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4년 KTX 광명역이 문을 열고 몇 년 동안 역주변은 주차장이나 마찬가지였다. KTX 광명역 주변은 허허벌판인데, 홀로 덩그러니 화려한 유리건물로 완공된 KTX역사가 자리하고 있었다. KTX 광명역 이용객은 많지 않았고, 대중교통이라곤 시내버스만 몇 대 다니는 정도였다. KTX이용객들이 역 근처에 아무렇게나 자동차를 주차해, 마치 주차장처럼 보였다.
KTX 광명역은 그동안 반쪽자리 KTX역사라는 눈칫밥을 먹어왔다. 실제로 이용객은 많지 않았고, 주변에 상업 시설은커녕 주택가도 없었다. 역사 안에 있는 커피숍, 식당, 편의점 등의 기본 시설들도 대부분 유지를 못하고 문을 닫았다. 지금도 역 입구 쪽의 일부 매장들만 문을 열고 있는 수준이다. 그런데 몇 년 전부터 KTX 광명역 주변에 사람들의 관심이 몰리고 있다. 조만간 특급상권으로 변할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닌 곳으로 평가하는 전문가들이 많다.
특히 지난해 12월 스웨덴의 세계적인 가구 브랜드 이케아가 광명점을 오픈하면서 점차 현실화되고 있다. 이케아 광명점은 전 세계 이케아 매장 중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한다. 연면적 13만1550㎡(약 34만2200평)에 영업면적 5만9000㎡(약 1만7847평) 규모로 2000여대의 주차공간이 마련돼 있다. 주력인 조립식 가구를 비롯해 생활용품, 인테리어소품, 액세서리 등 8600여종의 상품을 판매한다. 바로 엄청난 규모를 선보인 이케아가 KTX 광명역 주변을 주차장으로 만든 주범이기도 하다.
이케아 광명점과 가까운 서울 서남권, 안양시, 시흥시, 군포시, 과천시, 인천 지역의 사람들만 찾는 게 아니라 전국에서 이케아 광명점을 구경하기 위해 몰려들고 있기 때문이다. 이케아 광명점은 단순히 가구와 인테리어 소품을 구입하는 가구판매점이 아니라 젊은 층에서 쇼핑을 즐기는 트렌디한 핫플레이스로 자리를 잡으면서 인기가 더욱 높아졌다. KTX 광명역을 통해 지방에서 올라오는 이케아 고객들이 상당수 있을 정도다.
이케아 광명점 바로 옆에 개장한 롯데 프리미엄 아울렛 광명점은 가구 중심인 이케아의 부족한 면을 메우고 있다. 이케아 매장과 롯데 프리미엄 아울렛은 실내가 연결돼 있어, 이용객의 편의를 높였다. 롯데 프리미엄 아울렛의 각종 패션 브랜드와 식음료 브랜드들이 이케아 쇼핑에 지친 사람들을 끌어안고 있다. 이케아가 전국의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면, 롯데 프리미엄 아울렛이 사람들을 붙잡아두고 있는 셈이다. 롯데 프리미엄 아울렛 광명점은 롯데백화점의 12번째 아웃렛 매장으로 파주, 이천 등 수도권에 위치한 기존 아웃렛에 비해 서울에서의 접근성이 뛰어나다. 매장 규모는 지하 1층, 지상 6층에 연면적 12만5600㎡(약 3만7994평), 영업면적 3만8700㎡(약 1만1706평)으로 롯데 아울렛 파주점과 비슷한 규모다. 또한 가전제품 전문점인 롯데하이마트도 2300㎡(약695평) 규모로 입점해 있다. 롯데시네마, 키즈카페, 옥상공원 등 다양한 부대시설로 가족 고객들을 불러 모으고 있다.
