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한 남자에게서 고백을 들었다. "사실 내가 오늘 너한테 자꾸 얼굴 보자고 한 이유는 말이야, 내가 너한테 마음이 있기 때문이야. 넌 까탈스럽긴 하지만 매력이 있단 말이야. 요즘엔 어떻게 하면 너를 행복하게 해줄 수 있을까, 그 생각밖에 하지 않아."
물론 나도 연하의 남자보다 항상 연상의 '오빠'들을 더 선호해왔다. 첫 연애는 5살 많은 복학생 선배와 했고, 8살 많은 남자와 오래 연애해본 적도 있고, 7살 많은 유부남을 짝사랑해본 적도 있다. 그들의 연륜과 삶의 지식은 좌충우돌 갈 길 못 찾는 내게 구세주와 같았고, '오빠가 다 해줄게'라는 오빠들 특유의 사명감에 안정감도 느꼈다. 게다가 나 역시 내일모레면 삼십대 중반 공식 노처녀가 되는 마당에, 남의 나이 갖고 아저씨니 주책이니 하는 것도 모순이다.
하지만 이상하게 나이 많은 남자가 어린 여자를 좋아하는 건 왠지 모르게 음흉하게 느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어린 여자와의 결혼이나 연애에 대하여 "오, 멋진걸, 능력 있는데?" 식으로 반응하는 것이나 입만 열면 '영계' 운운하는 남자들의 본능, 술집 등에서 딸뻘 되는 여자를 아무렇지 않게 취하는 남자들에 대해 가졌던 부정적인 심리가 내 안에 깊이 자리 잡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사랑을 고백해오는 그 남자에게 거부감을 느낀 이유는, 아무래도 내가 그의 종족 본능을 위한 생식 수단으로 이용되는 것 같은 불편함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세상을 알 만큼 아는 '권력자'가 상대적으로 아무것도 모르는 철없는 여자를 소유하려 하는 듯한 느낌을 받은 것일까?
가장 큰 이유는 아무래도 배신감 같다. 10살이나 많은 그에게 '오빠, 오빠' 하면서 친근하게 군 건, 그가 정말 편했기 때문이다. 그는 남자가 아닌 '아저씨'나 '삼촌' 같은 고유명사였다. 그런 그나 나를 그동안 여자로 보고 있었다는 사실이 나는 견딜 수 없이 민망한 것이다. 눈치 없던 스스로를 탓해야 하는 건지, 지금은 그냥저냥 난감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