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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림의 승부사' 유희관, 데뷔 첫 완봉승의 비결

이원만 기자

기사입력 2015-05-10 18:19


'느림의 미학'이 그라운드에 만개했다. 전혀 운동선수 같지 않은 몸으로 전혀 위협적이지 않아보이는 느린 공을 던지는 두산 베어스 유희관이 데뷔 첫 완봉승을 따냈다.


10일 오후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2015 프로야구 한화와 두산의 경기가 열렸다. 6회초 2사 2,3루서 두산 유희관이 한화 김경언을 삼진 처리한 후 환호하고 있다.
잠실=김경민 기자 kyungmin@sportschosun.com / 2015.05.10.
유희관은 10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한화 이글스와의 홈경기에 선발 등판해 9이닝 동안 117개의 공을 던지며 7안타 5삼진 무4사구 무실점으로 팀의 6대0 승리를 이끌었다. 2009년 두산에서 프로에 데뷔한 이래 처음 달성한 의미있는 대기록. 이는 유희관의 개인 1호이자 올해 KBO리그 2호 완봉승이다. 더불어 무4사구 완봉승은 올해 처음이자 통산 121번째. 두산 구단에서만 보면 2005년 6월18일 잠실 한화전에서 9이닝 무4사구 완봉승을 거둔 이혜천 이후 10년 만의 기록이다.

유희관의 장기는 '느린 공으로 정확히 넣기'다. 구속은 130㎞대 초반. 이날도 최고구속이 132㎞에 그쳤다. 그러나 이 공을 한화 타자들은 제대로 치지 못했다.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하나는 커브(95~105㎞)와 슬라이더(113~124㎞) 체인지업(113~120㎞)이 절묘하게 배합됐기 때문. 배터리를 이룬 포수 양의지의 영리한 볼배합과 유희관의 정확한 제구력이 만들어낸 마법이다. 유희관은 "이전 한화전과는 투구 패턴을 다르게 했다. 이번에는 커브의 비중을 높였는데, 그게 잘 통한 것 같다. 포수 양의지가 잘해준 결과"라고 짝꿍을 칭찬했다. 두산 김태형 감독도 "오늘 유희관-양의지 배터리의 호흡이 기가 막혔다"고 평가했다. 구속이 전부가 아니라는 게 다시 한번 증명된 경기다.

두 번째 이유는 유희관 특유의 자신감과 배짱에서 찾을 수 있다. 유희관은 이날 9이닝 투구를 마친 뒤에도 전혀 힘들어하지 않았다. 숨을 헐떡이기는 커녕 땀도 별로 흘리지 않았다. 마치 이제 1회 투구를 앞둔 선수 같았다. 마운드 위에서 편안하게 공을 던졌기 때문이다. 상대 타자를 의식하지 않고, 자신이 가장 편한 폼으로 제구에만 집중했기에 가능한 일이다.


10일 오후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2015 프로야구 한화와 두산의 경기가 열렸다. 두산 선발투수 유희관이 한화 타자들을 상대로 힘차게 볼을 던지고 있다.
잠실=김경민 기자 kyungmin@sportschosun.com / 2015.05.10.
이런 여유와 배짱은 위기 상황일수록 더욱 빛을 발한다. 흔들릴 수 있는 타이밍에 오히려 더 강한 승부를 걸 수 있는 원동력이다. 결정적인 장면은 8회초였다. 1사 후 이종환의 내야안타와 강경학의 중전안타, 이용규의 좌전안타가 연달아 터지며 1사 만루 위기가 닥쳤다. 투구수는 101개가 됐다. 스코어에는 여유가 있었지만, 완봉을 의식하면 힘들어지는 상황이다.

마운드에 투수코치와 포수 양의지가 올라왔다. "그냥 1점 주고 이닝 마치자. 괜찮아" 위로의 말은 소용이 없었다. 이미 유희관 스스로 그런 마음을 먹고 상황을 편하게 받아들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여유가 타자와의 승부에서 큰 힘이 됐다. 타석에 선 정근우에게 초구 몸쪽 볼에 이어 2구째 체인지업을 던져 유격수 앞 병살타를 유도해냈다. 그 순간 유희관은 속으로 "됐다!"를 외쳤다. 완봉승의 예감이 더욱 확고해진 순간이다.

유희관은 "사실 7회를 마친 뒤 투수 코치님이 계속 던질 수 있겠냐는 의사를 물어오셨다. 그래서 8회까지 해보고, 점수를 안주면 끝까지 해보겠다는 대답을 했다. 8회 위기를 넘기며 완봉을 비로소 의식했다. 막상 완봉승을 처음하고 나니까 그렇게 큰 감흥은 들지 않는다. 팀이 좋은 분위기를 계속 이어갈 수 있게 던지려고 했는데, 좋은 결과가 나와 기분이 좋긴 하다"는 소감을 환하게 웃으며 밝혔다. '허허실실' '이유제강'. 무협소설에 나오는 절정 고수들의 비결이 유희관에 의해 프로야구 마운드에서 재현되고 있다.


잠실=이원만 기자 wma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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