이케아와 롯데 프리미엄 아울렛 바로 옆의 코스트코 광명점은 유료 회원제로 운영되는 대형마트라 먼 지역에서 온 사람들은 쉽게 들어갈 수 없다. 그러나 광명시민들과 인근 지역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 역할은 톡톡히 하고 있다. 지난 2012년 12월 개장한 코스트코 광명점은 이미 지역에서 자리를 잡은 지 오래다. 연간 200만명이 코스트코 광명점을 이용하고 있다.
이케아·롯데 프리미엄 아울렛·코스트코, 이렇게 삼두마차가 KTX 광명역 주변 상권을 이끌 고 있는 중이다.
KTX 호남선 개통에 세종시 공무원 수요 상승, 호재 이어져
그동안 이 지역의 터줏대감인 KTX 광명역은 이케아, 코스트코, 롯데라는 글로벌 기업들에 비하면 초라한 성적표를 보여 왔다. 그러나 최근 '반쪽짜리 KTX 역사'라는 긴 오명을 벗을 기회가 생겼다.
지난 2일 호남선 KTX가 본격적으로 개통하면서 광명역 이용객이 늘고 있다. 하루 평균 정차횟수는 42회 늘었고, 정차율도 28.9% 증가했다. 지난해 기준 KTX 광명역 하루 평균 이용객이 1만8000명에 그쳤는데, 당장 2만1000명 수준으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게다가 경부선 KTX의 경우 광명역에서 출발·도착하는 운행 편수가 주 39회에서 59회로 20회(51.3%) 증편됐다. 이번에 포항선 KTX가 개통하면서 광명역이 출발역의 역할을 맡게 됐다. 이로써 출발역이란 위상을 갖추며 반쪽짜리란 불명예도 털어내게 됐다. 광명 지역의 랜드마크이자 맏형의 위신도 세우게 됐다.
KTX 광명역 주변은 사통발달 교통의 요지지만, 그동안 광명역 역사의 이용객이 적어 저평가된 부분이 있다. 그러나 역사 바로 옆에 서해안고속도로, 제2경인고속도로, 제3경인고속도로가 있어 바로 이용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외곽순환도로 접근도 아주 용이하다. 차량 이용 시 양천·영등포·관악 등의 서울 서남권은 20분 내외, 인천 지역은 30분 내외로 이동이 가능할 정도로 가깝다. 이번 호남선·포항선 KTX 개통으로 KTX 광명역 주변의 교통 편리성은 더욱 높아지게 됐다.
실제로 지난 2012년 정부종합청사가 세종시로 이전하면서 광명역 이용객이 증가했다. 광명역에서 오송역까지 30분 내외가 소요되고, 오송역에서 간선급행버스체계(BRT)를 이용하면 약 20분만에 세종시 정부청사에 도착할 수 있다. 약 1시간 정도면 출·퇴근이 가능해 공무원 이용객이 늘어났다. 자연스레 광명역에서 가까운 아파트를 찾는 공무원들이 늘어나, 인근의 광명시 소하동 아파트 매매 가격은 2012년과 비교해 약 5000만원, 전세가는 1억원 이상이 올랐다. 광명시 인구도 증가하는 추세로 2009년 32만명에서, 2014년 36만명으로 늘어났다.
국제디자인클러스터 개발도 예정돼 있다. 세계 10대 디자인 회사로 꼽히는 이노디자인 그룹이 KTX 광명역세권에 1만여 평의 부지를 매입하고 본격적인 사업에 착수한다. 이노디자인 그룹 본사와 연구소를 이전하고 디자인 창업지원센터, 디자인 아카데미, 디자인 콜센터 등이 들어설 예정이다. 이에 따른 디자인 기업들의 입주를 기대하고 있다.
