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심판합의판정을 불편하게 하는 것들

권인하 기자

기사입력 2014-08-07 10:37


심판합의판정(비디오 판독)이 후반기부터 실시됐다. '오심도 경기의 일부분'이라던 말이 사실상 사라진 셈이다.

6일까지 치러진 후반기 48경기 중 총 20차례의 심판합의판정이 있었다. 이중 이전부터 해왔던 홈런에 대한 판독을 제외한 심판합의판정은 총 16차례. 이중 심판의 판정이 번복된 것은 9번으로 번복률은 45%다.

그동안 명백한 오심을 바로잡지 못해 졌다고 분통해했던 감독들에겐 분명 희소식. 하지만 심판합의판정을 신청하는 것이 새로운 고민거리가 됐다. 이전엔 오심이 문제가 됐다면 이젠 심판합의판정이 문제가 되고 있다. 새로운 제도의 시행을 불편하게 하는 것들을 살펴보자.

30초와 기회의 딜레마

한국의 심판합의판정은 메이저리그에서 시행하는 비디오판독과는 다른 방식으로 진행된다. 가장 큰 것은 시간 제한이다. 한국은 이닝 중 발생하는 상황에 대해서는 판정후 30초 이내에 심판합의판정을 요청하도록 돼 있다. 30초간 충분히 생각하고 주위 의견을 받아 판단하라는 얘기다. 그 시간 동안 TV 중계의 리플레이를 볼 수 있으면 보고 나와도 된다. 이닝 종료나 경기 종료 때는 10초의 시간을 준다. 공수교대로 선수들의 이동이 있기 때문이다. 메이저리그에서는 이닝 중 판정에 대해선 시간 제한이 없다. 감독이 나와 항의하는 동안 코칭스태프나 프런트가 리플레이 화면을 본 뒤 확실히 오심이라고 생각하면 비디오판독을 요청한다. 그런데 한국과 미국 모두 첫번째 신청이 번복되지 않으면 두번째 기회는 주지 않는다. 메이저리그는 충분히 리플레이를 보고 확신이 섰을 때 신청을 했기에 번복이 되지 않았을 때는 일종의 패널티를 가하는 셈이다. 그런데 한국은 30초라는 시간상 TV중계의 리플레이를 충분히 볼 수 없다. 확신없이 신청을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번복이 되지 않으면 두번째 기회는 없다. 그래서 특히 경기 초반엔 오심같은 장면이 나와도 주저하는 경우가 많다. 감독들이 이번 심판합의제에서 가장 강력히 불만을 표출하는 부분이 30초 제한이다. 시간 제한을 없애면 경기시간이 너무 늘어지는 문제가 생길 수 있다. 30초의 시간 제한을 유지하면서 번복 여부와 상관없이 두번의 기회를 모두 준다면 큰 불만이 없어질 듯하다.

제한 시간도 모두 보게 전광판에 보여주자

지난 1일 광주 KIA-삼성전과 6일 청주 한화-삼성전서 삼성 류중일 감독은 상대의 심판합의판정 때 두차례 나와 항의를 했었다. 다름아닌 요청 시간 제한이 지난 것 아니냐는 항의였다. 1일 경기서는 5회초 삼성 선두 박한이의 타구를 잡은 투수 송은범이 1루로 던진 공을 1루수 필이 잡았는데 이때 필의 발이 떨어져 박한이가 세이프됐다. 선동열 감독은 신청할까 말까를 고민하다가 시간이 흐른 뒤 판정을 요청했고 결과는 아웃으로 번복됐다. 류 감독이 30초가 지나지 않았냐는 항의를 했지만 김정국 2루심이 스톱워치로 잰 결과는 29초였다. 6일엔 더 급박했다. 2-2 동점이던 11회말 1사 1루서 9번 이창열의 희생번트가 투수앞으로 굴러 1-6-4의 더블플레이가 나왔다. 한화의 공격이 무산된 순간이었지만 한화 벤치가 술렁거렸다. 1루에서 이창열의 발이 더 빨랐다는 것. 한화 김응용 감독이 김종모 수석코치에게 지시했고 심판합의판정이 신청됐다. 결과는 세이프. 류 감독이 10초가 지난 것 아니냐는 항의를 했다. 수비를 하던 삼성 선수들이 대부분 덕아웃으로 돌아온데다 중계방송사 역시 한화가 신청하지 않는 것으로 판단해 광고방송을 내보낸 상황에서 합의 판정이 신청됐었다. 그러나 이기중 2루심은 딱 10초였다라고 했다. 현재의 심판합의판정에선 투수의 14초룰을 재기 위해 스톱워치를 가지고 있는 2루심이 합의판정 시간도 재도록 하고 있다. 그래서 2루심 외엔 어느 누구도 몇초가 지났는지 알 수가 없다. 차라리 전광판에 계시하는 것이 투명하고 합리적일 듯. 시간을 볼 수 있다면 신청을 하는 팀도 그시간을 보면서 빨리 판단을 하게 되고 상대팀 역시 그 시간 안에 이뤄지면 불만을 표출할 이유가 없다.

