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척=스포츠조선 김영록 기자] 운명의 장난이라면 공교롭다. 박정태의 연속 경기 안타를 가로막았던 선수가 사령탑인 팀이 이번엔 손호영의 연속 경기 안타를 끊었다.
키움 히어로즈는 22일 고척 스카이돔에서 롯데 자이언츠와 주말시리즈 2차전을 치른다.
전날 롯데 손호영의 연속 경기 안타가 30경기로 마무리됐다. 손호영은 1회초 우익수 뜬공으로 아웃됐고, 4회초에는 볼넷을 골라냈다. 6회초와 8회초는 내야땅볼.
특히 마지막 타석이던 8회초 2루 땅볼 때는 1루로 과감하게 몸까지 던졌다. 하지만 아웃이 선언됐고, 비디오 판독에서 바뀌지 않았다.
9회초에는 운도 따르지 않았다. 마지막 타자 고승민의 좌익수 앞쪽 빗맞은 안타성 타구를 키움 도슨이 슬라이딩 캐치로 잡아내며 다음 타자 손호영의 타석이 오지 않았다.
손호영은 20일까지 30경기 연속 안타를 치고 있었다. 키움전에서 안타를 쳤다면 롯데 레전드 박정태 현 부산MBC 야구해설위원(31경기, 1999년)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었던 기회였다.
99년 6월에도 그랬다. 6월 10일 마산 두산 베어스전, 31경기 연속 안타 중이던 박정태는 볼넷과 뜬공, 투수 직선타로 잇따라 아웃됐다.
그리고 마지막 타석에서 두산 이혜천을 상대로 친 날카로운 안타성 타구가 3루수 홍원기의 다이빙 캐치에 가로막혔고, 재빠른 1구 송구로 아웃되며 대기록이 중단됐다. 그때도 박정태는 1루에 헤드퍼스트 슬라이딩을 하는 투혼을 불살랐지만, 끝내 아웃이 선언됐다.
31경기는 아직도 단일 시즌 기준 연속 경기 안타 1위 기록(전체 1위, 2003~2004시즌, 박종호 39경기)으로 남아있다.
경기전 만난 홍원기 감독은 박정태의 이야기가 나오자 "(한화→두산)트레이드되고 며칠 후다. 마산야구장이었다"며 추억을 떠올렸다. 그는 "어쩌다보니 그런 결과가 나왔는데, 난 박정태 선배님이 '최선을 다해줘서 고맙다'는 얘길 해주신게 기억에 남는다. 덕분에 선배님과 각별한 사이가 됐다. (박정태와 자신처럼)어제도 투수와 수비가 모두 최선을 다한 결과 아니겠나. 그 동안의 기록에 박수를 보낸다"고 강조했다"고 강조했다.
"손호영이 어려운 환경을 이겨내고 롯데에서 잡초처럼 살아나서 좋은 활약을 펼치는 거 보면 타 팀 선수지만(야구인으로서) 뿌듯하다. 그래서 이번에 기록 행진을 응원하는 마음도 있었다. 다른 선수들에겐 좋은 본보기와 동기부여가 될 거다."
25년전 당시, 홍원기 감독은 성난 마산 야구팬들에 가로막혀 한동안 퇴근하지 못하고 야구장에 머무르다 등번호 없는 옷을 입고 빠져나왔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과연 사실일까. 홍원기 감독은 "아마 마산의 오래된 야구팬들은 그 경기 때문에 날 기억하실 것"이라며 "2008년에 전력분석원으로 마산 구장에 갔는데, 제 얼굴 보고 다들 그때를 떠올리시더라"며 되새겼다.
미국 시카고 컵스까지 도전했던 유망주 손호영은 국내 컴백 후 독립리그를 거쳐 2020년 LG 트윈스에 뽑혔다. 오랜 부진을 딛고 올해 롯데로 트레이드되면서 잠재력을 터뜨렸다. 올시즌 타율 3할2푼7리 8홈런 35타점, OPS(출루율+장타율) 0.922의 알토란 같은 활약을 펼치고 있다. 빛나는 미래가 기대된다.
고척=김영록 기자 lunarfly@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