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꿈은 끝내 무산될 것인가. 아니면 다른 형태로 계속 이어질 것인가. 올시즌 마이너리그에서 고생을 하며 메이저리그 진입을 노리던 윤석민의 목표에 큰 브레이크가 걸리게 됐다. 꿈의 방향을 수정해야 할지도 모르는 대형 암초다. 볼티모어 오리올스가 31일(한국시각) 구단 산하 트리플A 팀인 노포크 타이즈에서 뛰던 윤석민에 대해 지명할당(Designated for assignment) 조치를 내렸다.
시나리오 1. 볼티모어 잔류
사실 '지명할당' 조치의 의미에 관해 먼저 따져볼 필요가 있다. 과연 볼티모어는 윤석민을 정말로 포기한 것일까. 윤석민은 올해 2월 볼티모어와 3년간 보장액 557만 5000달러(약 56억원)에 3년 계약을 맺었다. 세부 내용은 2014시즌이 계약금 67만5000달러에 보장 연봉 75만달러이고, 2014년 연봉은 175만달러, 2015년은 240만달러를 받는 조건이다.
계약 시점까지만 해도 볼티모어가 어느 정도는 윤석민에 대한 기대감을 갖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볼티모어는 조심스러웠다. 윤석민을 '일단 검증'한 이후 활용하겠다는 복안이 올해 내내 보였다. 윤석민은 올해 트리플A 노포크에서 뛰며 구단에 대해 자신의 가치를 입증해야 했다. 그러나 결과는 썩 좋지 못했다. 계약이 늦어지며 몸을 충분히 만들지 못한 데다가 어깨와 팔꿈치 통증으로 두 번이나 부상자 명단에 들기도 했다. 17차례 선발등판을 포함해 22경기에 나와 3승8패 평균자책점 5.56을 남겼다.
이제 시즌 막바지에 점어든 시점이다. 볼티모어 구단은 결정을 내려야 했다. 윤석민도 마찬가지다. 이번 지명할당 조치는 이런 고민에 대한 볼티모어의 답변이다. 현재로서는 윤석민이 메이저리그 레벨이 아니라는 판단인 셈이다.
그러나 이를 '방출 수순'으로 평가하는 것도 시기상조다. 9월의 로스터 확장을 앞둔 시점에서 메이저리그 구단들은 종종 '지명할당' 조치를 팀 엔트리 운용의 한 방편으로 활용하곤 한다. 해당 선수를 지명할당하고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빈자리를 다른 유망주에게 내준 뒤 다시 지명할당 조치를 받은 선수와 새로운 계약을 맺는 식이다. 윤석민에 대한 볼티모어의 정책은 이에 해당한다고 봐야 한다. 볼티모어는 윤석민을 그냥 포기하지는 않았다.
대신 이건 윤석민에게 결코 유리하지 않다. 일단 볼티모어에 잔류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마이너리그 계약을 맺어야 하는데, 그렇게 되면 올해 2월에 맺은 계약 내용은 사실상 백지화된다. 결국 내년부터 윤석민이 갖게되는 '마이너리그행 거부권'도 사라질 수 있다. 볼티모어로서는 손해볼 것이 없다. 선수의 거취를 구단 임의대로 결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상 구단은 이런 효과를 노린 것으로 보인다.
시나리오 2. 새 팀에서의 새 출발
아예 이참에 윤석민이 자신에 대해 끝까지 의심을 버리지 못한 볼티모어와 결별하고 새 출발을 하는 시나리오도 생각해볼 수 있다. 어차피 지명할당 조치를 받은 선수는 10일 이내에 자신에 대한 영입의사를 밝힌 다른 구단과 계약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윤석민은 새 기회를 얻을 수도 있다.
