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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퀴즈' 박진영, 남친짤 해명→'깡' 반대 일화…교도관X장례지도사, '꼭 필요한 자기님' 특집 [종합]

김수현 기자

기사입력 2020-08-19 22:33 | 최종수정 2020-08-19 22:34



[스포츠조선닷컴 김수현기자] 가수 박진영과 배우 서권순의 이야기부터 교도관 박정수씨, 뇌졸중 전문의 이승훈 씨, 장례지도사 심은이 씨가 다양한 삶의 이야기를 나눴다.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 특집이었지만 교도관 박정수씨, 뇌졸중 전문의 이승훈 씨, 장례지도사 심은이 씨는 '우리 삶에서 꼭 필요한 특별한 일'을 하는 자기님이었다.

19일 방송된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이하 '유퀴즈')에서는 우리 주변에서 쉽게 만날 수 없었던 자기님들을 만나 보는 특별한 사람 여행이 펼쳐졌다.

이날 자기님을 만나며 유재석은 "이번에 나올 분은 학식이 높은 분"이라 소개했다. 바로 JYP 박진영. 유재석은 "본인이 만들고 본인이 낳은 최고의 아티스트다"라고 박진영을 반겼다. 박진영은 "1년 만에 컴백이다. 너무 신난다"라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그는 "오늘 특별히 이야기 할 게 있다. 안무를 거의 다 짰는데 한 군데가 비어서 고민을 하다가 느낌이 와서 어떤 춤을 췄는데 안무팀이 '유재석?'하더라. 전에 유재석과 춤을 췄을 때 기억이 나서 그렇게 된 거다

라며 신곡 'When We Disco' 안무를 보여줬다. 박진영은 "나도 모르게 내가 왜 그 춤을 췄는지 모르겠다"라고 덧붙였다.

유재석은 "우리 인싸템 중에 박진영 씨를 오마주한 게 있다"며 '박진영 짤'을 따라한 담요 아이템을 보여줬다.

박진영은 '인싸짤'에 대해 "제가 찍은 게 아니고 뮤직비디오의 한 장면이다"라며 억울해했다. 또 '비닐 바지'에 대해서는 "그 당시에 규제가 많아서 짜증이 났다. 청소년들에게 안좋은 영향을 준다는데 그게 이해가 안돼서 반발심이 쌓여서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래서 리허설 때는 다른 바지를 입고 본방 직전에 갈아입었다"라고 설명했다. 또 "욕먹는게 두려웠으면 아무것도 안했을 거다. 하지만 딸이 생기고 나서 아빠가 왜 그 비닐 바지를 입었는지에 대해 이야기 하고 싶었다"라고 말했다.

박송국 임원 분이 저를 불러서 '너는 공부도 잘했는데 왜 그러냐, 넌 그냥 딴따라가 아니지 않냐'고 했는데 그게 굉장히 기분 나빴다. 그래서 2집 제목을 딴따라라고 지었다. 나는 평생 나를 스스로 '딴따라'라고 불러야겠다고 생각을 했다. 내 후배들은 '딴따라라는 말을 부정적으로 듣게 하지 말아야지' 하고 마음이었다.


또 자기관리로 유명한 박진영은 "아침에 '죽겠다'는 말을 습관처럼 한다. 일주일의 반 이상을 20시간 금식한다. 정말 하기 싫은 걸 오랜 시간 참고 견디는 거다. 1년 간 열심히 관리를 해서 무대에서 자유로워지는 거다"라고 말했다.

50을 앞두고 있는 박진영은 "저는 속상할 때가 후배들이 춤 잠깐 추고 '예전같지 않다'고 농담을 한다. 그럼 그걸 본 후배들은 '나도 그 나이가 되면 그렇게 될 거다'하고 생각할 거 아니냐"라고 자신만의 소신을 전했다. 박진영은 "60세까지는 춤과 노래가 늘 거라고 생각한다. 그 뒤에는 자신은 없다"면서도 "지금 컨디션은 그 어느 때보다 정말 최상이다"라고 미소지었다.

이에 조세호는 박진영 앞에서 즉석에서 노래 테스트를 위해 열창했다. 차분히 듣던 박진영은 "노래가 많이 늘 것 같다"라며 즉석에서 조세호에게 보컬 특강을 진행했다.

