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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조선 이원만 기자] 부상에서 돌아온 1억1300만 달러(약 1658억원) 짜리 타자, 올 시즌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포스트시즌 진출의 최대 변수. 내셔널리그(NL) 타격왕 경쟁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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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범경기에서도 무난한 활약을 펼친 이정후는 예상대로 샌프란시스코 개막엔트리에 포함됐다. 밥 멜빈 샌프란시스코 감독은 일찌감치 이정후를 '3번타자-중견수'로 못박았다. 팀의 핵심선수로 인정한 것이다.
이런 배경 덕분에 이정후에 대한 기대치는 엄청나게 높아졌다. 국내 매체는 물론, 미국 현지에서도 큰 기대를 드러내고 있다. MLB닷컴은 '샌프란시코는 2023시즌 후 대형 영입작인 이정후가 라인업에 활력을 불어넣어 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면서 '37.1%의 스퀘어드 스윙률, 9.6%의 헛스윙 비율, 8.2%의 삼진율 등 기본 지표 중 일부는 이정후가 두 번째 MLB 시즌에 더 나은 모습을 보일 수 있다는 희망을 제공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타율은 내셔널리그 전체 2위에 해당한다. 타격왕 경쟁을 해볼수도 있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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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런 긍정적인 평가와 궤를 달리하는 전망이 등장했다.
미국 스포츠전문매체 디 애슬래틱은 26일(이하 한국시각) '2025시즌 샌프란시스코 최악의 시나리오'에 관한 전망을 다뤘다. 여기에 이정후에 관한 내용이 들어있다. 이정후가 샌프란시스코의 시즌 운명을 좌지우지할 키플레이어라는 전제가 깔려있다. 일단 이정후를 매우 중요한 선수로 보고 있는 건 사실이다.
그런데 상당히 의미있는 분석이 들어있다. 이 매체는 일단 이정후에 대해 "오랜 시간 잘 할 수 있는 잠재력이 있다. 작년에는 어깨부상으로 37경기 밖에 나오지 못했지만, 샌프란시스코는 남은 계약기간 5년간 주전 중견수로 활약해주길 기대하고 있다. 콘택트와 장타력을 모두 지녔고, 수비력도 좋다"고 호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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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볍게 볼 대목이 아니다. 프로 선수들의 능력치는 일정량 이상 누적된 데이터를 기반으로 평가해야 한다. 자료가 되는 원데이터의 양이 적으면, 평균에 대한 신뢰도는 떨어진다. 이를테면, 30타수 9안타와 300타수 90안타는 똑같이 타율 0.300이다. 그러나 스탯의 신뢰도는 후자쪽이 더 높은 게 당연하다.
그런데 이정후는 MLB에서 남긴 데이터가 너무 적다. 현재 나오는 이정후에 대한 기대치와 예상 성적은 전부 이전 KBO리그와 MLB 시범경기 및 2024년 시즌 아웃 전까지의 경기 스탯을 기반으로 한 것이다. 이로인해 예상 스탯의 신뢰도가 낮을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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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후는 지난해 팀의 레귤러 멤버로서 풀타임 시즌을 치르지 못했다. 부상 이전까지 겨우 37경기에서 158타석에 등장해 타율 2할6푼2리(145타수 38안타) 2홈런 8타점 15득점 10볼넷 13삼진 출루율 0.310 장타율 0.331 OPS 0.641을 기록한 게 전부다.
기록 자체도 썩 잘했다고 볼 수 없는데다 50경기-200타석에도 못 미치는 데이터다. 이 정도의 데이터량으로는 이정후가 과연 메이저리그에서 제대로 통하는 타자인지 확실히 판단하기 어렵다. 제대로 검증을 완료하기도 전에 부상으로 시즌을 마감하며 기대감만 남겨둔 케이스다.
다치기 전 성적만 놓고 보면 이정후는 메이저리그에서 B급 이하의 선수라고 볼 수 있다. 여기서 더 나아가 타율 2할8푼 이상, 0.8대의 OPS를 찍는다면 비로소 B~A-급 타자 반열에 들어갈 수 있다. 그러나 시즌이 중단됐기 때문에 이정후가 더 치고 올라갈 지 아니면 그 수준에서 머물지 알 수 없다.
디애슬래틱은 이러한 점을 종합해 '이정후가 지난해 부상 전까지 보여준 모습이 사실은 본래 자기 실력일 수 있다'는 대담한 문제제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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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 매체의 문제제기에 힘을 실어주는 장면들이 시범경기에서 실제로 나왔다.
이정후는 올해 일단 건강하게 돌아와 스프링캠프와 시범경기를 완주했다. 이 덕분에 이정후에 대한 기대감이 커진 게 사실이다. 실제로 2025 시범경기 초반에는 꽤 인상적인 타격을 펼쳤다. 이정후는 초반 12경기에서 타율 0.300(30타수 9안타), 2홈런, 5타점, 9득점, 4볼넷, 7삼진, OPS 0.967을 기록했다. 30타수의 결과에 불과하지만 꽤 좋은 기록인 건 사실이다.
그런데 이 시점에 커다란 변수가 등장했다. 잠을 잘못 잔 탓에 허리와 등에 담 증세가 발생한 것이다. 14일 텍사스전을 치른 뒤에 생긴 증상이다.
통증이 쉽게 가라앉지 않자 샌프란시스코 구단은 MRI 정밀검진과 주치의 진단을 진행했다. 다행히 별다른 이상은 발견되지 않았다. 이후 이정후는 약 10일간 허리 통증을 치료하고 24일 샌프란시스코 산하 마이너리그 트리플A 새크라멘토 리버 캐츠와의 자체 연습경기를 통해 복귀전을 치렀다. 첫 타석부터 호쾌한 2루타를 날리며 건재함을 과시했다. 그러나 이건 연습경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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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로써 이정후는 스프링트레이닝 14경기에서 타율 0.250(36타수 9안타), 2홈런, 5타점, 10득점, 5볼넷, 8삼진, 출루율 0.357, 장타율 0.472, OPS 0.829를 기록했다. 잘했다고 평가하기에는 좀 부족한 스탯이다.
시범경기가 어디까지나 컨디션 체크의 의미라고는 해도 10타수 이상 안타를 생산하지 못했다는 건 결코 가볍게 볼 수 없는 현상이다. 특히나 마이너리거급 투수들이 주로 나오는 시범경기 초반과 달리 시범경기 막판에는 메이저리그 주전 투수들이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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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정히 말해 이정후는 아직 메이저리그에서 '능력이 충분히 검증되지 않은 신인급' 선수다. KBO리그보다 월등히 많은 이동거리, 더 많은 경기수와 다양한 구장 환경 등 풀타임 시즌을 치르며 겪어내야 할 변수를 아직 제대로 겪어내지 못했다. 섣부른 기대감은 오히려 이정후에게 독이 될 수 있다.
또한 시범경기 막판에 나온 타격감 난조와 무안타 행진이 일시적인 게 아니라면 시즌 초반에 큰 난관에 부딪히게 될 가능성이 적지 않다. 과연 이정후가 KBO리그에서 보여줬던 실력을 메이저리그에서도 풀타임에 걸쳐 재현해낼 수 있을까. 이정후의 진짜 MLB 루키시즌이 시작된다. 스스로 증명해야 한다.
이원만 기자 wma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