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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BC] 바뀐 규정 탓에 탈락? 준비부터 부족했다

이명노 기자

기사입력 2013-03-06 10:10 | 최종수정 2013-03-06 10:09



충격의 탈락. 하지만 바뀐 제도의 희생양이란 허울 좋은 말보다는 '준비 부족'이란 일침이 필요할 때다.

한국의 제3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조기 탈락을 두고 지난 두 대회와 달라진 제도에 피해를 봤다는 말이 있다. 얼핏 보면 맞는 말이다. 1라운드가 라운드 로빈 방식(한 번씩 붙는 리그전 형태)으로 치러지면서 축구에서나 볼 법한 '득실차'로 탈락했다. 2승1패를 거두고도 조3위에 머물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탈락을 '미화'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결과는 바뀌지 않는다. 로마로 가면 로마법을 따라야 한다고 했다. 한국은 분명 바뀐 제도에 대한 인식이 부족했다.

한일전 너무 많다는 불평, 그래서 조별리그 생겼다

지난 두 대회 땐 '더블 엘리미네이션(패자부활전 개념을 도입한 토너먼트)' 방식 때문에 일본과 많은 경기를 치렀다고 불평했다. 1회 대회 땐 세 차례, 2회 대회 땐 무려 다섯 차례나 맞붙었다.

한 팀과 지나치게 많이 상대하는 것 역시 불합리한 제도다. 불필요한 순위결정전까지 더해져 대진은 더욱 많아졌다.

이번 대회 땐 달랐다. 대회 전부터 한국과 일본 양국에서 제도 개선을 건의했다. 이에 1라운드 방식이 바뀌었다. 모두 한 차례씩 균등하게 맞붙는 조별리그 방식이었다. 조별 전력 균형을 맞추기 위해 아마야구의 강자 쿠바를 비롯해 중남미의 브라질, 유럽의 네덜란드가 일본과 대만에서 열리는 1라운드 A,B조에 포함됐다.


5일 오후 대만 타이중 인터컨티넨털 구장에서 2013 월드베이스볼클래식 1R 대만과 한국의 경기가 열렸다. 0대2로 뒤지던 8회말 류중일 감독이 시합을 지켜보고 있다.
타이중(대만)= 김경민 기자 kyungmin@sportschosun.com /2013.03.05.
룰이 바뀌었으면, 바뀐 룰을 숙지해야 한다. 조별리그는 태생적으로 물고 물리는 양상이 나온다는 한계점을 갖고 있다. 한정된 경기 속에서 순위를 결정해야 하기 때문에 승패 이외에 다른 요소가 개입되는 건 당연하다. 우리가 그동안의 월드컵 예선, 본선에서 수없이 봐왔듯 득점과 실점의 차이. 즉 '득실차'는 매우 중요한 요소다.


야구는 축구와 달리 단순히 득실차를 따지기도 어렵다. 공격과 수비 기회가 공평하게 주어지지 않는다. 말 공격인 팀(홈팀)이 앞서고 있다면, 9회말은 하지 않는 게 상식이다. 이에 '(득점/공격이닝)-(실점/수비이닝)'이라는 생소한 수치가 도입됐다. 이른바 TQB(Team Quality Balance)다.

계산식은 복잡해 보이지만, 이론은 간단하다. 점수를 많이 내고, 상대에게 점수를 적게 내주면 된다. '득실차'를 따질 때, 균등한 기회라는 공평한 요소를 도입했을 뿐이다.

끝내 극복하지 못한 '0대5' 참패, 바뀐 룰 고민은 했나?

하지만 한국은 이런 계산식은 신경 쓰지 않았다. 그저 처음 두 경기인 네덜란드와 호주를 꺾으면, 손쉽게 2라운드 진출을 확정지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누가 보기에도 B조에서 전력상 앞서는 건 한국과 대만, 두 팀이었기 때문이다. 한국과 대만 모두 가볍게 2연승한 뒤 마지막 경기에서 1,2위 자리를 결정하면 될 것 같았다.

A조의 경우엔 일본과 쿠바가 이런 공식을 그대로 따랐다. 1,2차전에서 약체 브라질과 중국을 격파하며 나란히 2라운드 진출을 확정지었다. 처음 대진부터 그랬다. 쿠바는 2라운드에서 한국이나 일본을 견제할 만한 카드였던 것이다.

하지만 한국은 2라운드를 구경도 못했다. 첫 경기인 네덜란드전에서 충격의 0대5 패배를 당했다. 만약 바뀐 룰에 대한 인식이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어떻게든 실점을 최소화하려는 노력을 펼쳤어야 했다.


5일 오후 대만 타이중 인터컨티넨털 구장에서 2013 월드베이스볼클래식 1R 대만과 한국의 경기가 열렸다. 3대2로 승리한 한국 대표팀이 관중들에게 인사한 후 덕아웃으로 향하고 있다.
타이중(대만)= 김경민 기자 kyungmin@sportschosun.com /2013.03.05.
한국은 너무나 무기력했다. 야구는 '흐름'이 중요한 스포츠다. 물론 초반부터 잘 맞은 타구가 상대 수비 글러브에 걸리는 등 운이 따르지 않았을 수 있다. 선취점을 내준 뒤, 이상하게 상대에게 말려들어갔다. 타선은 침묵하고, 실책이 속출했다. 경기에 임하는 선수들의 집중력이 떨어졌다는 말이다. 마치 귀신에 홀린 양 9회까지 붕 뜬 상태로 경기를 마무리했다.

어떻게든 흐름을 바꿔보려는 노력을 했어야 했다. 벤치가 됐든, 선수들 스스로가 됐든 변화를 위한 시도가 필요했다. 하지만 경기가 끝날 때까지 결과는 변하지 않았다.

야구에 '만약 …라면'이란 가정은 없다. 하지만 처음 내준 점수 그대로 0대1로 패배했다면. 그게 아니더라도 5회까지의 0대3 스코어로 졌다면. 결과는 달라졌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경기장에 있는 그 누구도, 0대5 참패가 부메랑으로 돌아올 것이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적어도 그 순간엔 알지 못했다.

새로운 규정 도입으로 야구의 본질이 바뀌었다는 등의 변명은 필요 없다.

마지막 대만전에서 3대2로 승리한 순간에도, 6점차 승리가 불가능하다는 인식이 퍼지기 시작한 8회말 비로소 타선이 터졌다. 긴장이 풀려서, 혹은 최대한의 비난은 안된다는 절박함에서 나온 역전승이다.

그래 봤자 빛 좋은 개살구였을 뿐이다. 1라운드 탈락이란 성적표는 바뀌지 않았다.


이명노 기자 nirvana@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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