합의 판정 신청도 매너가 필요하다


심판 합의 판정의 가장 큰 목적은 눈에 보이는 오심을 바로 잡자는 것이다. 누가 봐도 오심인데 그것이 그대로 인정되는 것이 불합리하다는 지적때문이다. 그 판정 때문에 경기의 결과가 뒤바뀔 수 있다는 것 역시 현장에서의 불만이었다. 경기의 승패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중요한 장면에서는 당연히 오심이라고 판단되면 즉각 판정을 신청하면 된다. 하지만 사실상 승부가 기울어진 상황에서의 합의 판정 요청은 눈살을 찌푸리게 하기도 한다. 지난 7월 29일 두산은 롯데와의 원정겨익서 11-1로 크게 앞선 8회말 김문호의 1루 귀루과정에서의 세이프 판정에 대해 심판합의 판정을 요청했다. 송일수 감독은 "덕아웃의 선수들이 모두 아웃이라고 외쳤고 그라운드의 선수도 아웃을 확신하는 분위기여서 나서지 않을 수 없었다"며 "롯데를 자극하려는 의도는 없었다"라고 해명했지만 크게 지고 있던 롯데로서는 기분이 나쁠 수 있었다. 그리고 이틀뒤인 31일 롯데가 비슷한 상황에서 합의판정을 요청했다. 13-2로 크게 앞선 상황에서 8회초 1사 1,2루서 양의지의 1루수 라인드라이브 아웃 때 2루 주자 김현수가 귀루하는 과정에서 세이프가 선언되자 김시진 감독이 합의판정을 신청했고 결과는 아웃으로 번복됐다. 심판의 오심이 맞았지만 큰 점수차로 리드한 상황에서의 합의 판정 신청은 언뜻 보기엔 '너무한다'라는 인상을 받기에 충분했다. 두산과 롯데가 심판 합의 판정으로 한번씩 기분 나쁜 일을 겪은 셈이다.

심판 합의 판정이 다른 목적으로 이용될 수도 있다. LG 양상문 감독은 지난 7월 29일 삼성전서 3-0으로 앞서던 3회말 1사 2·3루 삼성 3번 채태인이 내야 안타로 1루에서 세이프되자 곧바로 심판 합의 판정을 요청했다. 육안으로도 타이밍상 세이프였다. 양 감독 스스로도 세이프가 맞다고 생각하면서도 요청했다고 했다. 삼성의 기세가 좋아 그 흐름을 끊기 위해서라고 했다. KBO가 심판합의판정 요청 기회 두번을 모두 주지 않고 첫번째 신청이 실패했을 때 다음 기회를 주지 않는 것이 이러한 다른 용도로의 사용을 우려해서다. 감독들은 오심을 바로잡자고 비디오판독을 해야한다고 해놓고 정작 그 기회를 주니 다른 용도로 활용하는 것은 매너에 맞지 않는다. KBO는 감독들이 30초 시간 제한에 대해 두번의 기회를 모두 주는 것을 고려하지만 이러한 악용에 대한 우려를 떨치지 못하고 있다.
권인하 기자 indyk@sportschosun.com


30일 부산 사직구장에서 프로야구 롯데와 두산의 주중 3연전 두 번째 경기가 열렸다. 롯데 5회 무사 만루에서 박종윤의 1루 방향 내야 땅볼 타구가 더블아웃 판정을 받았다. 두산 송일수 감독이 그라운드에 나와 직선타가 아니냐며 판정에 대해 어필하고 있다. 결국 심판 합의 판정으로 투아웃으로 인정됐다.
부산=송정헌 기자 songs@sportschosun.com/2014.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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