"비가 JYP에 계속 있었으면 '깡'은 나올 수 없었다"라는 말에 박진영은 "많이 곤란해졌다. '깡'나오고 비한테 몇 시간을 진지하게 이야기 했다. 하나하나씩 '이건 아니다'라고 말했다. 근데 그게 뒤늦게 잘 됐다"라며 민망해했다.

박진영은 "CF까지 찍는데 그게 저를 쏘아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다음 주에 밥 먹기로 했는데 어떻게 할 지 모르겠다"라고 말했다. 비와는 사적으로도 아주 친하다고. 박진영은 "작년 크리스마스 이브나 새해에도 만났다. 가족끼리도 친하다"라며 애정을 드러냈다.

이어 고민에 대해 "어른들한테 배운 행복의 조건은 '열심히 해서 자기 분야에 성공할 것' '좋은 사람을 만나 가정을 꾸릴 것' 그게 바로 행복이다. 였는데 뒤늦게 사춘기가 왔다. '열심히 살아라. 올바르게 살아라'하는데 '왜?'라는 궁금증이 있다"라며 유재석에게 답을 요청했다. 유재석은 "큰 목표를 정하기보다 '일단 오늘을 열심히 살자'라는 생각이다. 죽음을 생각하면 무섭다기보다는 '갑갑하다'라는 생각이다. 슬프다. 좀 생각하다가 생각을 그만 둔다"라며 "형은 너무 아는 게 많다. 너무 아는 게 많아도 흔들린다. 우리는 그냥 '그런가보다'하고 사는 거다"라고 말했다.

박진영은 "왜 내가 열심히 해야하지? 왜 살아야 하지? 하는 고민에 대해 나만 갖고 있자니 힘들어서 책을 쓰게 됐다"라며 새로운 도전에 대해서도 밝혔다.


다음 자기님은 등장부터 강렬한 포스를 자랑하며 '유퀴즈'를 맞았다. 바로 '국민 시어머니' 서권순 배우였다. 52년 차 배우 서권순은 "저는 '유퀴즈'의 왕팬이 아니라 광팬이다. 제가 연기자인데도 불구하고 드라마보다 '유퀴즈'를 본방사수한다"라며 찐팬임을 드러냈다.

서권순은 '촬영 전후가 다르다'는 조세호의 증언. 서권순은 "저는 실제로는 며느리가 없다. 딸만 둘이다. 사위만 둘 있는데, 사위한테 항상 '사랑한다'고 말한다. 큰 소리도 친 적 없다. 부부가 살다보면 싸울 수도 있다. 하지만 저는 절대 그 자리에 나타나지 않고 내색도 안한다. 어른들이 개입하면 안된다"라고 온화하게 말했다.

'드라마에서는 이런 상황에 어떻게 하냐'는 질문에는 곧바로 연기에 몰입해 강렬한 메소드 연기를 보여줬다. '인생 캐릭터 국민 시어머니가 되기까지' 서권순은 "사실 '사랑과 전쟁'에 많이 출연하진 않았다. 저는 주변에서 '너무 악한 역을 잘하시냐'라고 하면 '악한역 아닙니다. 강한역입니다'라고 설명한다"라고 말했다

서권순은 "아이들은 저를 강한 엄마라고 인식하고 있다. '엄마가 나이들어가는게 너무 예쁘다'라고 한다. 그 전에는 사람하고 말을 안 섞었다더라. 뭐라고 하면 말보다는 표정으로 말하는 편이다"라고 말해 웃음을 안겼다. 서권순은 손녀들이 책을 어지르면 크게 말하지 않고 "책 어떻게 하지?라고 한다"라고 말했고, 유재석은 서권순의 모션을 따라하며 폭소했다.

서권순은 "저는 사실 개인적인 토크를 안좋아한다. 배우로서 모습이 아닌 나 개인을 다 내보이진 않았다"며 과거 방송 섭외가 들어와도 잘 하지 않았다고.

또 그는 취미에 대해 "사실 제가 우리나라 최초의 검도 유단자다. 1970대 우리나라에 검도를 잘 하지 않았을 때다. 몸이 약했기 때문에 운동을 했다"라며 유복했던 어린 시절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앞으로의 배우 생활에 대해서는 건강이 허락하는 데까지 하겠다고 밝힌 서권순은 남다른 노래 실력을 자랑해 감탄을 자아냈다.


'유퀴즈'는 교도관 교감 박정호 씨를 만났다. 유재석은 "영화나 드라마 이외에 실제로 만나는 건 처음이다"라고 감탄했고, 박정호는 "인생은 어떻게 될 지 모른다. 만날 수도 있다"고 말해 유재석과 조세호를 놀라게 했다.

