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연의 S다이어리] '외국 여친'이 그립다는 남친

김형중 기자

기사입력 2011-10-26 13:41


A의 남자친구는 연애경험이 많다. 그건 A도 마찬가지다. A는 잠자리했던 남자도 많고 죽고 못 살았던 남자도 많았다. 이래저래 별의별 연애를 다 해본 두 사람은 우연히 비슷한 시점에 솔로가 되었고, 그게 인연이 되어 서로 사귀게 되었다.

사실 연애를 많이 해봤다고 해서 연애를 잘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차마 말 못할 상처와 이성에 대한 이러저러한 편견과 강박증을 꽁꽁 숨겨둔 사람들이기도 하다. 바로 수많은 이별을 겪으면서 만들어진 트라우마 말이다. 두 사람은 서로의 눈치를 살피며 그저 둥글둥글하게 오래 갈 궁리를 한다. 그래서 서로에게 맞춰주고 그 사람의 실수는 되도록 눈감아 주려고 한다. '너도 허물 있고, 나도 허물있고……. 그러니 앞서 누굴 만나 어떻게 놀았는지는 말하지 말자.' 이것이 서로 암묵적으로 한 약속이다.

연애를 하다보면 특유의 습관이 생긴다. 어떤 이는 주말만 되면 어디든 나가야 직성이 풀린다. 애인 있을 적에 놀러 다닌 게 버릇되어서 헤어지고도 혼자 가만히 있지 못한다. 그 사람이 좋아서 함께 스파게티를 먹고 에로영화를 보고 이따끔 한강유람선을 타게 되었지만, 나중에는 데이트의 아이템이 인생의 한 습관으로 자리 잡는 것이다. 그래서 그 사람이 없어져도 그냥 혼자 스파게티가 먹고 싶어지고, 야한 영화가 땡기고, 유람선도 타고 싶어진다.

올 들어 남자친구의 심기가 상당히 이상해진 것을 감지한 A가 그에게 터놓고 물었다. "도대체 뭐가 그렇게 문제야?" 그가 땅이 꺼질 듯이 한숨을 쉬듯이 말했다. "실은 말이야. 나 '백마'가 너무 타고 싶다…. 너랑 하는 것도 좋은데, 뭔가 좀 그래." A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어쨌거나 그는 지금 그녀의 애인이 아닌가. 그런데 그는 대놓고 외도를 말하고 있다. 아니, 터무니없는 과거를 말하고 있다. 그는 A를 만나기 전에 몇 가지 유별난 전적이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외국인 여자친구와 사귀었던 것이다. 크리스티나라는 이름의 세 살 연상의 백인 여자. 그녀에게 처음 동정을 바쳤고, 테크닉도 상당히 배웠다. 그녀와 헤어지고 나서 그는 한동안 외국인 출입업소를 찾아 다녔다. 우연한 기회로 접해본 외국 여자의 몸. 그건 흔한 기회도 아니었으며 확실히 색달랐다. 크리스티나와 헤어지고도 여전히 그는 그런 경험이 생각나 감질났다. A의 남친은 지금 그게 하고 싶은 것이다.

그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아낸 A는 탄식했다. A의 노력으로는 안 되는 부분이기도 했다. 백인여자처럼 하얗게 될 도리도 없고 가슴과 엉덩이가 커질 수도 없다. 노력으로 불가능한 노릇이다. 그는 예전에 사귀었던 크리스티나가 그리운 것도 아니고 다시 애정이 생긴 것도 아니고 다만 그때 느꼈던 감촉과 느낌을 다시 느끼고 싶은 것뿐이다. 처음부터 몰랐다면 그리워하지도 않을 텐데, 한번 맛본 것은 담배처럼 끊기가 이토록 어려운 법이다. 남친이 야속할 뿐이다. 가끔 깊은 밤에 남친이 연락을 끊어버리면, 외국 여자와 뒹굴고 있는 게 아닌가 걱정될 정도였다.

사실 누구에게나 특별히 기억되는 몸은 있다. 사람들의 몸은 저마다 달라서 머리도 가슴도 아닌 몸만이 기억하는 몸이 있다. 그 사람과는 이미 헤어졌는데, 그 사람과의 섹스가 그리워질 수 있다. 그 사람은 다시 만나기 싫은데, 그 사람과 그것만 하고 싶을 수 있다. 몸은 그 사람을 어떻게 사랑해서 어떻게 헤어졌는지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그때의 느낌이 중요할 뿐이다. 육체의 쾌락은 그만큼 이기적이다. 옛 애인이 갑자기 찾아와 섹스만 하고 사라지는 일도 이러한 이유로 가능하다. 몸의 그리움은 채워지자 마자 쓰레기가 되는 냉정한 것이다.

:) 당신이 좋아할만한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