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김지숙 '매너리즘 빠진 연극인들 반성해야'
기사입력 2000년 01월 12일 14시 12분
지난 연말 새 천년을 맞으면서 세계 곳곳에서는 독특하고 색다른 이벤트가 펼쳐졌다.
우리나라도 예외없이 서울 광화문을 중심으로 예상밖의 인파가 몰려든 가운데 대규모 행사가 진행됐다.
그러나 나는 왠지 마음 한 켠에 답답하고 씁쓸함을 감출 수가 없었다. 20년이 훨씬 넘게 무대 연기인으로 생활을 해왔지만 요즘처럼 연극계 위기론을 곳곳에서 접하기도 처음이고, 나 스스로도 연극하기가 퍽이나 어려움을 뼈저리게 실감하기 때문이다.
갈수록 극장을 찾는 관객은 턱없이 줄어들고 배우로서 좋은 작품 만나기도 쉽지 않으며, 비록 가난해도 제대로 된 연극 한번 만들어 보겠다는 열정을 가진 연극인들 만나기도 예전같지 않다.
그나마 언론이나 대중매체도 하루살이 유행처럼 흐르는 대중문화에 비해 연극과 같은 고급문화에 할애하는 지면이나 시간은 몹시 미미하다. 게다가 국가 차원의 문화예술정책이나 연극정책도 아직은 막연하고 지원금도 턱없이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한데 한번 더 곰곰히 생각해보면 이 모든 것이 핑계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오늘 우리가 직면한 연극계의 위기는 연극인들 스스로가 만들어낸 자기 함정이 아닐까하는 의구심이 자꾸 드니 말이다.
언제부터인가 연극계에도 멀티미디어니 최첨단이니 하는 유행에 영합해 대중화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그로인해 비정상적인 행태가 관행화돼 버렸다. 정확한 정보전달에서 벗어난 과다한 홍보, 막대한 제작에 따른 무리한 기획과 공연, 제대로 훈련되지 않은 선호도 높은 배우들이나 인력의 기용, 진지하고 성실한 작업과정보다는 결과에 치중하는 업적주의, 표피적이고 말초적 자극으로 저급한 대중을 호객하는 한탕주의, 안일한 작업태도와 부설한 작품들, 정제되지 않은 연극관 등. 결국 우리는 이러한 매너리즘에 빠져 있었던 것은 아닐까.
공연장에 사람이 없는 것도 꼭 어제 오늘의 일만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은 연극은 관객이 줄을 서고 충만한 감동을 전달하며 관객의 따스한 사랑을 받아왔다.
오늘 나는 공연장에 관객이 없다는 말이 몹시 부끄럽다.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 이제 일상의 잠에서 깨어나자. 연극계의 위기는 나의 위기다.
김지숙[연극배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