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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PO] 가만 있어도 자멸, 두산의 '박병호 포비아'

이명노 기자

기사입력 2013-10-10 10:29



두산 입장에선 스스로 발목 잡힌 꼴이다. 경계대상 1호로 꼽은 박병호 공포증으로 무너지고 있다.

단기전에서 분위기나 흐름, 또한 이를 잡기 위한 기싸움의 중요성은 누가 말하지 않아도 잘 안다. 창단 후 6년만에 처음 포스트시즌에 나선 넥센은 그런 면에서 행운아다. 모두가 경험부족을 걱정했지만, 4번타자 박병호의 존재로 인해 보다 편하게 경기에 임하고 있다.

사실 경험부족은 경기력 뿐만 아니라, 분위기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기 마련이다. 이번 준플레이오프에서 넥센의 아킬레스건은 당연히 경험이었다. 만약 상대와 충돌이 생겨 벤치클리어링이라도 생겼다 치자, 이미 포스트시즌에서 같은 경험이 있는 두산 선수단과 달리 급격히 흔들렸을 가능성이 있다. 기싸움에서도 경험은 중요한 요소였다.

하지만 넥센은 정말 편안하게 경기에 임했다. 뭐든지 '평소대로'를 외쳤다. 잠실 원정 때 합숙도 고민했지만, 하던대로 하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선수단의 의견을 존중해 없던 일로 했다. 게다가 선수단 훈련은 여전히 '자율'이다. 지친 선수들은 자유롭게 출근해 아예 훈련을 생략하기도 한다. 2차전 땐 박병호 강정호 김민성 등은 아예 경기 전 훈련을 생략하고 가볍게 몸을 풀기만 했다. 모두 시즌 때 해왔던 것들, 처음 겪는 포스트시즌이라고 어색할 건 없었다.

게다가 홈인 목동구장에서 1,2차전을 치른 것도 큰 힘이 됐다. 익숙한 환경에서 부담 없이 경기를 치를 환경이 됐다. 태풍으로 인한 예매취소 사태로 매진에 실패한 1차전에서 가볍게 몸이 풀렸다면, 2차전에선 만원 관중 앞에서 '잠실 예행연습'을 마쳤다. 더 많은 관중이 운집할 잠실에서도 위축돼지 않을 환경이 갖춰졌다.


넥센 히어로즈와 두산 베어스의 2013 프로야구 준 플레이오프 2차전 경기가 9일 목동야구장에서 열렸다. 넥센 8회말 2사 3루 박병호 타석때 3루주자 서건창이 두산 홍상삼의 폭투를 틈타 동점득점을 올리고 있다.
목동=최문영 기자 deer@sportschosun.com /2013.10.09/
반면 두산은 자멸하는 분위기다. 상대 4번타자 박병호를 경계한다더니, 아예 그 앞에서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였다. 1차전에서 고의4구와 고의성 짙은 볼넷으로 박병호에 대한 두려움을 스스로 인정하더니, 2차전에선 아예 박병호를 앞에 두고 실수를 남발했다.

9일 열린 2차전서 두산은 1-0으로 앞서기 시작한 8회말 2사 2루 상황에서 박병호를 상대했다. 역시 이번에도 벤치의 선택은 1루를 채우는 것이었다. 고의4구를 위해 포수 양의지가 일어났고, 홍상삼에게 볼을 뺄 것을 주문했다. 그런데 홍상삼은 일어나 오른쪽으로 이동하는 양의지가 잡을 수 없는 곳으로 공을 던졌다. 그냥 편하게 볼을 빼면 되는데 피치아웃 상황에서 양의지가 원래 앉아있던 곳 위쪽으로 던져 백네트로 공을 보냈다.

2사 3루가 되자 두산 벤치의 사인은 다시 박병호와 승부하는 걸로 바뀌었다. 하지만 이번엔 원바운드로 들어간 포크볼이 폭투가 됐다. 양의지의 블로킹이나, 홍상삼의 코너워크가 모두 문제가 있었다.


박병호는 방망이 한 번 휘두르지 않고, 그냥 서서 주자 서건창이 홈으로 들어오게 했다. 넥센 입장에선 천금 같은 동점이었다.

연장 10회에도 '박병호 공포증'은 계속 됐다. 선두타자 박병호는 몸에 맞는 볼로 출루했다. 1사 후 김지수 타석, 투수 오현택은 수차례 1루 견제를 하면서 박병호를 신경쓰는 모습이었다.

넥센 벤치는 이를 역이용했다. 런앤힛 작전을 두 차례나 냈다. 모두 파울. 결국 오현택은 결정적인 견제 실책을 범해 박병호를 3루까지 보냈고, 김지수에게 끝내기 안타를 맞았다.

두산은 1,2차전 내내 '박병호 포비아'로 고전했다. 2차전에선 그 정도가 심했다. 사실 넥센이 선전할 수 있는 이유 중 하나는 '잃을 게 없다'는 것이다. 부담 없이 경기에 임하니 승운도 따르고 있다.

반면 두산은 부담감에 스스로 발목을 잡히고 있다. 김진욱 감독은 경기 후 "심리적 부담감이 작용한 것 같다. 이 부분을 안정시켜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이미 시리즈 전부터 박병호에 대한 경계심을 드러내며 한 수 접고 들어간 두산, 3차전에선 이 공포증에서 헤어나올 수 있을까.


이명노 기자 nirvana@sportschosun.com


9일 목동구장에서 2013프로야구 준PO 2차전 넥센과 두산의 경기가 열렸다. 경기를 준비하고 있는 넥센 박병호와 두산 선수들.
목동=송정헌 기자 songs@sportschosun.com/2013.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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