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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현vs김준일, '신인왕 이후'가 더 중요한 이유

이원만 기자

기사입력 2015-02-26 17:25


지금의 우열은 사실 큰 의미가 없다. 누가 '신인왕'을 받아도 충분히 납득할 만 하다. 중요한 건 '신인왕' 이후의 미래다.

남자 프로농구가 정규시즌 종료를 눈앞에 두고 있다. 플레이오프 진출팀들의 윤곽이 거의 다 가려진 상태라서 경기 자체의 승패보다 개인상 수상에 더 관심이 쏠리는 일이 잦다. 그 가운데에서도 특별히 관심을 끄는 분야가 바로 신인상이다. 이미 시즌 개막 전부터 삼성 김준일과 오리온스 이승현의 2파전으로 예상됐던 분야. 두 선수는 기대만큼의 활약을 보여주며 이번 시즌 코트를 달궜다.


◇삼성 썬더스 신인 김준일이 지난 22일 잠실실내체육관에서 열린 kt와의 연습경기에서 상대 김승원의 수비를 뚫고 레이업슛을 하고 있다. 김준일은 강력한 신인왕 후보다. 잠실=정재근 기자 cjg@sportschosun.com
이들의 현재까지 기록을 살펴보면 말 그대로 '막상막하'. 우열을 가리기 힘들다. 이쪽에서 보면 김준일이 더 뛰어나아 보이고, 저쪽에서 보면 이승현이 잘한 것 같다. 그러나 기록 차이는 아주 미세하다. 판도를 바꿀 정도는 아니다. 또 팀 성적은 이승현이 뛴 오리온스가 김준일의 삼성보다 월등하다. 그런데 이들의 신인왕 경쟁에 '팀 성적 프리미엄'은 그다지 따라붙을 것 같지 않다. 그만큼 각자의 실력 자체로 확실한 영역을 구축했기 때문이다.

일단 김준일은 득점력에서 이승현보다 나았다. 25일 기준, 48경기에 나와 평균 14.0점을 기록해, 51경기에서 평균 10.6득점을 기록한 이승현을 앞섰다. 그런데 평균 출전시간은 김준일이 29분48초였고, 이승현은 33분10초였다. 다른 기여도를 살펴보자. 이승현은 4.9리바운드와 2.0어시스트로 오히려 김준일의 4.4리바운드, 1.8어시스트를 앞섰다. 득점력은 떨어졌어도 다른 분야에서 충분히 부족함을 만회했다고 볼 수 있다.


◇고양 오리온스의 이승현이 지난 15일 고양실내체육관에서 열린 LG와의 경기에서 득점을 성공한 뒤 주먹을 불끈 쥐고 있다. 이승현은 이번 시즌 강력한 신인왕 후보다. 고양=허상욱 기자 wook@sportschosun.com
이런 수치가 의미하는 바는 한 가지다. 바로 김준일과 이승현 사이에 실력차는 없다는 것이다. "누가 더 낫다"는 평가가 무색할 만큼 두 선수는 좋은 활약을 보여주고 있다. 신인임을 감안하면 더욱 놀랍다. 때문에 현장 지도자들은 "두 선수는 이미 '신인'의 단계를 벗어났다고 봐도 무방하다"는 말을 한다.

결국 이 두 선수 중에 누가 신인왕을 받을 것인가에 대한 명제에 대해서도 결론을 내리기 어렵다. 앞으로 남은 경기에서 누가 얼마나 더 인상적인 활약을 많이 펼치느냐에 따라 희비가 갈릴 가능성마저 있다. 지금까지는 엇비슷하게 다 잘해온 탓이다. 실제로 오리온스 추일승 감독이나 삼성 이상민 감독은 "아무래도 팔은 안으로 굽게 마련"이라며 소속팀 선수의 장점을 강조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솔직히 말하자면 둘 다 받을만 하다. 누가 (신인왕을) 받더라도 이상하지 않다"는 말을 하고 있다.

이 말 안에 두 선수를 바라보는 농구계의 시각이 담겨있다. 분명 이승현과 김준일은 오랜만에 한국 남자농구에 나타난 축복같은 존재들이다. 신장과 힘, 스피드, 농구 센스를 이렇게 잘 갖춘 선수가 동시대에 두 명이나 라이벌로 등장했다. 그리고 서로 건전한 긴장 관계를 형성하면서 기량 발전의 원동력으로 삼고 있다.

때문에 현재 누가 좀 더 잘 하는지, 못 하는지를 판단하는 건 큰 의미가 없다. 신인상이 평생 한 번 뿐인 영광이긴 하지만, 혹시 못받더라도 개인의 가치가 떨어지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더 중요한 건 루키 시즌을 보낸 뒤 이들이 얼마나 더 큰 선수로 성장해 오랫동안 각자의 영역에서 좋은 활약을 보여주느냐이다.


종목은 다르지만, 이런 구도는 지난 1993년 프로야구에서 이종범과 양준혁의 경쟁을 떠올리게 한다. 당시 양준혁과 이종범은 막상막하의 성적을 냈는데, 신인왕은 양준혁이 차지했다. 그러나 이종범이 결코 양준혁에 못미치는 선수였다고 할 순 없다. 이후 20년간 두 선수는 프로야구의 슈퍼스타로 군림하며 각종 대기록을 쏟아냈다. 김준일과 이승현도 이런 미래를 그려가는 게 중요하다. 이들에게 '신인왕 그 이후'를 더 강조하는 이유다.


이원만 기자 wma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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