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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독일전 해법은 '투혼'이 아니다. 지금은 '신공'이 필요할 때다

박찬준 기자

기사입력 2018-06-26 07:03 | 최종수정 2018-06-26 19:55


상트페테르부르크(러시아)=정재근 기자 cjg@sportschosun.com/2018.06.24/

한국 월드컵사에서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는 늘 특별했다.

물론 사상 첫 4강에 오른 2002년 한-일월드컵, 사상 첫 원정 16강에 진출한 2010년 남아공월드컵 같은 환희도 있었다. 하지만 대개는 좌절의 눈물이었다. 마냥 슬프지만은 안았다. 부진한 모습을 보이던 대표팀은 마지막에서야 힘을 냈다. 쉬지 않고 달렸고, 피가 터지면서도 몸을 던졌다. 붕대를 감고 뛰었던 1998년 프랑스 대회 벨기에와의 최종전에서의 이임생, 2006년 독일 대회 스위스와의 최종전에서의 최진철은 월드컵 마다 대한민국이 앞세웠던 투혼의 상징이었다. 우리는 결과를 넘어 '투혼'에 박수를 보냈고, 그 '투혼'이야말로 한국축구의 힘이라며 아쉬움을 달랬다.

한국은 27일 오후 11시(이하 한국시각) 러시아 카잔 카잔아레나에서 독일과 2018년 러시아월드컵 F조 조별리그 최종전을 치른다. 한국의 월드컵 역사가 그랬듯, 이번에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실낱 같은 희망이 남아있지만, 그 가능성은 희박하다. 일단 멕시코가 스웨덴을 잡아줘야 한다. 멕시코가 스웨덴을 꺾는다고 해도, 상황은 여전히 어렵다. 우리가 '세계 최강' 독일을 두 골차 이상으로 잡아야 한다.

하지만 도전을 멈출 수는 없다. 주세종(아산)은 "우리에게 기회가 주어졌다. 1%의 가능성만 있어도 도전하는게 맞다"고 했다. 승부에 절대는 없다. 예기치 못했던 실낱 같은 희망도 있다. 독일도 이번 대회 흔들리고 있다. 멕시코와의 첫 경기에서 0대1로 패했고, 스웨덴과의 2차전은 2대1, 가까스로 이겼다. 우리가 알던 강력하던 독일이 아니다. 주축들은 부상과 컨디션 난조에 신음하고 있고, 스피드는 현저히 떨어졌다. 공략 포인트가 보인다. 난공불락이 아니다.

그래서 더 적극적으로 맞섰으면 좋겠다. '투혼'을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다. '투혼'은 '졌잘싸(졌지만 잘 싸웠다)'의 또 다른 이름이었다. 냉정히 말해 '투혼'은 끊임 없이 성장하는 세계적 수준이 축구에 맞설 수 있는 한국의 무기가 더이상 아니다. 과거 투혼은 단지 패배의 아픔을 잠재워주는 마취제였고, 우리가 세계에 그나마 한걸음 다가설 수 있다고 착각하게 해주는 환각제였으며, 그렇게 밖에 할 수 없었던 일회성 처방에 불과했다. 터지고 깨져가며 온 몸을 날려 '졌잘싸'라고 자화자찬 한들, 한국축구가 달라진 것은 없었다. 세계적 수준과 단 한걸음의 격차도 줄이지 못했다. 오히려 멀어지고 말았다.


니즈니노브고로드(러시아)=정재근 기자 cjg@sportschosun.com/2018.06.18/
FIFA랭킹 1위 독일과 만나는 57위 한국축구에 필요한 것은 가장 한국 다운 축구다. 한국만의 축구로 당당하게 '세계 1위'에 맞서야 한다. 진짜 '정신력'은 몸을 날리는 '투혼'이 아니라 '누구와, 어디서 만나든 냉정히 우리가 가진 것을 다 펼쳐 보이는 힘'이다. 이번 월드컵에서 가장 아쉬운 점은 우리 축구를 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 대체 '한국 축구'의 색깔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그 누구도 쉽게 설명하기 힘들 것이다. 상대를 너무 의식한 나머지, 우리 것을 잃어버린 결과였다. 그래서 스웨덴과의 1차전은 두고두고 아쉽다. 멕시코와의 2차전에서 한국 축구의 가능성과 길을 읽었기에 더 아쉽다. 이제 마지막 기회다. 마지막 희망을 살리기 위해 독일은 반드시 잡아야 하지만, 결과를 떠나 오히려 더 후회 없이 부딪힐 수 있는 상대이기도 하다.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을 펼칠 수 있는 '라스트 찬스'다. 더 이상 물러설 곳도, 잃을 것도 없다. 또 한번 색깔 없이 주춤주춤 물러서다 요행히 이길 수 있을까.

결과가 실패여도 괜찮다. 독일과 현실적 수준 차가 어느 정도 나는지 면밀히 분석하고 다시 출발선상에 서면 된다. 16강 진출을 위해 최선을 다할 베스트 전력의 '월드챔피언'과 정면 충돌해볼 수 있는 상황은 쉽게 오는 기회가 아니다.

지난해 U-20 월드컵이 끝나고 신 감독을 만났다. 그는 당시 이렇게 말했다. "언제까지 한국축구가 세계를 상대로 물러서기만 할 것인가. 그러면 배우는 것도 없다. 깨지더라도 부딪혀보면 우리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느끼고 배울 수 있다. 나에게 기회가 온다면 공격적으로 세계와 붙어보고 싶다."


100% 맞는 말이다. 그 말의 실천을 기대하고 응원한다. 아쉬움은 이 같은 신 감독의 다짐이 아직 이번 대회에서 제대로 표출되지 못했다는 점이다.

주춤주춤 물러서다 벼랑 끝에 선 한국 축구. 독일전 해법은 '투혼'이 아니다. 육탄방어를 위해 몸을 날려봐야 이전 2경기 처럼 VAR에 걸려 페널티킥을 허용할 뿐이다. 한골 먹으면 한골 넣겠다는 각오로 전진해야 한다. 독일전이야말로 신 감독의 트레이드마크인 '신공(신나는 공격)'이 필요할 때다.


박찬준 기자 vanbaste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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