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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부터 말하자면 쉽지 않다. 선수 개별 능력치를 떠나 팀 운용 전략이나 승리에 대한 절실함에서 한국 대표팀 벤치의 준비 부족과 무책임함이 너무나 확연히 드러난다. 이대로라면 결승에 올라 대만을 다시 만난다는 것도 기정 사실처럼 생각해선 안될 듯 하다. 슈퍼라운드에서 대만에 앞서 만날 것이 유력한 일본에게도 또 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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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 패배가 곧 한국의 금메달 실패까지 의미하지는 않는다. 아직까지는 기회가 남아있다. 이번 대회 진행방식의 특수성 때문이다. 이번 대회는 예선리그와 슈퍼리그로 구성돼 있다. 2개조로 나뉜 팀들이 예선 풀라운드를 펼쳐 상위 2개 팀이 슈퍼리그에 오른다. 여기서 다른 조에서 올라온 2개팀과 맞붙어 남긴 성적으로 3-4위전과 결승전 대진을 확정한다. 결국 한국은 남은 예선 2경기(인도네시아, 홍콩)를 모두 승리하면 슈퍼라운드에 오르고, 여기서 또 2승을 거두면 결승에 오른다.
대만이 유력한 결승 파트너로 손꼽힌다. 일단 한국을 누른 대만은 슈퍼라운드 진출이 확실시된다. 그리고 반대편 조에서는 중국과 일본이 올라올 것으로 예상된다. 때문에 한국이 중국과 일본을 꺾는다면 결승에 오르게 되는데, 실제로 공개된 대만 전력 역시 만만치 않아 중국은 물론이고 일본마저도 꺾을 확률이 높다. 이러면 '리벤지 매치'가 성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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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는 대만의 단단한 실력이다. 한국전에서 비록 4회초 린지아요우의 황당한 주루플레이가 한 개 나오긴 했지만, 이게 대만 야구 전체의 실력을 의미하진 않는다. 게다가 린지아요우는 이미 1회에 양현종에게 결승 투런포를 뽑아낸 대만 4번 타자다. 주루플레이에 익숙치 않은 유형의 선수라 실수했다고 이해해줄 수 있는 부분이다. 이를 빼고는 전력이 탄탄했다. 1회 이후 득점에 실패한 건 워낙 각성한 양현종과 그리고 이어나온 투수들이 좋은 공을 던졌기 때문이다. 그 밖에 수비 등은 대단히 안정적이었다.
이는 대만이 이번 아시안게임에 대한 준비를 철저히 했다는 걸 의미한다. 대만 왕옌궈 감독은 이날 승리 후 "대표팀 전원이 네덜란드와 미국, 일본 등에서 전지훈련도 했고 대회에도 참가하며 실력을 키웠다. 오늘 그런 진보된 실력을 확인할 수 있어 기쁘다"면서 "전력 분석팀에게 한국에 대한 정보를 많이 받았다. 우리 선수들이 프로는 아니지만 대단히 훌륭하고 인상적인 경기를 펼쳤다"고 말했다. 결국 대만 현 대표팀은 급조해서 대충 모은 팀도 아니었고, 아시안게임에 임하는 대만의 태도 역시 상당히 진지했다. 한국과 비교되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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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는 여전히 진짜 문제가 뭔지 모르는 벤치의 안일함에 있다. 혹여 대만전 패배로 이런 타성이 깨졌다면 한국이 다음 경기부터 심기일전해 전력 승부를 펼칠 수 있지만, 불행히도 이럴 가능성이 그리 많아 보이진 않는다. 대표팀을 이끄는 선동열 감독이 충격적인 대만전 패배 이후에 진행한 인터뷰에서 불행히도 이런 기미가 포착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첫 마디로 "선발 양현종의 초반 제구력이 높게 형성돼 실투로 홈런 맞았다"며 아쉬워했고, 대만 선발에 대해서는 "예측을 못했던 선발쪽이 나왔다"고 하면서도 정작 전력분석에 대해서는 "모든 준비가 돼 있었다"는 앞뒤가 맞지 않는 말을 했다. 그런 뒤 "남은 경기 최선을 다해서 좋은 경기 하겠다"는 하나마나 한 소리를 했다.
현역 시절 '국보'로 불리며 전 국민의 사랑과 지지를 받았던 그다. 그리고 한국야구 최초의 '전임 감독'으로 선임된 그다. 국제대회에서 한국 야구의 위상을 드높이고, 미래에 대한 비전과 플랜을 제시해야 하는 막중한 책임을 진 전임 감독이다.
그렇다면 하나마나 한 소리, 어설픈 변명 대신 가장 먼저 한국 야구의 위상에 먹칠을 한 점에 대해 국민들에게 크게 사과했어야 한다. 그 후에는 자신의 전략 부재, 타선 운용 실패, 소흘 했던 전력 분석에 대해 인정하고 반성했어야 했다. 그러나 선 감독은 마치 프로팀 감독이 포스트시즌 한 경기에 진 뒤에 하는 인터뷰를 연상케 하는 무신경한 코멘트만 이어갔다. 여전히 스스로의 문제가 뭔지 모르고 있다는 뜻이다. 이러면 팀 운용에서 변화를 기대하기란 요원한 일이다.
자카르타(인도네시아)=이원만 기자 wma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