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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S]허경민, '하위타선의 반란' 일으키나

이원만 기자

기사입력 2013-10-31 11:56 | 최종수정 2013-10-31 11:56


두산과 삼성의 2013 프로야구 한국시리즈 4차전이 28일 잠실구장에서 열렸다. 4회말 2사 두산 허경민이 좌전안타로 진루하고 있다.
잠실=허상욱 기자 wook@sportschosun.com/2013.10.28/

포스트시즌은 기회의 무대다. 수많은 깜짝 스타들이 탄생한다. 워낙에 큰 주목 속에서 경기가 치러지다보니 한 번 찾아온 기회만 잘 살리면 페넌트레이스보다 몇 배는 더 많이 부각될 수 있다. 그래서 포스트시즌에 처음으로 나선 선수들의 눈빛은 초롱초롱 빛난다.

두산 내야수 허경민 역시 그런 선수 중 하나다. 한국시리즈는 프로 데뷔 후 처음 경험하는 무대다. 이 순박한 '야구 청년'은 이렇게 큰 무대에서 지나치게 들뜨지도, 그렇다고 과도하게 긴장하지도 않는다. 얼핏 보면 몇 번이나 한국시리즈에 올랐던 베테랑처럼 담담하게 자기의 임무를 해내고 있다.

이유가 있다. 한 번 호된 경험을 했기 때문이다. 허경민은 넥센과의 준플레이오프 1차전에 당당히 선발로 나왔다. 2번 타자-2루수. 테이블세터의 한 축인 동시에 내야 수비의 핵인 키스톤 콤비다. 이게 허경민의 첫 포스트시즌 선발 출전이었다. 가슴이 떨렸다. 허경민은 당시 경기 전에 "정말 꿈만 같아요. 친구들에게 뒤지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요"라는 소감을 밝힌 적이 있다.

허경민이 말한 '친구들', 이미 프로야구의 스타가 된 인물들이다. 2008년 캐나다 에드먼턴에서 열린 세계청소년야구선수권대회에 나갔던 대표팀 동료들을 허경민은 '친구들'이라고 부른다. 여기에는 두산 입단 동기인 두산 외야수 정수빈과 각각 삼성, KIA, LG의 주전 유격수들인 김상수 안치홍 오지환 등이 포함돼 있다. 세 선수 모두 억대 연봉을 받고 있으며, 김상수와 안치홍은 한국시리즈 우승도 해봤다.

당시 세계청소년야구선수권대회에서 한국이 미국-쿠바 등 강적을 꺾고 우승할 때의 주전 유격수는 김상수도 안치홍도 오지환도 아닌 허경민이었다. 수비에 관해서는 다른 친구들이 일단 한 수 접고 들어갔다.

하지만 허경민이 2009년 입단했을 때의 두산 내야는 철옹성이었다. 주전과 백업 자리가 모두 꽉 차 있는 상황. 냉정히 말해 이제 막 고교를 졸업한 허경민이 손시헌 김재호 오재원 이원석 고영민 등 산전수전 다 겪은 선수들을 당장에 넘어서기는 힘들었다. 결국 허경민은 일찍 군입대를 택했다. 나쁘지 않은 선택이다. 어차피 나오지 않을 자리를 기다리며 허송세월 하느니 군 복무 문제를 해결하는 게 현명했다. 시간만큼은 허경민의 편이었다.

그렇게 참고 견딘 끝에 나선 포스트시즌 첫 선발. 하지만 허경민은 좋은 활약을 보여주지 못했다. 수비는 그런대로 안정적이었는데, 문제는 테이블세터에 걸맞는 공격력을 보여주지 못한 것이다. 결국 허경민은 이후 계속 벤치를 지키다가 경기 후반 대주자-대수비 전문요원으로만 나서야 했다.

그러나 허경민은 '참는 것'만큼은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다. '내게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하며 기다리면, 반드시 기회가 온다'고 믿었다. 정답이다. 허경민은 이번 한국시리즈에서 오재원-이원석의 부상 공백을 훌륭하게 메워주고 있다. 더불어 준플레이오프 때와는 달리 타석에서도 편안한 스윙으로 자주 안타를 만들어낸다.


지난 28일 4차전에서는 8번 3루수로 나와 3타수 2안타를 쳐 팀의 2대1 승리를 뒷받침했다. 5차전에서도 같은 자리에 나와 4타수 2안타를 날렸다.

이처럼 하위타선에서 멀티히트가 자주 나오면 상대방 투수 입장에서는 무척 괴롭다. 곧바로 상위타선에 득점의 연결고리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선발 투수들은 보통 하위타선에서는 체력을 아끼고 쉬어가려 한다. 그래야 롱런할 수 있기 때문.

하지만 하위타선마저 쉽게 넘어갈 수 없게되면 이런 계획이 꼬인다. 그러다보면 투구수가 많아지고 일찍 강판될 가능성이 크다. 허경민이 하위타선에서 해주는 역할이 중요한 이유다. 허경민이 남은 경기에서도 '하위타선의 반란'을 이어갈 수 있을 지 기대된다.


이원만 기자 wma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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