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스타일기] 정홍채 (2)
기사입력 1997년 01월 03일 14시 44분
임꺽정에 출연하면서 한가지 버릇이 생겼다. 자나깨나 임꺽정만을 생각하다보니 가끔씩 머릿속이 몽롱해지면서 `내가 진짜 임꺽정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호접몽(胡蝶夢)'이라는 고사도 이래서 생겨난 것이 아닐까. 꿈속에서 말을 타고 신나게 칼을 휘두르다 언뜻 잠이 깨면 잠시 머릿속이 헷갈린다. 그러면서 어쩐 이유인지 등골이 갑자기 서늘해지곤 한다. 사실 내가 임꺽정이 되리라고는 전혀 꿈도 꾸지 못했다. 그러나 한순간 바뀌는게 사람의 운명인가 보다. 95년 연초 SBS에서 `임꺽정 공개 오디션'을 한다는 공고가 난 일이 있다. 그때는 흘끗 보고 아무 생각없이 지나쳐 버렸는데 그게 내 운명을 바꿔놓을 줄이야. 당시 연극배우로 일하던 잘아는 선배로부터 어느날 전화를 받았다. 누가 한번 보자는 것이었다. 나는 영문도 모른채 일단 약속장소에 나갔다. 나가보니 지금 `임꺽정'연출을 하는 김한영PD가 앉아 계셨다. 나는 일단 인사를 드렸고 갑작스런 만남에 당황해서 별 얘기도 못하고 앉아있었다. 하지만 김PD는 나를 요모조모 찬찬히 뜯어보면서 이것저것 물어보셨다. 이 이야기는 어느 정도 공개된 사실이지만, 그뒤 한달동안 김감독과 나는 거의 날마다 만나 술잔을 기울이며 살아온 얘기를 나눴다. 나중에 알게된 얘기지만 김감독은 미리 나에 대한 사전조사를 완벽하게 해두셨고 `마지막 검증'을 위해 나를 만났던 것이다. 결국 그해 6월 나는 임꺽정의 주인공으로 최종확정됐고 9월부터 촬영에 들어갔다.