190.5cm라 밝힌 박정호는 "원래는 체격이 좋지 않았다. 예전에 문끼임 사고에 할머니가 당하셨는데, 마동석 체격을 가진 분이 문을 힘으로 열었다. 그때 '나도 힘을 길러서 다른 사람들을 도와야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몸을 키운 이유에 대해 밝혔다.

또 "교도관 업무에도 간접적인 도움이 된다. 저에게 상냥해진다. 교도소도 사람이 많다보니까 소문이 많이 생긴다. 저 계장님은 특수부다 출신이다. 하는 소문이 생긴다. 저한테 확인하러 오기도 한다. 극구부인은 안하고 대충 '맞다'고 한다. 영업 상의 비결이다"라고 덧붙여 웃음을 자아냈다.

교도관 시험에 대해서는 "전공이 법학은 아니고 영어와 호텔 경영이었다. 저희가 객실 배정도 한다"라고 농담했다. 그는 "학교 선배가 교정학이라는 책을 들고 다니길래 '뭐냐. 치아 교정하는 거냐'고 물었는데 '그린 마일'이라는 영화를 보라고 하더라. 영화를 보면서 '어떻게 저럴 수 있지?'라고 했는데 제가 실제로 그런 일을 당했다. 정신질환 수용자였는데 같은 일을 당하니까 영화 생각이 나더라. 그래서 참게 됐다"라고 말했다.

또 주변인들에 반응에 대해서는 "어머니가 동창회에 가셨는데 동창회에서는 아들 자랑을 하지 않냐. 그런데 어머니가 '우리 아들 교도소에 있어'라고 하셨다. 분위기가 싸해졌다고 하더라"라고 말했다.

박정호 씨는 "영화나 드라마에서는 수용자들을 억압하는 걸로 많이 비추어지는데 저희 교도관 들의 목적은 수용자들을 구금, 제압하는 게 아니라 어떻게 하면 사회에 잘 적응시켜서 다시 교도소에 들어오지 않게 하느냐는 거다"라며 오해에 대해 설명했다.

교도소에서는 영치금으로 원하는 물건을 구매할 수도 있었다. 박정호 씨는 '유퀴즈 방송이 되냐'라는 말에 "교화 방송 센터에서 편성 녹화한 방송만 볼 수 있다. '런닝맨'도 방송이 된다"고 말해 놀라움을 안겼다.

청송교도소뿐만 아니라, 서울동부구치소 등 다양한 근무처에서 일을 했던 박정호 씨는 희대의 탈옥범 신창원을 맡은 적도 있다고. 그는 "운동을 단독 개호를 하게 됐다. 사회 물의 사범은 수용자들과 접촉할 수 없도록 단독으로 진행한다. 저는 초임이었지만 덩치가 커서 나가게 됐다. 신창원이 '담당님, 운동 많이 하셨나 봐요. 무슨 운동하셨어요?'라고 하면서 포즈를 취하는데 저도 모르게 움찔했다"라고 신창원과 함께 했던 에피소드에 대해 전했다.

'흉악범과 만나게 된 일'에 대해서 박정호 씨는 "엄마 아빠가 인터넷 게임 중독에 걸려서 3개월 딸을 굶겨 죽인 경우가 있었다. 교도소에서 마주하는 순간 분노가 치밀었다. 또래의 아이를 둔 저는 '이런 사람들을 보면서 일을 계속 해야하나' 싶어서 회의감이 들었다"고 한탄했다.

교도소에서는 수용자들과 기싸움이 벌어진다고. 박정호 씨는 "그럴 땐 당황하지 않고 여유있게 대처한다. 그러면 오히려 더 미안해하고 말을 잘 듣는다"고 노하우를 전하기도 했다.

교도관의 직업병에 대해 박정호 씨는 "문이 열려 있는 꼴을 잘 못 본다. 수용 동에도 문이 열려 있으면 안된다. 특히 서랍과 싱크대 찬장을 보면 닫는다. 아내가 문을 잘 열어 놓는다"며 "사람 인원 수를 세기도 한다"며 제작진의 인원을 정확하게 맞혔다.

'교도관으로서 안 만났으면 하는 사람'에 대해 박정호 씨는 "병원 가는 게 싫은데 특히 주사 맞을 때 엉덩이를 드러내는 게 부끄럽다"며 쑥쓰러워했다.

