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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석] NC, 창원시를 떠나라! 야구단은 乙이 아니다

이명노 기자

기사입력 2013-10-21 11:54 | 최종수정 2013-10-21 11:54



갑(甲)과 을(乙). 계약서상에 계약자 양측을 표기할 때 쓰는 말이다. 계약상 상대적 지위가 높고 낮음에 따라 갑과 을의 순서가 결정되면서, 관용적으로 '갑을관계'란 표현이 정착됐다.

어느새 30년이 넘는 역사를 갖게 된 프로야구에도 갑을관계를 연상시키는 곳이 있다. 제9구단 NC와 그 연고지인 통합 창원시다. 동반자 관계가 돼야 할 둘은 정치논리에 의해 점차 관계 양상이 변질되더니, 이젠 지방자치단체가 완전한 갑이 되려 한다.

지난 1월 말, 창원시는 진해 육군대학부지를 신축구장 입지로 선정해 발표했다. 앞서 진행했던 타당성 조사 용역에서 낙제점을 받았던 곳이 갑자기 1순위로 둔갑했다. 산으로 둘러싸인 군사도시로 출발했던 진해는 누가 보기에도 접근성이 떨어진다. 각종 의혹이 제기됐다.

어느덧 30살이 넘은 프로야구는 팬을 가장 우선시할 정도로 성숙했다. 하지만 창원시의 결정은, 시대의 흐름과 역행했다. 흥행성은 포기한 것과 다름 없었다. 진해로 진입하기 위한 두 개의 터널은 악명 높은 상습정체구간이다. 대중교통도 좋지 않다. 입지 발표 후 수많은 극복방안을 제시했지만, 이는 사후약방문에 불과할 뿐이었다.

근본적으로 이 결정은 마산-창원-진해가 통합된 창원시의 기형적인 정치지형에서 잉태됐다. 통합 창원시 내에선 모든 사안에 있어 '지역균형발전'이란 논리가 최우선이다. 언제나 그렇다. 통합시 신청사 문제로 시작해, 새 도지사의 도청 이전 공약이 맞물렸다. 이 과정에서 야구장은 골칫덩이로 전락했고, 저 멀리 진해로 쫓겨났다.

프로야구단의 가치는 고려대상이 아니다. 저 멀리 밀려나있다. 뿔난 팬들은 서명운동을 벌이고, 항의집회를 열지만 요지부동이다. 프로야구단을 '을'로 취급하는 지자체의 태도다.


NC의 홈구장인 창원 마산구장 덕아웃과 라커룸 사이 복도에 새겨져 있는 '정의 명예 존중'. 이는 NC다이노스가 최우선으로 추구하는 가치다. 사진제공=NC다이노스
그동안 NC는 완곡한 자세를 보였다. 창원시와의 싸움도 커미셔너인 한국야구위원회(KBO)가 대신 나서서 했다. NC는 어찌 됐든 창원시를 연고로 출발했고, 마산구장에서 지난해 퓨처스리그(2군), 올해 1군 경기를 치르면서 이미 팬들을 품에 안은 상황이었다. NC가 창원시를 상대로 싸우기엔 '볼모'로 잡힌 창원 팬들이 너무 많았다.

어찌 보면, 지자체의 이러한 행태는 야구팬들이 있기에 가능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야구단은 쉽게 떠날 수 없어'란 생각을 했는지 모른다. 이미 정착을 시작한 NC에게 여러모로 불리한 싸움이었다.


최근 들어 이런 NC에게 변화가 생기고 있다. KBO는 물론, 다른 회원사들 마저 공감을 하면서 투쟁의 힘이 생겼다.

프로야구의 '가을 잔치'가 열린 지난 14일 목동구장, 준플레이오프 최종 5차전이 열린 축제의 장에서 창원시의회 일부 시의원들이 'KBO와 NC의 새야구장 입지 변경요구 등 행정간섭 중단촉구 결의안'을 전달하겠다고 소란을 피웠다. 다른 방법도 있었지만, 굳이 잔치판에 와서 많은 이들의 얼굴을 찌푸리게 했다.

