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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H 없애고 투수도 타격? KBO의 현실은

노재형 기자

기사입력 2015-05-18 10:05


한화 권 혁이 17일 대전 넥센전에서 9회말 2사 만루서 타석에 등장해 관심을 끌었다. 지명타자제도를 폐지하고 투수도 타석에 들어서게 하자는 의견이 나오기는 하지만 현실적으로 KBO에서는 쉽지 않아 보인다. 정재근 기자 cjg@sportschosun.com

메이저리그에 지명타자제도가 도입된 것은 지난 1973년이었다. 당시 내셔널리그보다 투수력이 강했던 아메리칸리그에서 저득점 경기가 많아 흥행에 불리하다는 의견이 높아지면서 나온 아이디어였다. 지명타자는 공격만 하고, 투수는 마운드에서 던지는 역할만 하면 부상 위험도를 낮추고 박진감 넘치는 경기를 보여줄 수 있을 것이라는 취지였다.

아메리칸리그와 일본 프로야구의 퍼시픽리그, 한국 프로야구가 지명타자제도를 채택하고 있다. 내셔널리그와 일본 센트럴리그는 야구의 순수함이 훼손될 여지가 있다는 이유로 투수가 여전히 타석에 들어선다.

올해 내셔널리그로 옮긴 워싱턴 내셔널스의 맥스 슈어저는 지난 4월 23일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전에서 타격을 하다 오른쪽 엄지를 다친 뒤 "사람들은 데이빗 오티스가 타격하는 거을 보고 싶어하지, 나같은 투수들이 물먹은 신문지를 휘두르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며 내셔널리그에도 지명타자제도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때마침 세인트루이스의 투수 애덤 웨인라이트가 4월 26일 밀워키 브루어스전서 타격을 하다 상대 투수 윌리 페랄타의 공에 아킬레스건을 맞고 부상을 입어 결국 시즌을 접자, 슈어저의 주장이 화제가 됐다. 그러나 이를 전해들은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투수 매디슨 범가너는 "슈어저는 내셔널리그가 투수도 타석에 선다는 것을 알고도 계약을 했다. 그럼 투수가 공을 던지다 다치면 투수도 하지 말아야 하는 것 아니냐. 투수가 타격을 하는 것은 독특하면서도 전통적인 제도다"며 슈어저의 주장에 맞섰다.

아메리칸리그 경기가 화끈한 공격 야구로 재미를 선사하기는 하지만, 내셔널리그는 투수(보통 9번타순)의 타석에서 번트와 같은 세밀한 작전이 나와 색다른 느낌을 주는 것 또한 사실이다. 박찬호나 류현진의 경우에서 봤듯 투수가 적시타, 나아가 홈런이라도 치면 팬들은 훨씬 큰 흥미와 감동을 느끼기도 한다.

지난 17일 대전에서 열린 넥센 히어로즈와의 경기에서 한화 이글스는 투수 권 혁을 9회말 타석에 내보냈다. 앞서 9회초 수비 때 선수 교체 과정에서 대타 이종환이 빠지고, 지명타자였던 최진행이 좌익수로 들어가면서 권 혁이 2번 타순에 기용됐다. 9회말 2사 만루 상황에서 한화는 권 혁을 그대로 타석에 내보냈다. 넥센 투수 손승락을 상대로 결과는 풀카운트에서 루킹 삼진. 권 혁이 타석에서 파울을 쳐내는 등 활발한 모습을 보이자 팬들은 무척이나 흥미로워했다. 볼거리인 것만큼은 분명했다.

한국 프로야구는 지난 1982년 출범 당시 실업야구에서 사용하던 지명타자제도를 그대로 채택했다. 실업야구 선수들을 그대로 승계한 프로야구가 지명타자제도를 도입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여전히 KBO는 지명타자제도를 유지하고 있고, 투수의 타격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의견들이 많다.

지명타자제를 폐지해 투수를 타석에 들여보내기 위해서는 적지 않은 준비가 필요하다. 투수에게 타격 기술을 가르쳐야 하고 구단 별로 투수들을 위한 별도의 타격 프로그램도 만들어야 한다. 투수들은 던지는 훈련 말고도 방망이를 들고 배팅 훈련도 해야 하니 큰 수고를 들일 수 밖에 없다. 현실적으로 KBO가 투수의 타격을 부정적으로 보는 이유다.


여기에 선수들의 '실직'이 발생할 수 있다. 투수도 타석에 들어서면 지명타자를 맡던 선수, 혹은 그에게 자리를 양보해야 하는 야수 한 명은 쓰임새가 줄어든다. 즉 '실업자' 한 명이 발생할 수 있다는 의미다. 지명타자는 선수들 입장에서는 좋은 일자리 중 하나다. 하지만 투수도 타석에 들어선다면 분명 흥미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 아기자기한 재미도 있다.

1990년말부터 2000년대 초반 KBO는 지명타자제도 폐지 여부를 고민한 적이 있다. 하지만 이미 정착된 투수와 야수의 분업화 틀을 유지하고, 팬들의 혼란을 막는게 여러모로 좋다는 의견이 훨씬 많았다. 투수가 타격을 병행할 경우 어느 한 쪽의 능력을 극대화하기 힘든 측면도 있다. KBO는 아직은 투수를 타석에 들어서게 하는 일이 시기상조라고 보고 있다.

참고로 지명타자제도는 의무가 아니라 선택사항이다. 반드시 라인업에 지명타자를 넣을 필요는 없다.
노재형 기자 jhno@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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