이런 교통 인프라와 공무원 수요, 국제디자인클러스트 등을 바탕으로 최근 광명역 주변은 호텔 개발이 한창이다. 2016년엔 수도권 서남부 지역에서 가장 큰 규모인 230실의 베스트웨스턴프리미어광명호텔이 들어설 예정이다. 1946년 설립된 미국의 세계적인 호텔 체인인 베스트웨스턴은 2001년 제휴를 통해 뉴서울호텔을 시작으로 한국 호텔 시장에 처음 진출했다. 지금은 한국에서 프리미어 호텔과 기존 호텔의 두 형태로 서울 6곳, 인천 2곳, 군산 1곳 등을 운영 중이다. 광명, 서울, 부산 등지에 20개의 체인호텔을 운영할 계획이다.
지난달엔 국내 가구 브랜드 까사미아가 광명시와 호텔 건립을 위한 상호협력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까사미아는 광명 소하동 역세권지구 상업용지에 지하 5층, 지상 16층 2만1964㎡(약 6644평) 규모의 특2급 관광호텔을 지을 계획이다.
KTX 광명역 주변은 HOT, 광명 구시가지는 COOL
그동안 멈춰있던 광명역세권 개발도 빠르게 속도를 내고 있다. 10년 전과 비교하면 지금도 상전벽해이지만, 몇 년 후엔 완전히 새로운 모습으로 변할 것으로 보인다. 아직은 이케아, 코스트코, 롯데 프리미엄 아울렛 등 대형 상업시설만 존재했다면, 이제는 사람이 사는 동네로 변모할 예정이다. 최근 이 지역에서 분양한 아파트와 오피스텔 모두 완판 되는 기록을 보였기 때문이다.
지난해 분양한 호반건설의 주상복합 아파트 광명역세권 호반베르디움은 1430가구 아파트, 870실 오피스텔 등 총 2300가구의 대단지임에도 일찌감치 분양 마감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GS건설 역시 광명역세권 4블록에 '광명역파크자이' 8개동 아파트 875가구, 오피스텔 336실을 분양했다. 5일만에 분양 마감됐다. 대우건설의 '광명역 푸르지오 오피스텔'은 계약 개시 15일 만에 완판됐다. 효성의 오피스텔 '효성해링턴 타워 더 퍼스트' 역시 계약 4일만에 95% 계약률을 보이며 완판행렬을 이었다. 최근에 분양한 한국자산신탁의 광명역세권 상 8-1블록의 '광명역 지웰 에스테이트' 오피스텔은 최고 52대 1의 청약경쟁률을 기록했다. 분양홍보관에 1만명이 넘게 몰릴 정도로 광명역세권에 대한 열기가 뜨거웠다. '광명역 불패'란 말이 나올 만 하다.
광명역세권을 중심으로 광명시가 뜨거운 거 같지만, 실제로 광명시내의 기존 상권이 흔들리고 있다는 건 큰 문제다. 중소기업중앙회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이케아 광명점이 오픈한 후 광명시의 관련 소매업체의 절반이 매출이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평균 매출 감소율은 31.1%였고, 매출 감소가 가장 많은 업종은 가정용 직물제품 업체였다. 직물업체의 76.9%가 매출이 준 것으로 조사됐고, 가구(71.8%), 식탁 및 주방용품(71.4%), 전기용품 및 조명장치(52.9%), 기타 가정용품(37.9%) 등의 순으로 매출이 감소했다.
특히 기존 광명시 중심상권인 '광명역사거리'는 초토화 직전이다. 광명역세권과 광명역사거리 사이의 거리는 불과 7㎞밖에 안 된다. 코스트코, 이케아, 롯데 프리미엄 아울렛이 들어서면서 광명시 중심 상권이 빠르게 광명역세권으로 옮겨가고 있는 중이다. 유입인구가 줄면서 광명 지역 상권 붕괴가 현실로 나타나고 있는 셈이다. 실제로 인천광역시가 시 외곽의 송도, 청라,영종 신도시를 개발하면서 인천의 구시가 상권인 도화동 상권이 완전히 무너진 바 있다. 광명역세권 개발로 광명시내 상권이 붕괴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박종권 기자 jkp@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