지한 표정으로 얼굴을 굳히고 내 눈치를 살피는 그 남자를 보면서 내가 처음 한 생각이란 '어멋, 징그럽게 왜 이러세요!'였다.

그가 아무리 나이보다 어려 보인다고 하더라도 직장이 안정적이고 성격이 아무리 좋다 하더라도, 그가 나보다 자그마치 10살이나 많은 남자이기 때문이다! 내가 태어났을 때 그는 이미 옆자리 짝꿍을 짝사랑하는 골목대장이었을 것이며, 그가 대학에 가서 술담배를 시작할 때 나는 코 찔찔 흘리며 초등학교에 적응하고 있었을 것이다.

물론 나도 연하의 남자보다 항상 연상의 '오빠'들을 더 선호해왔다. 첫 연애는 5살 많은 복학생 선배와 했고, 8살 많은 남자와 오래 연애해본 적도 있고, 7살 많은 유부남을 짝사랑해본 적도 있다. 그들의 연륜과 삶의 지식은 좌충우돌 갈 길 못 찾는 내게 구세주와 같았고, '오빠가 다 해줄게'라는 오빠들 특유의 사명감에 안정감도 느꼈다. 게다가 나 역시 내일모레면 삼십대 중반 공식 노처녀가 되는 마당에, 남의 나이 갖고 아저씨니 주책이니 하는 것도 모순이다.

하지만 이상하게 나이 많은 남자가 어린 여자를 좋아하는 건 왠지 모르게 음흉하게 느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어린 여자와의 결혼이나 연애에 대하여 "오, 멋진걸, 능력 있는데?" 식으로 반응하는 것이나 입만 열면 '영계' 운운하는 남자들의 본능, 술집 등에서 딸뻘 되는 여자를 아무렇지 않게 취하는 남자들에 대해 가졌던 부정적인 심리가 내 안에 깊이 자리 잡았기 때문일 것이다.

남자들이 어린 여자를 선호하는 것은 생물학적으로 일리가 있다. 많은 경쟁자들을 젖히고 하나의 난자와 결합해 자손을 번식해야 하는 종족본능, 씨앗을 최대한 멀리 멀리 퍼뜨려 최대한 많은 양질의 자손을 얻어야 하는 생존본능. 따라서 당연히 늙은 여자보다 어린 여자가 생식 능력이 뛰어나기 때문에 본능적으로 '어린 여자'에게 끌리는 것이다.

그렇다면 사랑을 고백해오는 그 남자에게 거부감을 느낀 이유는, 아무래도 내가 그의 종족 본능을 위한 생식 수단으로 이용되는 것 같은 불편함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세상을 알 만큼 아는 '권력자'가 상대적으로 아무것도 모르는 철없는 여자를 소유하려 하는 듯한 느낌을 받은 것일까?

가장 큰 이유는 아무래도 배신감 같다. 10살이나 많은 그에게 '오빠, 오빠' 하면서 친근하게 군 건, 그가 정말 편했기 때문이다. 그는 남자가 아닌 '아저씨'나 '삼촌' 같은 고유명사였다. 그런 그나 나를 그동안 여자로 보고 있었다는 사실이 나는 견딜 수 없이 민망한 것이다. 눈치 없던 스스로를 탓해야 하는 건지, 지금은 그냥저냥 난감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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