냉정히 말해 볼티모어에서 윤석민의 입지는 좁다. 향후 발전 가능성도 그리 크지 않다. 올해 볼티모어는 아메리칸리그 동부지구 우승이 거의 확실시된다. 31일 현재 2위 뉴욕 양키스에 무려 8경기차로 앞서 있다. 투수력이 약하지 않다. 팀 평균자책점이 3.56으로 메이저리그 30개 구단 중 12위다. 윤석미이 뚫고 들어가야 하는 선발진에도 사실상 빈틈이 없다. 크리스 틸만(11승5패)-천웨이인(13승4패)-버드 노리스(11승8패)로 1~3선발이 막강하고, 미구엘 곤잘레스, 케빈 고즈먼, 우발도 히메네스 등이 4~5선발을 책임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윤석민이 계속 팀에 잔류하는 것은 그리 비전이 없다. 트리플A에서도 윤석민은 5점대 평균자책점을 기록했다. 비록 몸상태가 정상이 아니었지만, 메이저리그 구단이 동양인 용병에 관해 이런 점까지 세세히 감안해주지는 않는다. 그냥 기록으로만 사람을 판단한다. 다시 말해 현재로서는 윤석민은 볼티모어 내에서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다. 더군다나 볼티모어는 현재 '큰 그림'을 그리고 있는 팀이다. 지구 우승을 넘어서 월드시리즈까지 바라보고 있다. 뒤에 쳐진 선수에게까지 눈길을 돌릴 여유가 없다.
따라서 윤석민이 이왕 지명할당 조치를 받은 마당에 새 팀을 찾는 것도 좋은 방법일 수 있다. 그 대상은 올해 성적이 좋지 않고, 특히 선발진에 빈틈이 있는 구단이 적합할 것으로 분석된다. 올해 초 윤석민에 대해 깊은 관심을 보인 미네소타 트윈스나 시카고 컵스 등이 후보가 될 수 있다. 이들 구단은 올해 소속 지구에서 부진하다. 선발로테이션도 부상 등의 이유로 구멍이 생겼다. 윤석민이 새로운 마음으로 제 기량을 보여준다면 충분히 좋은 입지를 만들 수 있다.
시나리오 3. 국내 유턴
마지막으로 생각해볼 수 있는 게 바로 국내 무대로 다시 돌아오는 것이다. 그러나 이건 윤석민이 가장 원하지 않는 시나리오다. 그래서 실현가능성이 희박하다.
사실 국내 여러 구단은 윤석민에 대해 여전히 높은 평가를 하고 있다. 올해 마이너리그에서 부진하지만, 그 원인이 올해초 제대로 몸을 만들지 못했다고 보고 있기 때문이다. 윤석민이 제대로 준비만 한다면 국내무대에서는 당장 에이스급으로 활약할 수 있다는 평가가 대세다.
그래서 올해 윤석민이 마이너리그에서 부진할 때 재영입 의사를 타진한 구단도 실제로 있었다. 그러나 이게 실현되지 못한 건 바로 윤석민이 미국 무대에서 끝까지 도전하겠다는 각오를 수차례 내보였기 때문이다.
윤석민은 오랫동안 메이저리그 무대에 진출하기를 원했다. 비록 그 과정에서 시련을 겪더라도 상관없다는 각오가 크다. 꿈을 실현하기 위해서라면 당장의 고생은 얼마든지 감당해낼 수 있다는 것이다. 사실 이번 지명할당 조치 이후에도 윤석민의 이같은 생각은 크게 달라지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때문에 국내 구단에서 어떤 좋은 조건을 제시하더라도 당장 윤석민이 내년에 한국으로 유턴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일단 내년까지는 새롭게 빅리그의 문을 두들긴 뒤 그래도 안되면 내후년에 돌아와도 된다. 윤석민으로서는 손해볼 것이 없다. 내후년에 국내로 돌아온다고 해도 윤석민은 30세다. 투수로서는 정점에 오르기에 충분한 나이다. 여전히 윤석민에 대해 러브콜을 보내는 구단이 많을 것이 뻔하다. 그래서 윤석민은 국내 복귀에 대해 전혀 서두를 이유가 없다.
이원만 기자 wma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