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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S]'경험부족'의 양면성, 정병곤이 키플레이어인 이유

이명노 기자

기사입력 2013-10-30 21:59 | 최종수정 2013-10-31 06:23



삼성 류중일 감독은 한국시리즈가 열리기 전 한 무명선수를 키플레이어로 꼽았다. 이제 입단 3년차로 이름도 별로 알려지지 않은 선수, 하지만 스포트라이트의 중심에 있었다. 부상으로 이탈한 주전 유격수 김상수의 공백을 메워야 했기 때문이다. 대졸 3년차 내야수 정병곤(25)이 그 주인공이다.

류 감독이 정병곤을 키플레이어로 꼽은 건 김상수의 공백이 삼성의 약점이 아니란 걸 보여주기 위함이었다. 정병곤은 아마추어 때부터 수비 하나는 인정받았던 선수다. 모두가 우려했던 수비 문제는 전혀 없었다. 그리고 류 감독에겐 정병곤이 단기전에서 미쳐주길 바라는 마음이 있었을 것이다.

정병곤은 1차전 첫 타석에서 큼지막한 홈런성 타구를 날렸다. '파울 홈런', 만약 그 타구가 폴대 안쪽으로 들어갔다면 한국시리즈 양상은 달라졌을 지도 모른다. 정병곤은 그렇게 첫 타석부터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하지만 이후 침묵이 이어졌다. 역시 '경험'이란 말이 나왔다. 그래도 '구멍' 같은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처음 겪는 큰 경기지만, 매끄럽게 수비를 이어갔다. 갓 3년차 선수로 덜덜 떨 법도 했지만, 정병곤은 너무나 침착했다.

그렇게 묵묵히 자신의 역할을 다하던 정병곤은 5차전에서 훨훨 날았다. 15타석 만에 나온 자신의 포스트시즌 첫 안타, 그것도 이날의 결정적인 장면이었다. 5-5로 팽팽하던 8회 무사 1루에서 상대의 허를 찌르는 페이크 번트 앤 슬래시를 선보였다.

사실 벤치는 번트를 지시했다. 경기 막판 동점 상황, 반드시 1점이 필요했다. 상대 투수 정재훈이나 포수 양의지, 두산 내야진 모두 번트를 예상했다. 타격에 큰 기대가 안 되는, '9번타자' 정병곤이기에 어찌 보면 당연해 보였다.

하지만 정병곤은 상대의 수비 움직임을 보고, 순간적으로 판단했다. 그리고 재치 있게 유격수 키를 넘기는 중전안타를 만들어냈다. 뒤이어 박한이의 2타점 결승타가 터지면서 벼랑 끝에 몰렸던 삼성은 대구로 갈 수 있었다. 정병곤의 재치가 없었다면, 쉽지 않았을 승리였다. 홈을 밟은 정병곤은 그 어느 때보다 활짝 웃었다.

경험부족은 단기전에서 큰 위험요소다. 하지만 반대로 예측 불가능한 변수가 될 수 있다. 데이터가 없고, 경험을 통해 조금씩 몸이 풀려간다면 오히려 더 큰 활약을 보일 수도 있는 일이다. 앞으로 정병곤은 삼성 타선에서 가장 큰 변수가 될 수도 있다.


어쩌면 류 감독은 정병곤에게 그런 모습을 기대했는지도 모른다. 정병곤의 경북중-경북고 2년 후배인 김상수도 처음엔 우려 속에 주전 자리를 꿰찼다. 베테랑 박진만의 그림자는 컸다. 누구나 그런 과정을 겪는다. 갑자기 주전으로 도약하는 건 어렵다.

LG에서 트레이드된 뒤 올시즌 1군 무대를 밟고선 "그래도 고향팀에 와서 기회도 더 생기고, 잘 풀리는 것 같다"고 하던 그가 기억난다. 지난해 2군에 머물던 그는 이번 한국시리즈에서 당당한 주전이다. '키플레이어' 정병곤이 또다시 일을 낼 수 있을까. 기적 같은 역전 우승을 바라는 삼성은 새로운 영웅의 탄생을 기다리고 있다.


이명노 기자 nirvana@sportschosun.com


29일 오후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2013 프로야구 한국시리즈 5차전 삼성과 두산의 경기가 열렸다. 8회초 1사 2,3루서 삼성 박한이의 적시타 때 홈에 들어온 2루주자 정병곤이 이승엽과 환호하고 있다.
잠실= 김경민 기자 kyungmin@sportschosun.com / 2013.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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