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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 있음에!'
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결코 그렇지도 않다. 22승 가운데 4승은 단 1점차의 승리를 거뒀다. 1점차 승부로 이긴 팀은 말할 수 없는 짜릿함을 느끼지만, 패한 팀은 다 잡은 경기를 놓쳤기에 상실감이 상당하다. 우리은행은 이 살얼음판 승부를 모두 가져갔다. 아무리 뒤지고 있어도 결국 승부처에선 반드시 경기를 잡을 수 있다는 자신감을 줬다. 우리은행으로선 4승 이상의 엄청난 가치를 얻은 셈이다.
그런데 이 4번의 짜릿한 승부 가운데 3번의 위닝샷을 넣은 선수가 있다. 바로 가드 박혜진이다. 냉철한 '승부사' 그 자체라 할 수 있다. 우리은행은 16일 KDB생명전에서 경기 종료 25초를 남기고 KDB생명 이연화에 미들슛을 허용하며 50-51로 역전당했다. 남은 단 한번의 공격 기회에서 박혜진은 3점슛 라인부터 혼자서 치고 들어가 켈리와 신정자의 더블 마크를 뚫고 레이업슛을 성공시켰다. 골을 넣은 후 남은 시간은 단 2.5초. KDB생명으로선 반격조차 하지 못하고 그대로 무릎을 꿇었다.
위닝샷은 아니었지만 박혜진의 위력은 지난 1일 KDB생명전에서 발휘된 바 있다. 3점차로 뒤진 4쿼터 종료 35초전에 림에서 8m 가까이 떨어진 먼 곳에서 과감히 3점포를 던져 성공시키며 승부를 연장전으로 끌고 갔고, 결국 우리은행은 승리를 거뒀다. 올 시즌 유일한 연장전 승부를 가능케 했던 선수도 바로 박혜진이었다.
당시 KDB생명 안세환 감독은 "설마 그렇게 먼 거리에서 던질 줄은 몰랐다. 붙으면 파고들고, 떨어지면 어느 곳에서든 던지니 여간해선 막기 힘들다"며 혀를 내둘렀다. 그만큼 상대팀에겐 까다로운 선수임에는 틀림없다.
사실 박혜진은 농구공을 놓을 뻔한 위기를 겪었다. 우리은행이 4시즌째 최하위를 달리던 지난 2011년 11월 박혜진은 김광은 전 감독과의 불화로 인한 폭행사건의 피해 당사자였다. 12연패를 당한 홧김에 김 전 감독이 박혜진의 멱살을 잡았는데, 이것이 목을 조르고 심한 폭행을 한 것으로 비화되면서 충격을 받은 박혜진은 시즌 중 마산으로 낙향해 몇 경기동안 결장을 했다. 김 전 감독의 사퇴로 마무리됐지만 박혜진은 이 시즌에 전년도에 비해 모든 수치가 떨어졌다.
그런 박혜진이 2012~2013시즌을 앞두고 위성우 감독과 전주원 박성배 코치를 새롭게 만난 것은 농구 인생에서 최대의 행운이라 할 수 있다. 특히 한국 여자농구를 대표하는 가드 출신 전 코치의 조련은 박혜진을 확실히 한단계 업그레이드 시켰다. 박혜진은 내외곽을 넘나드는 슈팅가드의 역할뿐 아니라 동료 이승아가 부진할 때 팀 리딩까지 도맡고 있다. 가드로서는 큰 키인 1m78이라 상대팀 포워드 수비까지 가능하다. 무엇보다 1990년생으로 올해 만 24세에 불과, 앞으로 10년 이상 소속팀과 한국 여자농구를 책임질 대형 가드로 이미 성장했다. 팀의 기대감이 계속 커지지만 이를 부담보다는 격려로 여기는 타고난 강심장은 박혜진을 더욱 강한 승부사로 만들고 있다.
올 시즌 경쟁팀에 비해 상대적으로 부진한 외국인 선수, 백업센터 이선화의 부상 등으로 매 경기 어려운 승부를 펼치고 있는 우리은행이지만 통합우승 2연패라는 쉽지 않는 목표에 점차 다가서고 있는 것은 바로 박혜진 덕분이다.
남정석 기자 bluesky@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