NC도 가만 있지 않았다. 다음날 "일부 지역 시의원들의 비상식적 행동을 개탄하며, KBO와 구단을 동반자로 인정하지 않는 창원시 행정부와의 관계가 중대한 고비에 이르렀다"며 공식입장을 내놓았다.

그 중에서도 핵심은 'KBO와 본 구단을 포함한 모든 회원사는 새 야구장 입지가 프로구단의 홈구장 입지로 적합하지 않다고 우려하고 있으며, 1000억원이 넘는 시민의 혈세가 투입되는 새 야구장 건립이 정치권의 밀실담합 의혹과 이에 따른 짜맞추기식 용역조사 논란에도 불구하고 계속 진행된다면 그 야구장은 프로야구 경기가 열리지 않는 전시행정의 희생양으로 전락할 것이다'였다.


14일 목동구장에서 2승 2패를 기록중인 넥센과 두산이 준플레이오프 최종 5차전 경기를 펼쳤다. 경기 전 창원시의회 관계자들이 경기장을 찾아 KBO 양해영 사무총장에게 항의서한을 전달했다. 창원시의회는 NC의 새야구장 입지 변경요구 등 창원시의 행정 결정에 대한 간섭을 중단해 줄 것을 촉구하며 창원시의회 결의안을 KBO에 제출했다. 창원시의회 의원이 결의문을 KBO 양해영 사무총장에게 전달하고 있다.
목동=송정헌 기자 songs@sportschosun.com/2013.10.14
사실상 진해 신축구장을 쓰지 않겠다는 선언이었다. 이번에도 완곡한 표현을 쓰긴 했지만, 그동안 NC가 취한 자세와는 사뭇 달랐다. 이는 지난 8일 열린 KBO 이사회에서 '진해구장 사용불가'에 대한 의견을 모았기 때문이다.

진해 신축구장 논란은 NC만의 문제가 아니다. 타구단 역시 이 구장에 와서 경기를 치러야 한다. 수익 분배 문제도 얽혀 있다. NC나 KBO만의 문제가 아닌, 리그 전체의 문제인 것이다. 이에 공감한 이사회는 힘을 모으기로 했다. 10개 구단 전체가 하나로 움직이게 된 것이다.

NC는 15일 낸 보도자료에서 '창원시 행정부가 계속해서 시민의 의견을 외면하고 구단을 동반자로 인정하지 않는 모습을 계속 보일 경우, 구단은 KBO와 긴밀한 협의를 통해 모든 대안을 적극 검토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모든 대안에는 연고지 이전도 포함돼 있다. 이사회에서도 충분히 공감대가 형성됐다.

NC로선 지난 2년간 NC를 응원한 창원시민들을 버리고 떠나는 건 최악의 시나리오다. 하지만 프로야구단은 더이상 갑을관계로 치부될 존재가 아니다. 야구단을 유치하고 싶어하는 지자체는 많다.

당장 울산광역시의 신축야구장이 내년 3월 완공된다. 또한 롯데의 합의만 얻어낸다면, LG와 두산이 함께 쓰는 잠실구장처럼 부산 사직구장에서 매일 프로야구가 열릴 수도 있다. 두 카드 모두 흥행성이 있다.

이제 NC만 결정을 내리면 된다. 한 시즌 내내 신생팀의 성장과 7위 동풍을 지켜본 팬들도 이해해줄 것이다. 목놓아 응원하던 그들 역시 지난 1년간 창원시와 관계 때문에 전전긍긍하는 NC를 봐왔다. 지자체에 볼모로 잡힌 시민들을 향해서도 정당성은 충분하다. NC여, 이제 창원시를 떠나라.


이명노 기자 nirvana@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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