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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격수' 이범호, 또 볼 수 있을까.

이원만 기자

기사입력 2011-08-05 11:06


KIA 이범호는 지난 4일 잠실 두산전에서 어쩔 수 없이 유격수로 나섰다. 한화 소속이던 2004년 9월19일 인천 SK전 이후 2510일 만이다. KIA의 현재 사정을 미뤄볼 때 이범호가 또 유격수로 나설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사진은 4일 경기에서 유격수 자리에서 수비준비동작을 취하고 있는 이범호. 정재근 기자 cjg@sportschosun.com

지난 4일 잠실 두산전에서는 매우 보기힘든 장면이 나왔다. 2005년이후 계속 3루수만 했던 KIA 이범호가 이날만큼은 '유격수'로 출격했다. 한화 소속이던 2004년 9월19일 이후 2510일 만이다. 김선빈의 부상 이탈 이후 한 달간 유격수를 맡았던 이현곤이 등의 담증세로 출전할 수 없다고 하자 마땅한 유격수 요원이 없었기 때문이다. KIA 조범현 감독으로서는 어쩔 수 없는 '특단의 카드'였다. 결과적으로는 성공이었다. 세 번의 병살플레이가 모두 이범호의 손을 거쳤다. 풋워크와 포구 및 송구 동작, 그리고 2루수와의 협력수비까지 무난히 해냈다. 그렇다면 '유격수 이범호' 카드는 또 나올 수 있을까.

현재의 KIA에서는 또 나올 수 있다.

'유격수 이범호'는 KIA의 팀 상황이 정상적이라면 거의 나올 수 없는 카드다. 자기 전문 포지션이 아닌 위치에 나서면 아무래도 실책을 저지를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당연히 팀에는 마이너스 효과를 준다. 이미 2005년부터 이범호의 '전문 포지션'은 3루수다. 유격수는 더 이상 전문이 아니게 됐다.

물론, 조범현 감독이 올해 스프링캠프에서 이범호에게 유격수 연습을 시키긴 했다. 그러나 이는 주전 유격수의 부상 이탈이나 극심한 부진 등으로 생기는 '비상시국'을 대비한, 일종의 예비훈련이었다. 그런데 주전연쇄부상으로 정말로 '비상시국'이 벌어지고 말았다. '선견지명'이 맞아떨어진 셈이다. 결과적으로 이범호에 대한 유격수 예비훈련이 효과를 보게 됐다.

현재 KIA 팀 사정을 봤을 때 이범호는 앞으로도 몇 차례는 더 유격수로 나설 가능성이 있다. 달리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이 별로 없다. 이현곤이 또 아플 경우, 유격수는 이범호다.

'유격수 이범호', 안 나올수록 이득이다.

이날처럼 팀 사정이 급박하다면 어쩔수 없지만, '유격수 이범호'는 더 이상 안 나오는 편이 낫다. 팀과 이범호 개인에게 모두 안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잠재적인 수비실책보다 이범호의 공격력 약화가 KIA에게는 더 큰 손실이다. 4일 경기 내용이 이를 증명한다.

이날 이범호는 병살타 1개를 포함해 4타수 무안타를 기록했다. 그런데 안타를 못쳤다는 것보다 이범호가 단 한 개의 볼넷도 얻어내지 못했다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선구안이 좋은 이범호는 올시즌 8개구단 타자 중 볼넷(69개)을 가장 많이 얻어냈다. 안타를 못치는 날에는 볼넷을 골라내 팀에 기여하던 이범호다.


실제로 이범호는 올해 선발로 나온 90경기에서 총 27회 '무안타 경기'를 기록했는데, 그 27번 중 4사구를 단 한 개도 얻어내지 못한 것은 4일 잠실 두산전을 포함해 겨우 6경기 뿐이었다. 4일 경기 이전에 마지막으로 선발로 나와 '무안타 무4사구'를 기록한 것은 지난 5월29일 광주 롯데전(3타수 무안타)이었다. 이후 두 달이 넘는 66일 동안 이범호는 안타를 치든, 볼넷이나 사구를 얻든지 해서 최소 한 번은 1루를 밟았다. 그런 페이스가 지난 4일 끊겼다. 낯선 수비포지션에서 받는 스트레스로 인해 타석에서의 집중력과 선구안을 잃었다고 해석된다.

KIA로서는 '유격수 이범호'를 얻는 것보다 '타자 이범호'를 잃는 것이 더 큰 손실이다. 하지만, 이를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유격수 이범호' 카드를 꺼내야 하는 것이 KIA의 괴로운 현실이다.
이원만 기자 wma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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