박정호 씨는 '한 번 만나보고 싶은 사람'에 대해 "고 김동민 교감님을 만나고 싶다. 수용자에게 쇠파이프로 맞아서 순직하신 선배다. 저희가 당한 건 상대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 당시 많은 교도관들에게 충격을 안겨줬던 사연.

박정호 씨는 "그분이 겪었을 고통이 너무 공감되는 거다. 수용 동에 들어가면 수용자들이 많게는 100명이 될 때도 있다. 거기를 혼자 관리한다. 언제 어떤 상황에 노출될 지 모른다. 저희 조직에는 정말 큰 아픔으로 남아았다. 그 가해자는 아직도 수감되어있다. 무기징역을 받았다"며 "만약 만난다면 '계장님 빨리 피하세요. 제가 막아드리겠습니다. 그동안 고생 많으셨습니다'라고 하고 싶다. 그 순간으로 돌아간다면 꼭 그 사건을 막고 싶다"라고 말했다.

이어 선배를 향해 "선배님. 많이 아프셨죠. 저희가 지켜드리지 못해서 너무 죄송합니다"라는 영상 편지를 전했다.


뇌졸중 전문의 이승훈 씨는 "뇌졸중은 '뇌가 졸기에 적중한다'라는 뜻이다. 뇌가 갑자기 타격을 받는 병이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날 특집 제목인 '살면서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들'에 대해 "만나고 싶다고 보는 줄 알았다"며 농담했다.

이승훈 씨는 "드라마에서 보여지는 '목덜미 잡는 장면'은 사실이 아닌 경우가 많다"며 조세호의 병명에 대해서도 이야기 했다.

그는 "뇌졸중의 원인은 동맥경화다. 혈관 안에 지질이 쌓여 혈관 벽이 지저분해지는 좁아져서 생긴다. 갑자기가 아니라 위험 요인이 몸에 오랫동안 축적될 때 발명한다"라며 "고혈압과 당뇨가 있을 때 조심하면 된다. 어떤 환자는 '내가 17년 간 닭고기를 먹지 않았다. 괜찮냐'고 하셨는데 그래서 '오늘부터 드셔라'라고 말했다"고 말했다.

또 이승훈 씨는 "뇌졸중의 전조 증상이 편마비, 어지럼증이 있는데 증상이 사라진건 일시적으로 혈전이 뚫렸기 때문이다"라며 동맥경화라는 위험 병변은 재발 위험이 있다고 경고했다.

뇌졸중 자가진단법에 대해서도 이야기 했다. 팔 다리 힘 테스트부터 얼굴찡그리기 테스트, 발음 테스트 등 다양한 자가진단법이 존재했다.

이승훈 씨는 과거 기억에 남는 환자에 대해 "환자들에게 뜨거운 가믓도 중요하지만 차가운 이성으로 설명을 해야할 때가 있다. 본인의 삶을 정리할 시간을 줘야 하는 경우인 거다. 어제도 환자로 오셨던 어머님은 이미 심각한 뇌졸중으로 좋아진다 하더라도 보호자를 알아보지 못하거나 휠체어를 타야하는 경우가 있어 그 부분에 대해 설명했다"라며 환자들에게 현실을 여과없이 설명해야만 하는 고충에 대해 털어놓았다. 그는 "자기의 병도 끝까지 알 권리가 있다고 생각한다"라고 소신에 대해 밝혔다.

이승훈 씨는 '의사가 된 이유'에 대해 "공부를 하다보니까 의대에 왔다. 의대를 가겠다는 결심으로 오게 된 건 아니었고 집안의 기대 때문에 오게 됐다"라고 말했다. 세 시간에 60~70명을 봐야하나는 의사 생활. 이승훈 씨는 "환자 한 명당 3분을 채 못 쓴다. 높은 수준의 지식에 대해 설명하고 천천히 삶의 이야기를 하고 싶은데 그게 안되니까 새로 알게 된 지식을 소개하고 싶다"라며 신약 개발을 하고 있는 연구 근황에 대해서도 알렸다. 신약 개발을 위해서는 1000억 원 이상 든다고.

이승훈 씨는 "1년 안에 코로나19 약이 나오는 건 판타지다. 빨라야 3년 길면 10년을 봤는데 굉장히 많은 회사들이 진도가 꽤 많이 나간걸로 봐서 내년엔 풀리지 않을까 기대를 해본다"며 희망찬 이야기를 전했다.

취미에 대해서는 "평상시에 시간이 있을 때는 다양ㅇ한 자세로 생각하는 걸 좋아한다'며 오로지 신약 개발에 집중하고 있는 근황에 대해 밝혔다. 자나깨나 신약개발에만 열중한다는 이승훈 씨의 열정에 모두 혀를 내둘렀다.

이승훈 씨는 '평소에 뭘 챙겨 먹냐'는 말에 "저는 모계 쪽이 굉장히 심근경색이 많다. 그래서 대여섯 가지를 챙겸거는다. 아침에 일어나면 혈압약과 고지혈증 약을 먹는다. 스스로 진단한 명은 20개쯤 된다. 그중에 약을 꼭 먹어야겠다고 생각한 게 네다섯개 정도 된다. 대학교 끝나고 과를 정할 때 손을 떨어서 '외과를 못가겠구나' 싶었다. 나중에 신경과에서 약 하나 먹으니까 없어졌다. 그래서 필요한 약을 잘 챙기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다음 게스트는 20년 경력 장례지도사 심은이 씨였다. 다소 생소한 '장례지도사' 직업에 심은이 씨는 "쉽게 생각하시면 웨딩플래너가 있지 않냐. 사람이 죽으면 가족들은 경황이 없어서 대처를 못하신다. 그걸 저희가 잘 정리해서 보내드리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23세에 장례지도사를 시작한 심은이 씨는 "간호조무사로 근무를 했었는데 그šœ 환자로 계신 할머니와 대화를 많이 나눴다. 그 분이 돌아가셨다. 할머니를 모시는 과정에서 제 눈에는 물건을 다루는 것처럼 보였다. 어느날 우연히 신문을 봤는데 우리나라에 최초로 '장례지도과'가 생겼다. 그때 그 할머니 생각이 나더라. 어머니에게 '나 이 과가도 될까?'했더니 응원해주셨다. 오빠와 아버지는 반대를 많이 했다.

제가 7남매 중에 넷째다. 심은이 씨는 "온 식구가 모이려면 버스 한 대를 대절해야한다"라고 말했다.

심은이 씨의 원래 꿈은 수녀님이었다고. 그는 "제가 어릴 šœ 시골에서 자랐는데 성당을 나가려면 십리 정도를 걸어서 나가야 했다. 수녀님이 어린 아이들을 많이 챙겨주셨다. 자연스레 '수녀님이 돼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라고 그당시를 회상했다.

2002년 월드컵 당시 심은이 씨는 "온 나라가 열광의 도가니였는데 장례식장도 예외가 아니었다. 갑자기 환호성이 나길래 봤더니 90% 이상이 빈소를 안지키시고 나가더라. 상장이 응원도구다. 저랑 눈이 마주쳤는데 민망하셨는지 '와요, 지금 장례가 문젭니까?'라고 하시더라"라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태국인 근로자의 이야기도 전했다. 심은이 씨는 "가슴을 관통하셔서 오셨는데, 저도 그런 부분을 보면 심장이 덜컹한다. 외국인 같은 경우에는 가족이 없으면 저희 맘대로 장례 진행이 안된다. 그 기간 동안에는 안치실에 계시는 거다. 다행히 유족들이 오셔서 화장하시고 본국으로 가셨던 기억이 난다"라고 말해 모두를 안타깝게 했다.

작년 1월에 하늘나라로 떠난 남편. 심은이 씨는 "그래도 남편 보내면서 임종하기 전까지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잘 보냈다고 생각했다. 남편 장례 끝나고 너무 힘들어서 상담 등을 잘 하지 못했다. 그때 문득 지나온 유가족에게 미안한게 생겼다. '고인 편히 가셨어요'라고 했던 말들이 공허한 위로로 들리진 않았을까"라고 반성했다.

'꼭 만나고 싶은 사람'에 대해서는 "큰 아이가 그러더라 '아빠가 보고싶다'고. 떠나고 나서 후회를 많이 했다. 다시 오면 더 재밌게 살 수 있을 것 같다. 남편하고 처음 만나게 된 게 제가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었다. 제가 지리산을 참 좋아한다. 무겁게 배낭 힘들게 짊어지고 올라가면 자연이 펼쳐진다. 남편이 우연히 블로그에 들어가게 되고, 그 블로그를 통해 만나게 됐다"라며 남편을 추억했다. 만약 남편이 다시 돌아오게 되면 함께 지리산 여행을 가고 싶다고.

shyu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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